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화두 된 인재경영, 글로벌 경쟁 이끄는 힘의 원천

기업 최고의 가치는 '인재'
기업경영의 화두 된 인재경영, 글로벌 경쟁 이끄는 힘의 원천

산업정책연구원 주최 '초우량기업을 이끌어가는 그들, 핵심인재' 세미나에 참석한 각 기업 인사 담당자들.

삼성전자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몸소 챙기는 임직원이 있다. 그룹 내부에서 이른바 ‘삼성 펠로우’라고 불리는 5명의 ‘장인(匠人)’급 인재가 바로 그들이다. 회사의 역량을 좌우할 만한 인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보는 사운이 걸린 비밀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인재의 발굴과 기용은 어느 조직에나 중요한 일이다. 특히 살벌한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매순간 피 말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초일류 기업들에게는 ‘인재 경영’이 생존의 화두나 마찬가지다. 경쟁사들에게 인재를 빼앗기는 것은 곧 회사의 추락을 뜻하고, 반대로 인재를 많이 확보한다는 것은 든든한 날개를 다는 격이기 때문이다.

가을 취업 시즌을 앞두고 기업체들이 채용 전략을 가다듬는 가운데, 9월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인사 담당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행사가 열렸다. 산업정책연구원(IPS)이 주최하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등이 후원한 ‘초우량 기업을 이끌어가는 그들, 핵심인재’라는 주제의 세미나다. 삼성전자, GE코리아 등 지구촌을 쥐락펴락하는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의 인사 담당 임원들이 강사로 초빙된 이날 행사는 적지 않은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이 몰려 진지하게 배우는 자리이기도 했다.


- 인재가 '위대한 회사'를 만든다

“훌륭한 인재들과 하는 사업은 반드시 성공한다”(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 한국 휴렛팩커드의 임광동 부사장은 피오리나 회장의 격언을 인용하며 서두를 열었다. 인재 확보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이다.

기업 문화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는 휴렛팩커드는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오지 않고, 내부에서 양성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 회사가 기꺼이 인재라고 칭송하는 부류는 최고를 향한 열망과 강한 승부욕은 물론, 높은 도덕성과 직업 윤리에 감성 지능까지 두루 갖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회사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에 들어 맞는지 여부가 채용의 결정 기준이다.

임 부사장은 “ ‘위대한 회사’(great company)를 만들려면 인재를 최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이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한편 파격적인 보상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원칙을 꿋꿋하게 견지하는 회사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일단 확보한 인재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휴렛팩커드의 방침들은 대개 이렇다. △자발적인 경력 개발의 기회 제공 △1대1 멘토링(mentoringㆍ후견인 제도) 통한 조직 적응 유도 △개개인의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 △확실한 보상 프로그램 등이다. 특히 보상과 관련, 최상위 2단계에 속하는 인재들은 깜짝 놀랄 만큼 후한 임금을 받도록 한다는 게 원칙. 때문에 사장보다 월급을 많이 가져가는 임직원을 보는 일은 이 회사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인재 확보와 유지 관리에 최고경영자(CEO)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CEO가 얼마나 인재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인재가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훌륭한 인재들이 기존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는 이유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상사와의 갈등을 비롯한 인간 관계의 문제라는 사실이 많은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 잭 웰치, 맨파워 극대화에 주력

GE사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키운 잭 웰치(왼쪽)회장.

미국의 ‘포천’(Fortune)지 등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종종 선정되는 GE사의 인재 경영 철학은 많은 기업들의 벤치 마킹 대상이 되곤 한다. 그 중심에는 전임 회장이었던 ‘경영의 달인’ 잭 웰치가 남긴 발旻諛?짙게 자리잡고 있다.

1981년 회장에 취임한 잭 웰치는 재임 20년 동안 회사 가치를 무려 40배나 끌어올려 GE사를 세계 1위의 기업으로 만든 전설적인 인물이다. 1,700여 건에 달하는 인수 합병을 통한 회사의 대형화도 주목 받았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그의 업적은 조직 맨파워의 극대화에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잭 웰치는 이를 위해 10만 명 이상을 해고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와중에도 인재사관학교격인 ‘크로톤빌 연수원’의 부흥에 아낌없는 투자를 단행했고, 결국 이곳은 초거대 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산실로 거듭났다.

이 연수원에서는 연중 내내 각종 리더십 교육 과정이 계속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은 EDC(최고경영자 양성과정ㆍ연 1회), BMC(고위임원 양성과정ㆍ연 3회), MDC(간부 양성과정ㆍ연 8회) 등 3개의 코스다. 이들 교육 과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되,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GE사의 최상위 10% 정도의 인재에게만 도전의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짧게는 2주짜리에서 길게는 3개월짜리로 이뤄진 크로톤빌 연수과정은 혹독한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이름이 높다. 연수를 받는 동안에는 하루에 몇 시간도 못 잘 만큼 엄청난 과제가 부과된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이수 증서와 함께 특유의 T셔츠가 주어지는데, 이는 곧 핵심 인재로 인정받았다는 증표나 다름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GE사 역시 회사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은 대부분 내부에서 양성되는 셈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되는지는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의 사례로 입증된다.

잭 웰치 전 회장의 집권 중반이던 1994년, 그의 대를 이을 23명의 차기 CEO 후보들이 일찌감치 리스트로 작성됐다. 4년이 지난 1998년 중반에는 이 가운데 8명만 살아 남았고, 그 해 말에는 후보군이 3명으로 압축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3년이 지난 2001년 마침내 제프리 이멜트가 잭 웰치로부터 대권을 이어 받게 된다. GE 메디컬 시스템스 천두성 인사팀장은 이와 관련 “GE는 최고경영자감을 아주 오래 전부터 발굴해 면밀히 관찰하고 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최적의 후보를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GE사의 인재 육성관리 시스템이 마치 ‘사관학교’와 같은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하고 과학적인 인사 관리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업적을 쌓은 임직원들에게는 감격할 만큼의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통째로 빌려 전세계의 최우수 사원과 가족들을 초대해 벌이는 격려 파티는 그 대표적인 예다.


-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3%의 인재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대기업들의 사정은 어떨까. 가장 관심이 가는 회사는 ‘관리의 삼성’이라는 수식어로 통하는 삼성그룹, 그 중에서도 대표 주자격인 삼성전자다. 세계 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는 글로벌 기업답게 삼성전자의 인재 관리 전략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휴렛팩커드나 GE의 경우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내부 양성과 외부 영입의 양날개 전략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90년대 초부터 글로벌 경영을 본격 추진하면서 내부 역량만으로는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상황 인식 때문이었던 듯하다.

2003년 현재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5만9,000여명 중에 외국인은 약 500여명. 이들 대부분은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인재들로, S(Super)급, A(알파벳의 첫 글자)급, H(High Potential)급 등 3계층으로 이뤄진 3%의 인재 풀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3계층의 핵심 인재들을 붙들어 두기 위한 삼성전자의 노력도 치밀하다. S급 인력에게는 사장급 연봉 지급을 주저하지 않는 데다, 외국인 인재들에게는 조금의 불편도 없도록 전담 도우미 체제(Global Help Desk)를 운영 중이다.

더군다나 윤종용 부회장 등 CEO들이 직접 나서 1대 1로 ‘면접 관리’를 하는 인력도 상당수라고 한다. 또한 3%의 핵심 인재들만 전담해서 관리하는 팀도 비밀리에 가동 중이며, 이들 인재의 인적 정보를 취급하는 전산망에는 극소수의 인가자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처럼 외부 수혈된 인력의 관리와는 별도로 삼성전자의 인재 발굴과 육성 전략도 꽤 눈길을 끈다.

미래의 핵심 인재들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특정 대학을 지원하며 특정 기술 개발을 유도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로 인연을 맺은 대학에는 미국과 일본, 국내의 유수 대학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는 또 박사급 인력의 대거 확보에 나서 2000년 1,050명 수준에서 2005년에는 2,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수치는 전체 연구 개발 인력의 10%에 해당된다.

삼성전자의 인재 관리 시스템이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는 틈은 있는 모양이다. 이 회사 김형준 상무는 “외부에서 우수 인력을 어렵게 데려와도 기존 조직의 기득권이나 배타성 등으로 인해 금세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핵심 인재를 보유하려면 그 인물이 능력 발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 등의 인프라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 '핵심인재' 세미나 주최기관 소개 ◆

'초우량 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재' 세미나를 주최한 산업정책연구원은 산업자원부 산하의 사단법인 연구기관. 외국의 산업정책 연구, 정부 정책 자문, 기업 경영자 교육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또한 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각종 세미나를 연간 수 차례 개최하는 한편 지난 2000년부터 국제경영 분야의 석학들과 함께 국가경쟁력 보고서도 발간해 오고 있다.

이번 세미나를 후원한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기업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올해 설립된 경영전문대학원이다.

미국 법학계의 원로인 데이비드 N. 스미스씨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 화제를 부르기도 했던 이 대학원은 전ㆍ현직 대기업 CEO 출신 인사들이 직접 강의를 맡는 등 기업 현장에 밀착된 교육으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9-23 11:4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