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현안 놓고 여권 핵심부와 갈등 증폭, 경질설 '솔솔'

이헌재·청와대 '불편한 동거'
각종 현안 놓고 여권 핵심부와 갈등 증폭, 경질설 '솔솔'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으로 청와대를 비운 사이 정ㆍ관계 일각에서는 개각설이 솔솔 피어 오르고 있다. 올 연말이냐 내년 초냐 시기만 엇갈릴 뿐, 분위기는 대체로 개각을 기정 사실화하는 쪽이다.

이런 가운데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개각설의 주요 등장 인물로 자주 입에 오르내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개각설은 한마디로 ‘경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게다가 후임자에 대한 하마평도 그럴 듯하게 나돌아, 이 부총리 경질설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통상 연말이 되면 개각과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돌게 마련이다. 또 개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연말이나 연초에 단행되는 것도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그럼에도 이 부총리의 거취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가 경제 부처 사령탑인 데다, 올 초 취임 이후 종종 여권 핵심과 갈등을 빚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들어 여권 내 파열음이 불거질 때마다 이 부총리가 당사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은 심상치 않은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1가구 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정책의 내년 시행을 놓고 청와대 쪽과 ‘일합’을 겨룬 것은 단적인 사례다.


양도세 중과세 "강행" "검토" 대립각
양도세 중과와 관련한 청와대의 기류는 일단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인 이 11월 말 대학 강연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같은 방침을 여러 차례 확인했을 뿐 아니라,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도 11월 29일 “당초 당ㆍ정ㆍ청 간에 합의한 내년 1월 1일 시행 방침에는 변화된 게 없다”며 선을 긋고 나왔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12월 3일 기자 간담회에서 “양도세 중과 연기를 아직 검토중”이라고 말해, 청와대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11월 중순에도 “국회 논의에 따라서는 양도세 중과 시행을 1년간 연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어, 이날 발언으로 청와대와의 대립각을 이어간 셈이 됐다.

이 부총리는 또 “나는 한쪽에서 보면 힘이 없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묘한 말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제 회생의 중책을 맡겨 놓고는 사안마다 시비를 거는 듯한 일부 여권 핵심부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작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 여권 내의 정치적 지형이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듯 보이는 대목은 이 부총리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11월 25일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 사퇴 파문을 둘러싸고 불거진 잡음만 하더라도 그의 입지를 적잖이 흔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퇴 파문의 정확한 진상은 물론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ㆍ관계의 대체적 시각은 서로 ‘자기 사람 밀기’를 하던 청와대와 재경부의 알력에서 이번 사건이 돌출했다는 해석이다.

후보추천위원회가 통합거래소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ㆍ김광림 재경부 차관)에 최종 추천했던 후보들은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와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 등 3명. 문제는 이들 3명의 후보가 하나같이 이른바 ‘모피아’(재경부 관료 출신 집단)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참여정부가 정부 부처 관료 출신들의 산하기관 장악에 제동을 걸어온 그 동안의 사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재경부가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든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했던 셈이다. 그러잖아도 이 부총리는 취임 이후 그의 핵심 인맥으로 분류되는 ‘이헌재 사단’이 민간 금융기관과 정부 산하기관의 요직에 대거 진출하면서 색안경 낀 시선을 받아 오던 차였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최종 후보 3명에서 배제된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관련한 논란이다.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 공모 기?이전인 10월 무렵부터 증권가에는 한 전 수석이 이미 이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밀고 있다는 그럴 듯한 근거도 따라 붙었다.


통합거래소 이사장 놓고 힘겨루기
실제 11월 27일 이사장 후보 추천 과정에 ‘청탁성 전화’가 걸려 왔다는 권영준 추천위원(경희대 교수)의 폭로가 있기도 했다. 권 추천위원의 주장은 청와대와 가까운 한 인사가 “한이헌 전 수석이 청와대의 낙점을 받았다”는 요지의 말을 건네며, 추천위 회의 때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부산ㆍ경남권의 지지 기반이 취약한 현 여권에 한이헌 전 수석은 쓰임새가 많은 ‘히든 카드’라는 분석이 많다. 여권이 한 전 수석을 부산에 설치될 통합거래소 이사장으로 민 것도 2006년 부산시장 선거에 내보내기 위한 표밭 다지기 차원의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그러나 통합거래소 후보 사퇴 파문과 관련해 어떠한 개입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다만 “부처 공무원 출신들이 자기 관련 분야에서 독식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혀, 재경부의 요직 독점만큼은 반드시 차단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이 부총리로서는 일단 ‘파워 게임’에서 작지 않은 상처를 입은 것으로 관측된다. 재경부 수장으로서 자신이 이끌고 있는 부처 출신들의 이기주의를 또 다시 노출시킨 것뿐 아니라, 여권 핵심과의 힘겨루기에서 한 걸음 물러난 모양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정책·노선서 큰 차이 드러나
이 부총리가 여권 핵심과 갈등을 빚은 것은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여름에는 노무현 정부의 실세들인 386의원들과 경제 논쟁을 벌인 바 있는 데다, 얼마 전에는 한국형 뉴딜 정책의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낯을 붉히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경제 정책과 노선에 관한 한, 이 부총리와 노무현 정부의 실세들이 한배를 타기 힘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갈수록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떠도는 개각설에 이 부총리가 포함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상당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종적인 칼자루는 역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 경제 회생을 위한 최선의 카드로 영입한 이 부총리를 내칠 경우, 마땅한 대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시장의 중론이다. 노 대통령은 과연 어떤 결단을 내릴까.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8 22:5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