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경품제공 등에 따른 경영손실 보전 의도진대제 정통부장관 "신중접근" 밝혀 일단 수면 밑으로

과열 경쟁이 부른 인터넷 종량제 논란
무리한 경품제공 등에 따른 경영손실 보전 의도
진대제 정통부장관 "신중접근" 밝혀 일단 수면 밑으로


“월 1만7,800원, 당일 개통, 설치비(4만원) 및 3개월 이용료 무료, 사은품 증정.”

주택가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광고다. 사은품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Mp3플레이어, 복합기, 5.1채널 스피커, 디지털 카메라, 밥솥, 비데, 청소기, 녹즙기, 냄비, 족탕기, 전동칫솔, 책상, 의자 등등. ‘정말일까?’ ‘한번 바꿔봐?’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4월 11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인터넷 종량제에 대해 “숙성기간을 거쳐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이번 종량제 논란은 인터넷 서비스 가입대행 업체들의 과열된 가입자유치 경쟁으로 일찌감치 예고됐다.

최근 KT의 ‘메가패스 사업 경제성 분석’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한 일간지에 따르면 이 같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연간 지출된 비용만도 4,000억~5,000억원에 이른다. 2001년 초 두자리 대의 월간 가입자 증가율이 2003년 말 소수점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무리한 경쟁이 빚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인터넷 종량제를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KT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한 명을 유치하는 데 든 비용은 2003년 14만1,000원에서 2004년 18만6,000원으로 1년 사이에 4만5,000원 증가했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입자 포화 상태로 신규 가입자 확보가 어려워지자 ISP(인터넷서비스 업체)들의 비정상적인 가입자 유치전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타 업체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이에는 한 명당 4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 3만원짜리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한 이용자가 내는 연간요금이 36만원임을 감안하면 ‘자기 살 파먹기’ 식의 싸움이다.

이용경 사장의 여론 떠보기?
KT 이용경 사장이 3월 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이번 인터넷 종량제 논란에 본격적인 불을 지피긴 했지만, 인터넷 종량제가 대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논란의 시점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한 EBS 인터넷 수능 동영상 강의 시작을 앞두고 였다. e 메일, 인터넷 서핑 등 일반적인 인터넷 서비스보다 시스템에 많은 부하(負荷)가 걸리는 동영상 강의 시청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됐던 당시, 초고속 인터넷의 대표 사업자인 KT가 설비 증설과 설비투자비 회수를 해 인터넷 종량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같은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강력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KT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올 3월 11일, KT 이용경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인터넷 종량제 실시 여부를 묻는 주주들의 질문에 “정부와 사업자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3월 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우리 인터넷 이대로 좋은가’라는 글에서 “수익은 고정되고, 트래픽량은 2배로 늘었다”면서 “통신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초고속 인터넷이 아니라, 초저속 인터넷이 될 것”이라며 종량제 도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개인 블로그를 통한 주장이지만, 일부에서는 인터넷 종량제 실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띄운 애드벌룬으로 보기도 했다. 낮춤 경영, 열린 경영, 문화 경영, 블로그 경영, 상생 경영, 스킨십 경영 등 어느 최고 경영자(CEO)보다 많은 ‘경영’을 몰고 다녔던 이 사장이 새롭게 내 놓은 ‘애드벌룬 경영’이라는 것이다.

종량제 시행 주장 근거도 허약
이용경 사장이 인터넷 종량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을 보자. 테이터량은 해마다 두 배씩 느는 데 비해 수입은 증가하지 않아 통신망을 확충할 수 없다는 것과 인터넷 접속 시간이 도시 사용자에 비해 적은 농촌 사용자가 도시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 요금을 대납하고 있다는 것 등 크게 2가지다.

그러나 수입이 늘지 않아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없어 종량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KT 초고속인터넷 사업팀이 작성했다는 ‘메가패스 사업 경제성 분석’ 자료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료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2003년 559만 명에서 2008년에는 660만 명으로, 초고속 인터넷 매출은 2003년 1조원에서 2008년에는 2조5,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 2월말 현재 국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1,200만 명 중 50.9%에 해당하는 610만7,000명을 KT가 확보하고 있고, 이에 따라 수입도 증가하고 있다. 현실이 2년 전의 전망과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농촌 지역의 사용자가 도시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요금을 대납하고 있고, 상위 5%의 사용자가 전체 데이터 트래픽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내는 이용자들을 위해서라도 부분적인 종량제 실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논리가 허약하다. KT의 한 관계자는 “소량 이용자는 지금과 똑 같은 요금을 내고, 헤비 유저(heavy user)에 대해서만 요금을 더 받는 종량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종량제를 시행하게 되면 인터넷을 적게 사용하는 가입자는 지금보다 요금을 덜 내게 된다며 도입을 찬성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국내 초고속 인터넷 시장의 6개 사업자 중 50.9%를 차지하고 있는 KT가 종량제 실시로 서비스 비용은 줄이고 이용료는 올리는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용경 KT 사장의 “애드블룬 경영”
블로그 통한 '애드벌룬 경영' 눈길

김윤현 기자
이용경 KT 사장은 공학박사 출신의 전문 경영인답게 2002년 취임 이후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경영 철학으로 회사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가 관료적 구태를 서서히 벗고 첨단 정보통신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데는 이 사장의 덕이 크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 사장의 경영 철학을 규정하는 키워드들은 다분히 긍정적이다. 이른바 ‘마음 경영’은 그가 거대 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꼽는 데서 유래한다. 효율적인 업무 체계나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같은 외형적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임직원의 내면적 태도가 사실상 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이라는 인식이다.

때문에 그는 ‘현장 경영’과 ‘열린 경영’을 중시한다. 전국 각 일선 영업장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는가 하면, 임직원들과 허물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권위주의의 벽을 허무는 데도 주력한다.

최근에는 그의 경영 철학 목록에 ‘블로그 경영’이 새로 가세했다. 개인 미니 홈페이지 블로그를 통해 임직원들이나 누리꾼(네티즌)들과 사이버 대화의 창을 연 것이다. 블로그 경영은 사실 마음 경영이나 열린 경영과 맥을 같이 한다. 누구나 쉽고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경영 철학과 방침을 알리고 이에 대한 반응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종량제 논란에 불을 지핀 이 사장의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지적이 많다. 사적인 의사소통 창구인 블로그를 통해 매우 중대한 공적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네티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계산된 노림수가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다소 부담이 적은 사적인 창구를 통해 의견을 개진했다가 여차하면 물러설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사장이 이젠 ‘애드벌룬 경영’에 나선 것 아니냐’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스타일을 구긴 것은 또 있다. 한 일간지가 14일 KT 내부 문건을 입수해 공개한 보도에 따르면 초고속 인터넷의 수익 전망은 아주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 재원이 없다”면서 종량제 도입을 언급했던 이 사장의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4-21 17:03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