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문구·장난감에서 고급 미용 비누까지, 실속구매 붐

눈금 마케팅, 저울 위에 서다
옷·문구·장난감에서 고급 미용 비누까지, 실속구매 붐

최근 이화여대 앞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 의류 상점의 카운터엔 커다란 저울이 올라 와 있다. 옷을 저울에 달아 팔기 위해서다. 면티나 반바지 등을 일반적인 소비자 가격이 아닌, 그램 단위로 계산하는 이색 매장이기 때문이다. ‘100g에 2,500원’.

요즘 세상에 브랜드나 상표를 불문하고, 새 옷 한 벌을 무게로 저울질 하여 시중가의 절반 이하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바람 나는 쇼핑일 터. 값싸고 실용적인 상품을 찾는 최근의 알뜰 소비 풍조와 맞아떨어지면서 의류는 물론 문구, 타올, 비누 등 다양한 생활 잡화의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 예상외의 큰 호응에 신바람

6월 3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 안전 지대 스타마켓’. 옷은 물론 구두, 선글라스, 가방,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120평 규모의 복합 의류 매장 안은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에서부터 아이 손을 잡고 온 아줌마 부대까지. “ 면티를 저울에 달아 g으로 판매합니다”라는 상점 윈도우에 커다랗게 내걸린 광고 문구를 보고 호기심에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저울에 달아 파는 옷은 어떤가 보려고 들어왔죠. ‘ 땡처리’ 시장이 아니면, 무게로 달아 판매하는 제품을 어디 가서 구하겠어요?”30대의 아주머니가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수북하게 쌓아 놓은 의류더미 속에서 붉은 색 민소매 티셔츠를 집어 든다. 그리곤 쏜살같이 저울 앞으로 직행. 무게를 달아본다. ‘ 118g = 2,900원’. 이 정도 가격이면 거의 공짜라는 듯, 값을 치르는 아주머니의 얼굴엔 희색이 만연하다. 이따금 옷을 저울에 올려놓을 때, 옷을 활짝 펼쳐서 옷 무게를 저울 바깥으로 분산시켜 무게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티 셔츠 한 장의 무게는 보통 80~120g으로 2,000~3,000원대. 아주 가벼운 것은 70g 이하로 1,000원대에 살 수 있다. 만원 한 장이면 서너 벌은 구입할 수 있다는 계산. 이곳에 있는 제품들은 주로 급전이 필요한 도매 상인들에게 싼 값에 대량으로 들여온 것들이다. 이 곳을 두 번째 방문했다는 윤모씨(26·여)는 “ 지난 번에 푸른 계열의 스트라이프 무늬 셔츠를 1,800원에 샀는데 친구들이 부러워했다”며 “ 잘만 고르면 세련된 스타일의 옷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저울에 올라선 옷과 문구들. 불황을 이기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판매방식이다. 사진/박철중

최고 인기 상품은 역시 가장 가볍고 디자인이 깜찍한 민소매 셔츠 종류. 가느다란 어깨 끈이 달리거나 가슴 언저리가 깊게 파인 섹시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의류나 시계 등을 그램 단위로 판매하는 유럽의 벼룩 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매장 주인 김성엽(32)씨는 “ 옷을 저울에 달아 판매한다는 게 신기해서인지 예상 외로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3월 5일 이대 앞 1호점을 개설한 이래, 4월과 5월 이태원과 명동에 2ㆍ3호 체인점을 잇따라 열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문구점 ‘팬시나라’도 눈금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본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문구는 통상 집 부근에서 구입하는 편이지만, 이 상점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원정(?) 온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 상점 앞 마당에는 필통, 가방, 시계, 다이어리 등 문구들이 상자마다 차곡차곡 담긴 채 넓게 펼쳐져 있다. 이들 문구의 가격은 100g당 1,000원. 예외적으로 값비싼 품목에 해당하는 시계나 유아용 모빌은 50g에 1,000원 정도. 정수기 판매원이라는 40대의 아주머니는 “ 문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고객 관리에 사용할 다이어리(소비자가 33,000원 –무게 판매가 9,500원)를 구입했다”며 “문구는 크게 유행을 타는 품목도 아니라서, 싸게 팔 때 구입해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흠집있는 제품 싸게” 달라진 구매패턴

실속 구매 붐을 타고 다소 흠집이 있지만 사용하는 데는 별 불편이 없는 ‘하자’ 상품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 예전에는 웬만큼 궁하지 않으면 께름칙하다며 멀리해 왔던 게 사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돈 없는 사람들이 찾는 데라기보다, 한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각광 받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 동대문시장 타올 상점 ‘ 신광 타월’에서 근무하는 김혜연(34)씨는 “이발관이나 안마 업소에서 흠집 있는 제품을 싸게 구입하려는 경우는 물론, 가정용으로 구입하는 개인 구매 고객들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타올 1장이 3,000~4,000원에 거래되는데, 올이 풀리거나 흠집이 있는 경우 1kg당(대략 7~8장) 7,000원에 팔린다.

반면, 저가(低價) 상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금 마케팅을 적용해 인기를 끄는 상품도 있다.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www.lush-korea.com)’는 비누와 고체 샴푸를 매장에서 직접 잘라서 판매한다. 케이크나 치즈 모양의 덩어리에서 원하는 만큼 덜어 살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고급 미용 비누의 경우 100g당 5,000~7,000원선. 러쉬-코리아 홍보팀 박유정 씨는 “고객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양만큼 그리고 가격을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기에 새로운 판매 방식에 열광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식을 깨는 ‘눈금 마케팅’. 저렴한 가격 외에도 ‘재미있는’ 판매 방식이라는 이유 자체만으로도 소비자의 눈길을 매혹시키고 있는 셈이다.

 

입력시간 : 2004-06-08 15:2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