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정서 발효 앞둔 산업계정부·기업 기후변화협약 대책마련에 부심, 에너지 정책 개선 서둘러야

온실가스 감축 '발등의 불'이다
교토의정서 발효 앞둔 산업계
정부·기업 기후변화협약 대책마련에 부심, 에너지 정책 개선 서둘러야


“이번 설문 조사가 벌써 네 번째인데 과거 세 차례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 대상이 매번 조금씩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준비 태세가 미흡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1997년)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의 내년 2월 발효를 앞두고, 국내 산업계의 대응 실태를 점검한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가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 내뱉은 말이다.

실제로 대한상의가 최근 에너지 다소비 업체 200개사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 업체의 58.7%가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기업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9.3%가 손을 놓고 있었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무려 64.9%가 무대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더했다.

대비하지 못하는 이유도 ‘기후변화협약을 잘 몰라서’가 32.4%로 가장 높게 나타나, 국제적인 동향 파악에 상당히 어두운 국내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주로 정보 부족으로 대응 태세가 미비한 반면, 대기업들은 알면서도 대응에 소홀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의 정책 지원을 기다리거나 또는 기후변화협약이 ‘발등의 불’은 아니라는 소극적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과 정책적 배려가 기후변화협약 대응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도 자체적인 대책 수립을 더 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에너지효율 개선작업에 박차
이런 가운데 나름대로 발 빠른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몇몇 기업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정유 철강 자동차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일부 기업은 몇 년 전부터 착실한 대응을 해온 터라 업계의 눈길을 끈다.

국내 정유업계 시장 1위 업체인 SK㈜.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온실가스 저감 실적 평가 및 인증 체계에 대한 정부의 시범 사업에 참여하면서 회사 내부에 온실가스 저감 실적을 등록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는가 하면, 애초부터 에너지를 적게 쓰기 위한 에너지 효율 개선 작업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 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의 LNG 사용을 대체할 수 있는 LFG(Landfill Gasㆍ매립지에서 발생하는 가스)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1994년부터 울산시 남구 성암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LFG를 활용해 온 SK는 이 사업을 통해 메탄 발생량도 줄이고 LNG도 대체하는 일거양득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예 다른 기업들의 에너지 절약을 돕고 수익을 얻는 ESCO(Energy Service Companyㆍ에너지절약 전문기업) 사업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SK는 2000년에 산업체 생산 설비를 대상으로 하는 ESCO 1종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2001년부터는 건물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ESCO 2종 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대표적 철강업체인 포스코의 대응 방향도 관심의 대상이다. 1990년대부터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해온 포스코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온실가스 및 에너지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정부와 체결했다. 올해 다시 2차 자발적 협약을 맺은 이 회사는 2008년까지 지난해 에너지 사용량의 8%를 절감한다는 목표로 에너지 효율화 계획을 추진중이다. 포스코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중인 온실가스 저감량 등록, 배출권 거래제 등의 시범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외국 철강업체들과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공동 기술 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선진 제철소의 실태를 파악해 회사의 기후변화협약 대응 정책에 반영해 나가는 것도 국제적 공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포스코는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큰 회사 특성상, 다른 업종에 대한 배려 차원의 계획도 갖고 있다. 일례로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고장력 자동차 강판이나 모터의 전력 손실을 크게 줄이는 부품 등을 개발한다는 구상은 자동차 업계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매우 큰 자동차 업계도 기후변화협약의 강한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대표적 업종이다. 하지만 대응 태세는 진작부터 가동돼 왔다. 국내 최대 완성차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일찌감치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자동차나 엔진의 개발에 힘을 쏟아 왔는데, 앞으로는 부품 구매에서 폐차 단계에 이르는 자동차 산업의 전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 중에는 기후변화협약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는 사례가 적지 않으나 이들에게도 애로 사항이 없지는 않다”며 “정부와 기업이 보다 긴밀한 협력 체제를 갖춰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협약 및 교토의정서

‘기후변화협약’은 지구 온난화 등 이상 기후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 메탄 등 6가지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여 인류의 파국을 막자는 취지로 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라 1997년 제3차 당사국 총회가 열린 일본 교토에서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의무 감축을 결의한 것이 바로 ‘교토의정서’이다. 세계 3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러시아가 최근 55번째 비준 국가가 되면서 교토의정서는 내년 2월 발효가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의정서에 가입한 39개 선진국(총 가입국은 189개국)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5.2% 감축해야 한다. 2002년말 의정서에 비준한 우리나라는 개도국으로 분류돼 1차 의무 감축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2013년 또는 2018년부터는 의정서 의무 이행 당사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가 이미 세계 9위에 이르는 데다 증가율도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지금부터 당장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지금껏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의존해온 국가 경제가 큰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약간은 관망하던 자세로 있던 정부와 산업계에 최근 비상이 걸린 까닭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8 19:20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