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우선협상자에 선정, 인수 성사 땐 국내 맥주·소주시장 독보 업체로 부상

하이트 맥주, 주류업계 지존 야망
진로 우선협상자에 선정, 인수 성사 땐 국내 맥주·소주시장 독보 업체로 부상

국내 주류 업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 초대형 태풍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의 눈은 국내 1위 맥주 업체인 하이트맥주.

이 회사는 지난 1일 올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매물이라는 진로 인수전에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여세를 몰아 주류 업계를 평정할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소주 업계의 절대 강자 진로를 거머쥠으로써 소주-맥주의 양대 주류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것이다.

하이트맥주의 야망은 쟁쟁한 10여개 컨소시엄을 제치고 3조1,600억원이라는 거액의 입찰 가격을 써낸 배포에서 쉽사리 읽혀진다. 당초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컨소시엄 가운데 유력한 우선 협상대상자 후보로는 풍부한 자금력과 유통업 노하우를 가진 롯데를 비롯해 CJㆍ두산 등이 꼽혔던 게 사실이다.

반면 하이트는 진로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지만 자금력에서는 불리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때문에 하이트가 진로 인수전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주류 업계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견제하려는 전략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은 그러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교원공제회ㆍ군인공제회ㆍ산업은행 등 토종 자본을 끌어들인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의 입찰 가격이 CJ나 두산 컨소시엄 등이 제시한 금액보다 3,000억원 이상 높게 나타난 것. 업계에서는 이런 결과를 두고 “하이트맥주가 ‘풀베팅’을 했다”며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하이트맥주의 ‘풀베팅’은 어느 정도 예고된 측면이 없지 않다. 오너인 박문덕 회장이 올해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깊은 속내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좋은 찬스가 올 것 같은 예감”이라며 “시너지 창출을 위해서 진로 인수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하이트의 한 관계자도 “회장님은 오래 전부터 진로를 관심 깊게 지켜봤으며 이번 인수 작업에서도 총지휘자의 역할을 맡아 꼼꼼히 모든 사안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의 진로 인수 작전이 꽤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돼 왔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시장 지배력 시너지 효과 엄청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주류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은 말 그대로 엄청나다. 액면으로만 보더라도 하이트는 당장 맥주와 소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독보적 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이트와 진로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58%와 55%에 달했다.

맥주 시장에서는 OB맥주가 42%의 점유율로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으나 수도권을 벗어나면 하이트맥주에 약세를 면치 못한다. 소주 시장에서는 진로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예 없다. 금복주(9.9%) 대선(8.4%) 무학(7.4%) 등 몇몇 지방 소주 업체 정도가 10%에 못 미치는 시장 점유율로 간신히 체면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주류 업계가 불안해 하는 것은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끼리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두 회사가 공조 체제를 통해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더욱 무서운 대목이다.

예를 들면 진로의 유통망을 활용해 하이트맥주를 밀어주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현재 하이트맥주는 유독 수도권 지역에서만큼은 40% 정도의 시장 점유율로 OB맥주에 뒤지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90%가 넘는 지배력을 가진 진로를 등에 업고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진로는 소주 업계의 최강자이지만 영남 지역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때문에 영남권 시장 점유율 90%를 넘는 하이트맥주의 유통망을 원군으로 삼는 시나리오가 쉽사리 예상된다.

결국 하이트와 진로가 서로 밀어주면서 각자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극대화하는 전략이 가능한 셈이다. 이 같은 유통망 통합 효과 외에도 공동 마케팅 등을 통한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성 증가도 두 회사의 결합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만큼 하이트-진로 연합군의 시너지 효과는 크고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술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절대 강자의 등장이 현실로 다가오자 주류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하이트의 경쟁 업체인 OB맥주와 ‘산소주??두산, 지방 소주 업체들 할 것 없이 업계 전체가 태풍의 영향권이다. 심지어 하이트의 점유율이 미미한 양주 업계에서도 ‘진로 변수’가 가져올 시장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과점 여부 판정이 최대 복병
하지만 하이트의 진로 인수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두 회사의 결합이 이뤄지려면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여부 판정이라는 최대 장애물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의 초점은 대체로 공정위가 기업 결합 심사 과정에서 소주 시장의 범위와 점유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데로 모아진다. 하이트는 현재 전북 지역에서 하이트주조라는 계열사를 통해 소주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하이트주조의 시장 점유율은 전북 지역에서 42%, 전국 기준으로는 1.5%다.

문제는 소주 시장의 범위를 전국으로 하든 전북 지역으로 하든, 하이트가 진로(전국 55%, 전북 50%)를 인수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독과점 기준인 50%의 시장 점유율을 넘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하이트주조를 정리하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소주 시장과 맥주 시장을 별개의 시장으로 보느냐, 하나의 시장으로 보느냐 하는 점도 논란 거리다. 만약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면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결합은 전체 시장의 56%를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당연히 독과점 규정 위반이다. 그러나 하이트맥주 측은 “소주와 맥주는 구매자들이 전혀 다른 상품으로 인식하는 등 별개의 시장을 형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밖에도 공정위는 기업 결합에 대한 독과점 심사 기준을 몇 가지 더 가지고 있다. ▲외국 업체를 포함한 신규 사업자의 진입 조건 ▲가격이나 거래 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 ▲기업 결합이 아니면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기업 결합의 효율성이 독과점 폐해를 상쇄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다. 하이트 측은 공정위가 내놓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판단의 가능성에 모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에 대해 “시장 점유율과 경쟁 제한성, 소비자 후생, 효율성 등을 모두 감안할 것”이라며 “진로는 시장 획정 문제가 복잡해 검토할 것이 많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4-13 16:30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