"여의도 출근길, 가볍지는 않군요"재경부서 전경련에 파견된 금융파수꾼의 둥지틀기

<인터뷰> 재정경제부 신제윤 국장
"여의도 출근길, 가볍지는 않군요"
재경부서 전경련에 파견된 금융파수꾼의 둥지틀기


요즘 신제윤(46ㆍ부이사관) 재정경제부 국장은 구름 잔뜩 낀 경기 과천 정부 제2청사가 아닌 벚꽃 만개한 금융 타운 여의도로 출근한다. 그러다 보니 과천 집에서 30분 이상 일찍 서둘러 출근한다. 마음만큼은 봄빛 가득한 나들이길인 듯 마냥 가벼운 발걸음이다. 칙칙한 공무원 특유의 무채색 넥타이를 벗어 던지기엔 아직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표정은 완연한 봄날을 만끽하듯 무척이나 밝다.

최근 이헌재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재계의 산실인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정부의 재계 대화 창구로 자신이 총애(?)하는 ‘금융 파수꾼’을 직접 파견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과 관련, 과연 그 화제의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신 국장이 바로 그 주인공. LG카드 사태 당시 정부측 현장 반장으로 재경부 금융정책 과장을 역임하고, 2002년에는 무디스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 2단계 상향 조정에다 피치,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잇딴 등급 상향을 주도했던 국제금융통으로 정부 금융정책의 실무에 빠짐 없이 참여해 온 일꾼이다.

"사실 골치 아픈 일만 담당하다 보니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디든지 좀 보내 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이런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는 정부의 경제ㆍ기업 정책 수립이 수요자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재경부는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인 투자를 유발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 아이디어 도출하는 한편, 입안 단계부터 재계와 긴밀한 협조를 이루겠다는 취지로 부이사관급 인사를 최근 전경련에 파견한 것이다.

인선 당시, 재경부내에 5명의 고참 과장급 인사가 물망에 올랐고 이 부총리가 직접 명단을 보고 신 국장을 낙점했다. 그만큼 이 부총리의 의중(?)을 잘 읽는 사람을 선별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배경때문인지 신국장은 나름대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매주 한 차례씩 스스로 주제를 정해 이 부총리에게 이메일로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니, 여의도 출근길이 솔직히 봄철 나들이 길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 무디스 등의 국가 신용 평가 주도한 국제금융통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도 그렇고, 그만큼 현장감 물씬 풍기는 참신하고 질 높은 내용을 보고서에 담아야 하니 말이죠. 쓰레기 같은 보고는 시간 낭비 아닙니까.” 잠시 입술을 깨문다. 무엇보다 신국장이 해야 할 일은 현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일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재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자칫하다간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터다. “사실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정책을 세울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자 그가 맡은 1년간의 책무이기도 하다. “재벌 2ㆍ3세대 등 차세대 리더들을 직접 만나보는 것도 또 하나의 미션입니다. 그 분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정부로부터 어떤 것을 원하는지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를 듣고 싶어요. ‘정부는 그냥 가만히 있어 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한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최태원 SK회장과 강신호 전경련 회장의 아들 강문석 동아제약 사장 등이 참여하는 젊은 경영인들의 모임인 ‘미경연(미래를 경영하는 연구 모임)’ 결성 초창기 멤버인 신 국장은 그만의 입심과 친화력에다 각종 정책 토론을 즐기는 인물로 정평이 나있을 정도. 그는 “그런 사교 모임보다는 보다 한 명씩 따로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하고 싶은 얘기도 가려 하는 그들만의 대화법이 있잖아요.”그는 각개격파를 택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대화 방식도 구체적이다. “너무 나서서 제 목소리를 높이고 제 의견을 개진하면 관치의 목소리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이 부총리가 말씀하신대로 ‘그림자 역할’ 을 하고 싶은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해 일각의 우려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의 얘기를 들어 설명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말년에 들어 치매 현상이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행히 당시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는 겁니다. 경제가 ‘시스템적으로’ 돌아 가고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죠. 경제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일당이 되더라도 경제는 시스템으로 돌아 가야 하는 것이 정도예요. 또 누가 들어 서더라도 시장주의에 근거한 정부 정책 추진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일 테니까요.” 그는 선거 후 경제 정책 방향을 놓고, “결코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관련한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그는 “아무리 정부가 기업들에 대해 투자를 늘리라고 하거나 사람들을 더 뽑아 쓰라고 말을 백번 천번 해도 기업들로서는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먼저 말했다. 결코 외부의 눈치나 압력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과연 기업들이 투자를 하는데 꺼리는 부분이 무엇인지, 또 어떤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지,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정부가 제대로 긁어줄 수 있도록 그 현상을 진단하고 환경을 조성하면서 실제로 일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4월 말부터 삼성의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들을 시작으로 대기업 임원들과의 잇따른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오히려 갑(甲)의 입장에서 주도적인 자세로 대화를 풀어가는 분위기 였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가 아쉬운 입장에 서서 이들로부터 경청하겠다는 것이 그의 달라진 마음가짐이다.

반면 재계가 민감해 하고 있는 증권집단 소송제 시행을 앞두고 그의 견해는 단호하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함이 어투부터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제도의 시행은 어떤 상황이 와도 기업들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회계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회계 처리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로 소송에 들어 가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분식회계 등 고의적 의도가 아니라면 회계 법인들의 시각차에 따라 소송이 일어나는 사태는 미리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섬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말이다.

- 기업들의 투자 입질을 수면 위로

한투ㆍ대투와 LG투자증권 매각 등 투신ㆍ증권과 은행업계의 빅뱅이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 기관이나 재벌 아니면 과연 누가 인수에 나설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는 산업 자본의 금융 진출은 결코 안 된다는 단호함을 또 한 번 내비쳤다. “재벌이 은행 등 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됩니다. 재벌들이 금융기관 계열사를 늘리는 것은 주력 사업이 무너질 것을 대비한 보험적 성격이 짙기 때문입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은행을 인수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연기금을 우선적으로 꼽고 싶습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 연기금이 무너지면 누가 그것을 막습니까. 바로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습니다. 은행이 망해도 공적자금을 들여 막은 것을 우린 경험했습니다. 어차피 연기금이 은행을 인수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기금은 국채에만 투자할 뿐 삼성전자에는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답답해요. 더 이상 은행이 삼성전자를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연기금이 삼성전자 같은 우량 주식에 투자해야 되고 삼성전자의 주주가 돼 이를 감시해야 합니다. 연기금이 주식투자를 한다면 국민세금으로 돈놀이하는 식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어요. 사실 LG 카드사태에서 드러났듯, 금융 기관의 채권 투자에 대한 손실이 오히려 주식 투자 손실보다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문제예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논리와 주장엔 핏발이 서 있다.

“여의도로 출근하시는데 노랑이나 분홍색 타이도 매셔야지요”라는 기자의 농담에 신 국장은 “하나 사주면 매고 다니죠”라고 웃어 넘긴다. 행시 24회 중 수석을 차지한 재경부 금융통인 그가 가장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금융인은 신상훈 신한은행장. 사리가 분명하고 매사 일 처리가 깔끔하며 추진력이 높기 때문이란다. 사람 만나 토론하기를 즐기는 그가 향후 1년간 전경련 파견 활동에서 과연 어떤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4-21 22:16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