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급락 '불똥' 한·일 등 아시아로 번져, 6월 이후 회복 예상

흔들리는 증시, 환율 직격탄…상승 모멘텀이 없다
미국 증시 급락 '불똥' 한·일 등 아시아로 번져, 6월 이후 회복 예상

올들어 종합주가지수 1,000돌파로 대세상승의 나래를 펼치던 주식시장이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이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어닝 쇼크’를 보이면서 ‘곰’(약세론자)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낙관론 일색이던 주식시장에 그늘이 지기 시작한 것은 이달 들어서면서부터. 지난달에는 외국인 매도 등으로 증시가 다소 지치긴 했지만 가파른 상승 뒤에 오는 휴식기간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잔인한 4월’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달 8일만 해도 1,000 주위를 맴돌던 종합주가지수는 열흘 만인 18일 장중 917까지 밀려났다. 무려 연 6거래일 동안 하락행진이 이어진 결과였다.

글로벌 증시의 지표인 미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다 환율 하락으로 인해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치보다 다소 낮은 실적을 발표한 것이 하락의 촉매제가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백을 국내 투자자들이 채우지 못하면서 수급 불균형이 생겨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이처럼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대세상승 기대감에 젖어 있던 투자자들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주식을 더 갖고 있어도 되는 지, 아니면 손실을 입기 전에 빨리 팔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 지 투자자들은 고민하고 있다.

다수의 증시 전문가들은 당장 주식시장이 급반등할 재료가 별로 없다며 6월 이후나 하반기를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다음 달까지는 약세가 이어지거나 횡보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잠시 쉬어가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고 있다.

잘 나가던 증시 환율이 제동 걸어
지난달 초만 해도 1,000에서 거래됐던 증시가 조금씩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은 환율 하락 추세가 계속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부터다.

지난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00원선을 여러 차례 깨면서 하락세가 본격화되자 이 같은 우려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현대차와 같은 대표 기업들은 물론이고, IT 부품주와 같은 수출 주도형 중소기업까지 채산성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가는 살금살금 밀리기 시작했고 1,000선 아래로 내려왔다.

특히 이달 들어 주가가 크게 급락한 것은 이 같은 우려감이 일부 기업을 통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올 1ㆍ4분기에 매출액 13조8,000억원, 영업이익 2조1,500억원의 실적을 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액은 4%, 영업이익이 46% 줄어든 수치다. 매출액에 비해 영업이익 감소율이 높았던 데는 환율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것이 삼성측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ㆍ4분기와 비교할 때 환율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 규모가 9,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뿐만 아니라 현대차ㆍLG전자 등도 원화환율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환율 하락이 실제로 대표 기업들의 기업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면서 증시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환율 하락과 이에 따른 기업들의 ‘어닝 쇼크’가 직접적인 주가하락의 요인이라기 보다는 취약해진 투자자들의 심리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장득수 태광투신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어닝 쇼크가 시장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증시의 분위기가 좋았다면 이 정도의 기업 실적이라면 선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문제는 지금 증시가 외국인 매도 등으로 다소 취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 실적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작은 악재에도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매도가 수급 불균형 불러
증시가 다소 힘이 약해진 데는 외국인 매도가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환율 복병이 커진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 마저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자 시장 분위기가 다소 침체되었다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2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 무려 연 20거래일 동안 순매도 행진을 벌였다. 순매도 규모도 2조원에 달했다. 외국인이 이처럼 오랫동안 순매도 행진을 벌이자 투자심리가 매우 취약해졌다. 주식시장이 항상 고점에 가까워질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순매도한 경험이 투자자들의 머릿 속에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전업 투자자인 김성태(가명ㆍ34)씨는 “과거에 주식시장이 잘 나갈 때 대세상승이라는 말만 믿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주가가 급락해 손해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외국인이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주식투자를 하기 부담스럽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내내 거세게 매도 공세를 펼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매도세를 멈추고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이미 개미들의 투자심리가 상당히 얼어붙은 모습이다.

이 같은 양상은 신규 자금 유입 여부를 나타내는 고객 예탁금의 감소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일 11조원에 달했던 고객예탁금은 계속 감소세를 보이면서 3월29일 9조원대까지 내려왔다. 이달 들어서도 실질 고객예탁금은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증시 외부에서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두 달째 지속되고 있다”며 “이달들어 고객 예탁금이 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개인들의 주식처분에 따른 증가분을 감안한 실질 고객예탁금은 오히려 1,300억원 가량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외국인 매도로 인한 공백을 국내 투자자들이 메우지 못함으로써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동조화, 미국이 문제다(?)
사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나 취약해진 증시 분위기는 미국 증시에 연동된 측면이 크다. 세계 증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증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은 2월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3월 소매판매도 기대치를 밑도는 등 최근 각종 경제 지표들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기조에 대한 부담, 지속된 고유가, 인플레이션 압력 등으로 경기 선순환에 대한 기대가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IBM 등 주요 기업들의 1ㆍ4분기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자 월가를 중심으로 소프트 패치(soft patch, 경기 상승기의 일시적 침체 국면)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이 같은 우려감으로 미국 증시가 먼저 폭락세를 보였고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증시가 이에 연동돼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미국에 강한 동조화를 보이는 국내 증시에 그 불똥이 튀었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국내 증시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 불투명은 처음 나온 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좋은 쪽만 부각하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이 주식시장의 생리다.

김세중 동원증권 책임연구원은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고 있지만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많이 줄었고 유가도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어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겠느냐”며 “비록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강하진 않더라도 침체로 이어질 확률은 낮아 증시에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증시가 6월 이후에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낙관론 아직 우세..하반기 노려라
미국 증시의 급락과 이에 동조한 국내 증시의 하락으로 ‘곰’(약세론자)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황소’(강세론자)가 버티고 서 있다. ‘증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낙관론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증시의 악재로 꼽히는 환율 하락이나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 외국인 매도로 인한 수급 불균형 등은 하반기에 들어서면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강세론자들은 보고 있다.

환율로 인한 실적 악화가 부각되면 정부측에서도 환율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기업俑?이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외국인 투자자들도 다시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영익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올 3ㆍ4분기부터는 수출이 늘어나 환율에 대한 마이너스가 수출로 상쇄될 것”이라며 “기업들도 환율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갈 것으로 보여 하반기 들어서면 기업 실적이 다시 좋게 나타나고 증시도 재상승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득수 본부장 역시 “증시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며 “5월이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반기에 다시 증시가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증시가 약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환율 악재나 미국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일시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금은 무리하게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것보다 쉬어가는 것이 낫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시장의 영향 등으로 증시가 당분간 추가적인 조정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다우존스와 나스닥 지수가 중기적으로 하락 전환해 하락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이것이 국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 같은 단기적인 조정 흐름이 중기적으로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익 리서치센터장 역시 “당분간 주가는 900선 정도에서 횡보를 보이면서 바닥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영화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4-27 16:31


정영화 객원기자 holly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