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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희망가 계속 부를까
사상 최고 분기실적 달성, 디지털 시장 호황 등이 재도약 발판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시선을 모으는 회사는 국내의 대표적 기업 삼성전자가 아니다. 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증시 관계자, 투자자 등을 중심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삼성전자의 자리를 요즘 다른 회사가 가로챈 느낌이다. 하이닉스 반도체(이하 하이닉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부실 기업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이 회사가 지난 7월 발표한 2분기 사업실적에 관련업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4분기 연속 영업 이익 실현에다 사상 최고의 분기 실적 달성. 말 그대로 ‘ 깜짝 실적’(earning surprise)으로 평가됐을 만큼 하이닉스의 영업 성적표는 뜻밖의 것이었다.

하이닉스의 부침(浮沈)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잠시 시계를 과거로 돌려 보자. 국민의 정부가 출범 두 해째를 맞던 지난 99년 10월 14일, 현대전자(하이닉스의 전신)는 세계 반도체 업계의 패권을 노리는 도전장을 야심차게 던졌다. 당시 현대전자는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 빅딜 정책’(대기업 간 사업 맞교환)에 의해 LG반도체를 흡수 합병, 거대 전자회사로 거듭난 상황이었다.


- 악몽 딛고 다시 장밋빛 꿈을 꾸다

“ 통합 법인은 세계 시장 점유율 21%를 차지하는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됐다. D램 외에 디지털 TV칩과 동영상 압축(MPEG)칩 생산에 노력해 내년에는 매출 8조원을 올릴 계획이다.” 당시 김영환 사장이 호기롭게 내뱉은 사자후다. 김 사장은 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 (반도체 시장은) 2001년에 최대 호황이 올 것으로 보며 최소한 2002년 상반기까지는 그 추세가 계속되리라 본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 사장의 이 같은 자신감은 당시 시장 상황에 비춰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그 해 9월 기준으로 시장 주종 품목인 64메가 D램의 현물시장 가격은 21달러를 상회할 정도로 초강세였다. 두 달 전에 비해 무려 200% 이상 가격이 뛰었을 정도로 반도체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장밋빛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사장이 최대 호황이 올 것이라고 믿었던 2001년, 반도체 시장은 오히려 최악의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9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던 IT(정보기술) 산업의 경기가 꺾이기 시작하면서 직접적인 수혜자인 반도체 산업도 동반 추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

세계 D램 시장의 매출 규모는 전년도의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고, 이런 환경 급변은 하이닉스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LG반도체를 합병하는 등 덩치를 키우면서 11조원 대까지 부채가 늘어난 마당에 돈벌이가 줄어 들자, 금융 비용을 충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닥친 것이다.

사정은 긴박했다. 사실상 부도 직전의 풍전등화였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그대로 무너지게 놔두면 금융권 부실화, 반도체 산업 기반 붕괴 등 국가 경제에 더욱 위험천만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채권단의 선(先) 경영 정상화 방침이 곡절 끝에 나왔던 배경이다.

어렵사리 생존 여건은 확보됐지만, 이후 하이닉스의 행보는 매순간 백척간두 위를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 차례에 걸쳐 이뤄진 채권단의 출자 전환, 부채 탕감 등 채무 재조정과 하이닉스 내부의 뼈를 깎는 구조 조정. 그런 와중에 경쟁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로의 해외 매각이 추진되기도 했다.

다시 2004년. 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은 매출액 1조6,980억원, 영업 이익 6,810억원, 당기 순이익 6,200억원으로 1분기에 비해서 각각 매출액 26%, 영업이익 79%, 당기 순이익 62% 등의 대폭 증가세를 보였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내리 대규모 적자 행진을 해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변신의 첫번째 동력은 지난해부터 살아나기 시작한 반도체 경기. 휴대폰, 첨단 가전 등 디지털 제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반도체 수요도 오름세로 반전,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 신기술 개발로 원가 경쟁력 제고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원가 경쟁력이다. 사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하이닉스는 신규 투자를 할 형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기존 맒컥佯晝?최대한 활용하는 신기술(칩 패밀리 프로젝트) 개발에 주력했고, 이는 곧 투자 효율에서 경쟁사들을 물리치는 원동력이 됐다. 원가 경쟁력을 말해주는 영업 이익률에서 현재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D램 업체 중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사업 역량을 메모리 부문으로 집중하고 나머지 부문은 분사 혹은 매각, 몸집을 줄인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하이닉스는 과다한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신규 투자 재원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뒀다. 최근 비메모리 부문을 미국 씨티그룹에 9,500여억원을 받고 넘기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수 년 동안의 자구 노력에 경기 변동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하이닉스. 하지만 아직 완전한 회생이라고 보는 것은 시기 상조라는 지적이 많다.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얘기다.

우선 반도체 경기가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고개를 드는 것이 걱정이다. 엄밀히 말해 하이닉스의 최근 실적 개선은 상당 부분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것이 사실인데, 만약 이런 추세가 금세 꺾인다면 회생 가도에 크나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반도체 D램 경기가 올 2분기에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비관적 분석도 내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상계관세 부과에 이어 일본마저도 최근 하이닉스의 D램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해외시장의 벽이 높아지는 것도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낳는 요인이다.


- 중국 진출 등 공격적 경영

하지만 하이닉스는 한번 잡은 회생의 고삐를 더욱 다잡아 공격적으로 난관을 돌파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 중국 공장 신설에 나선 것도 이런 의지와 무관치 않다. 유럽의 ST마이크로사, 중국 정부와 3자간 합작 형식으로 투자하는 중국 공장은 하이닉스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사업이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공정으로 옮겨 가는 세계 반도체 업계와의 경쟁을 본격화할 수 있는 호기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 그 동안 투자 재원이 없었던 하이닉스는 경쟁사들의 12인치 생산 라인 증설을 냉가슴 앓으며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중국 공장 신설로 매년 급성장 중인 중국 반도체 시장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는 듬직한 교두보가 구축될 것으로 하이닉스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선 하이닉스의 중국 진출로 인해 한국의 선진 반도체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 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설립은 회사의 생존 전략 차원에서 이해되지만, 최첨단 기술을 중국에 거저 넘겨주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이닉스 측은 이에 대해 “ 중국에 이전되는 기술은 단순한 제품 공정 기술이며 D램 산업의 핵심인 연구 개발 기능은 국내에 남기 때문에 기술 유출 논란은 기우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다시금 반도체 업계의 뉴스메이커로 돌아 온 하이닉스. ‘풍운아’에 그칠지, 아니면 ‘우량아’로 거듭날지 그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입력시간 : 2004-08-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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