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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잡기는 두더지 게임?
집값 불안 부채질 중층 불허, 저층은 활성화…개발이익 환수도

서울 강남권 재건축시장을 겨냥한 정부의 집값 잡기 대책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2월 17일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 이후 안전진단 직권조사, 초고층 재건축 불허, 고(高)분양가 차단을 위한 관리처분계획 인가 및 분양승인 취소 등 강도 높은 처방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특히 국세청은 재건축 관련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재건축 사업 수주 과정에 담합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여기에다 경찰까지 나서서 재건축 관련 비리를 수사하고 있다. 가히 재건축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는 기반시설부담금제를 전면 개편, 택지개발이나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키로 해 재건축에 대한 옥죄기는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집값 불안의 뇌관
90년대까지만 해도 강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강남의 아파트 값이 2000년대 들어 급등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강남은 도시의 발달 과정상 성숙기에 도달했다. 도시의 성숙기라는 것은 주거와 직장, 문화, 쇼핑 시설이 조화를 이룬 단계를 말하며, 이는 살기 좋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주택 수요자들이 강남을 일종의 명품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명품에 가격의 상한선이 없듯이 강남도 하나의 명품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가격 저항감이 크게 줄었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 2~3년간 강북 집값의 2~3배를 주고라도 강남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수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우수한 교육환경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 강남불패 신화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같은 강남의 위상은 동심원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 되면서 최근에는 서초구와 송파구, 그리고 멀리는 강동구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서울의 ‘섬’이 돼 가고 있다.

특히 수급 불균형은 강남의 집값 급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강남은 절대적인 수요 우위 지역이다. 지속된 규제로 주택보급률이 낮은 상태에서 수요는 넘쳐 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강남 재건축은 영원한 투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남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실상 기존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상 초유의 저금리, 특히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제로 쿠폰(Zero coupon) 시대의 도래 역시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부동산시장 전체에 관련된 사안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강남 재건축은 이 같은 요인을 배제하더라도 항상 집값 상승의 진원지 역할을 해왔으며, 정부 입장에서는 집값 불안의 뇌관일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중층 재건축 단지가 핵심 타깃
강남 재건축 중에서도 중층 단지가 정부의 핵심 타깃이 되고 있다. 재건축의 첫 단추인 안전진단에 직권조사를 동원하거나 사실상 재건축의 마지막 절차라고 할 수 있는 관리처분계획의 인가 취소 방침을 밝힌 것도 무분별한 중층 재건축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5층 이하의 저밀도 단지와 10~15층의 중층 단지 재건축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 실제 정부 주택정책의 사령탑인 건교부 주택국장은 지난달 2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재건축 논의가 흘러 나오는 강남권 중층 단지들은 안전상의 문제가 없을 뿐더러 공급확대 효과가 적다”고 말했다. 반면 “저밀도 단지는 공급확대 효과가 크고 현재의 13평 아파트가 35평에서 최고 60평으로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집값 불안만 야기할 뿐 공급 확대 효과가 없는 중층 단지의 재건축은 불허하되 저밀도 단지는 중대형 평형의 대량 공급을 통해 집값 안정을 꾀하겠다는 포석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잠실주공 2단지의 분양가 하향조정 압력, 도곡주공 2차의 분양승인 보류 등은 재건축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고분양가에 의한 집값 상승 차단 차원이라는 점에서 중층 단지의 재건축과는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중층 단지는 아직 재건축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은 지 20년 정도 밖에 안된 아파트가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 만큼 콘크리트 부식 및 노후화가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며 “실제 강남권 중층 단지의 상당수는 앞으로도 몇 년 동안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건물구조가 안전한 상태”라고 말했다.

중층 재건축 당분간 어려울 듯
정부의 현재 분위기를 감안하면 중층 단지는 예비 안전진단 등 초기 단계에서부터 재건축이 통제될 것으로 보인다. 중층 단지의 경우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확대보다는 집값 상승으로 조합원의 재산만 늘리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 초기 단계의 중층 단지는 재건축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최근 중층 단지의 아파트 값이 급등한 것은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이를 이용한 일부 시장세력의 거품조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건교부가 최근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에 대해 초고층(60층) 재건축 설계도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개최했던 H 건설과 설계업체를 소환해 조사를 벌인 것도 이 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처럼 중층 단지의 재건축이 난항을 겪으면서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는 않은 상태다. 현재 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중층 단지 중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곳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상업지역으로의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잠실주공 5단지 등 20여 곳에 달한다. 이들 단지는 정부의 재건축 불허 방침에 따라 리모델링 추진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평형 증가 상한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행 법에는 리모델링을 통해 늘어나는 평형 상한선이 전용면적의 30% 이내로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소형(24평 이하)은 4~5평, 중형(24~38평)은 8~9평, 대형(40평)은 9평씩 늘릴 수 있다. 따라서 중형 평형 가구가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이점이 적은 대형 평형 소유주들은 리모델링 추진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다양한 평형이 공존하는 단지는 사실상 리모델링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공급 확대 방안 동시 추진될 듯
현재 관가와 업계에서는 재건축 발(發) 집값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20년으로 돼 있는 재건축 연한 강화 등의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부담이 많아 시장 상황이 다소 진정될 경우 저밀도 단지를 통한 중대형 평형 공급 확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강남 집값 급등을 부채질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중대형 평형의 공급 부족이기 때문이다.

건교부가 강남 중층 단지 재건축을 불허하는 대신 저밀도 단지의 재건축은 활성화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즉 재건축을 이용한 집값 상승은 엄격히 통제하면서 주택 공급 확대라는 재건축의 순기능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현재 강남권에서 중대형 평형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남 개포지구, 서초 반포지구 등 저밀도 단지의 고밀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효율적인 토지이용,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이라는 재건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저밀도 활성화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용적률 일부 상향 허용, 획일적인 층고(層高) 제한 일부 완화, 개발이익환수제 적용으로 짓는 임대주택의 대형화 등을 통해 일반 분양물량과 대형 평형을 늘리는 방안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저밀도 단지에 대한 규제 완화는 곧장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건축 추진 절차를 투명화 하기 위한 감시의 칼날을 거두지 않은 채 규제를 일부분씩 푸는 순서를 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구영 서울경제 부동산부 차장 gychung@sed.co.kr


입력시간 : 2005-05-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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