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사퇴, 정부 "정책기조 유지" 불구 부정적 파장 전망
'시장주의자' 떠난 경제, 향후 진로는? 이헌재 부총리 사퇴, 정부 "정책기조 유지" 불구 부정적 파장 전망
“개인적인 문제로 논란과 의혹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원활한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간신히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민 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사임한다.” 공직자 재산 공개 이후 불거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결국 3월 7일 불명예 퇴진했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사퇴를 촉구했음에도 그를 신임했던 청와대가 들끓는 여론의 질타에 백기를 든 셈이다. 이 전 부총리 역시 ‘투기 딱지’가 붙은 채로는 경제 수장으로서 영(令)이 안 설 것으로 판단했을 터이다. 청와대가 이 전 부총리를 끝까지 감싸려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경제 때문이었다. 개혁과 도덕성이라는 집권 철학의 손상을 감수하더라도 가까스로 살아나고 있는 경제의 회복 기조를 유지하는 게 더 급선무라고 본 것이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밝혔던 노 대통령의 재신임 의사에는 그 같은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정책의 일관성이 매우 필요하며, 이 부총리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정책들이 많다. 이 부총리가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과 언론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이 전 부총리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만족감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가 바닥을 모른 채 하강하고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좌파주의 시비도 끊임없이 제기되던 지난해 2월 ‘구원 투수’로 전격 발탁한 이 전 부총리가 기대에 걸맞은 역할을 해줬다고 평가한 것이다. 특히 성장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로 꼽히는 이 전 부총리가 경제 정책의 사령탑을 지킴으로써 가져온 효과는 무엇보다 대내외 경제 주체들의 신뢰감 회복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 전 부총리는 386세대를 비롯한 참여정부 핵심 세력의 분배 우선주의 경제 철학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앞장서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자임했다. 지난해 7월 여당에서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가 공론화되자 “386세대는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화살을 날렸는가 하면 “이러다 시장 경제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반격을 잠재우기도 했다. 11월에는 한국판 뉴딜 계획의 재원 마련을 위한 연ㆍ기금 동원 방침을 놓고 여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슴없이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12월에는 노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인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과 1가구 3주택 중과세 시행 시기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난 연말에는 이 전 부총리가 개각 대상에 올랐다, 스스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등의 설이 시중에 분분하게 퍼지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는 그러나 거뜬했다. 노 대통령이 ‘경제 올인’을 선언한 마당에, 시장에서 가장 신뢰 받는 인물 중의 한 명인 그를 경제 사령탑에서 내치는 것은 상당한 부담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 초부터 완만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 상황도 이 전 부총리의 입지를 더욱 굳혀 주었다. 노 대통령은 “재경부가 잘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이 전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단기적 영향 두 달여 동안 기세등등하게 오르던 주가가 빠지는 심상찮은 조짐도 최근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탓이 크다고 말하지만, 이헌재 사퇴 변수의 충격파 역시 적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 정책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후임 경제 부총리에 누가 앉느냐 하는 문제는 향후 경제 전반에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올 전망이다. ‘시장주의자 이헌재’의 빈 자리가 커 보이는 요즘이다.
입력시간 : 2005-03-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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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