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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뉴딜정책 '딜레마'
정부의 연·기금 이용 추진에 연금운용 주무장관이 '제동'
경기부양책 놓고 시각차, 정부·여당 강행 합의 불구 '불씨' 남아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이헌제 경제부총리가 경기부양책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형 뉴딜 정책’이 재원 마련을 둘러싼 논란에 부닥쳐 삐걱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 등 각종 연ㆍ기금을 경기 부양책의 주요 재원으로 삼겠다는 당초 정부의 계획이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공격을 받은 데 이어 여권 내에서도 심상찮은 반발에 봉착한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운용의 주무 장관이자 유력한 대권 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동원 방안에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여권 내부의 정책 혼선을 더욱 가중시킬 전망이다.

김 장관은 11월 19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을 깨뜨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이라는 가마솥이 국민 여러분의 노후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안정되게 만드는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말해, 경제 부처가 주도하는 정책 방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물론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을 깨뜨린다’는 것은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을 쓰다가 국민연금의 건전성마저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표현. 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주무 장관으로서 국민연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을 다독이기 위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대권 행보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ㆍ여당은 ‘김근태 파문’에도 불구하고 뉴딜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일단 입장을 정리한 상황이다. 19일 밤 늦게 긴급 회동을 가진 당ㆍ정ㆍ청 수뇌부가 몇 가지 보완책을 마련한 뒤, 당초 예정대로 정책을 강행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히 남는다. 만약 뉴딜 정책이 연ㆍ기금의 부실을 낳기라도 한다면 여권은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연ㆍ기금을 동원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총 10조원 규모의 투자사업



11월 7일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정보통신(IT) 분야 등에 총 10조원 규모의 투자 사업을 벌이는 것을 골자로 한 한국형 뉴딜 정책을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또 이를 위한 재원으로는 재정 지출뿐만 아니라 각종 연ㆍ기금, 공기업, 사모펀드, 외국자본 등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시선을 모았던 것이 지난 6월말 현재 136조원에 달하는 여유 재원을 가진 연ㆍ기금의 투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인 센터, 보육 시설 등 공공 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

현재 연ㆍ기금 중 가장 넉넉한 여유 재원을 가진 곳은 국민연금이 거의 유일한 상황에서 이 같은 계획은 사실상 ‘차출 대상’을 정해 놓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정부는 또 침체된 주식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연ㆍ기금의 증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이를 통해 외국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를 지원한다는 방안도 함께 내놓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연ㆍ기금이 주식 투자를 확대할 경우, 증시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평가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실종된 채, 일부 기관 투자자들과 외국인들이 쥐락펴락하는 국내 증시에 상당한 규모의 연ㆍ기금이 들어온다면 왜곡된 수급 구조를 개선하는 데 ‘원군’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최근 SK㈜와 소버린 자산운용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영권 다툼에서 보듯, 국내 우량 기업들이 외국인 대주주의 손에 놀아나면서 국부가 유출되는 사태를 막는 데도 연ㆍ기금이 ‘백기사’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정부에서는 연ㆍ기금의 SOC 투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ㆍ기금은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받고, 정부는 재정 지출을 아끼면서 공공 시설 확충과 경기 부양의 두 마리 토끼를 얻는 등 서로에게 ‘윈 - 윈’이라는 것이다.

"위험성 높은 투자" 반대의견 많아



정부와 여당의 연기금 운용계획에 이견을 개진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하지만 연ㆍ기금의 뉴딜 정책 동원에 반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연ㆍ기금의 투자처를 판단하고 결정할 가능성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혹여 정부의 잘못된 투자 결정으로 연ㆍ기금의 부실이 초래된다면 결국 국민의 혈세로 이를 메워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당초 연ㆍ기금의 경기 활성화 동원에 반대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국가와 국민의 장래가 달린 연ㆍ기금을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무리하게 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더욱이 정부가 직접 나서서 투자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은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연ㆍ기금이 우량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투입되는 것도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무래도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연ㆍ기금이 의결권을 가진 주주로 부상하면 해당 기업들이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ㆍ기금을 직접 운용해 자산을 불리는 책임을 가진 쪽의 견해는 어떨까.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고 운용하는 것은 국민들이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지금 쓰려고 하는가”라고 반문, 정부의 방침에 약간은 불편한 듯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또 “기금의 투자처로는 이자를 받는 채권, 시세 차익을 노리는 주식, 그리고 직접 사업을 벌이는 실물투자 등이 있지만 사업과 주식 투자는 잘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은 투자”라며 “이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금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안정성, 수익성, 공공성 등 국민연금의 3대 운용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성이다. 김근태 장관이 대국민 메시지에서 강조한 것도 이 대목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이자를 받는 자산(주로 채권) 중심의 안정적 투자를 운용의 최대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연 평균 운용수익률이 10%를 훌쩍 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7%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 투자처인 채권의 수익률도 함께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새로운 투자처 발굴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연ㆍ기금 동원 논란과 관련해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 귀가 솔깃해진다.

그럼에도 연ㆍ기금 운용 주체들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은 내심 불안하다. 과연 뉴딜 정책은 경제도 살리고 국민연금 등 연ㆍ기금도 살찌우는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주장하는 연ㆍ기금 투자의 독립성ㆍ전문성ㆍ투명성 요구를 받아들여 뉴딜 정책을 밀어 붙이기로 한 여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11-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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