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고객유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 악화… 예대마진도 줄어윈윈상품 개발 등 금융기관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 시급

승자의 재앙 부를 'Bank war'
금융권, 고객유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 악화… 예대마진도 줄어
윈윈상품 개발 등 금융기관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 시급


최근 금융권은 외형상 ‘태평성대’에도 불구하고 ‘레드 오션(Red Oceanㆍ경쟁자끼리 싸워 피로 물든 시장)’ 이나 ‘승자의 재앙’과 같은 경고음에 휩쌓여 있다. 사실 이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다름아닌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13일 금융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블루 오션(Blue Oceanㆍ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 전략’을 직접 사례로 언급하면서 금융권의 과당경쟁에 따른 경쟁력 약화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 같은 기류에서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에 대한 규제방안을 내놓았고, 각 은행들은 담보대출 한도의 축소와 금리 인상 자제, 재건축ㆍ재개발 아파트에 대한 대출한도 조정 등의 방안을 발빠르게 마련,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금융연구원에서도 ‘승자의 재앙’에 대해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18일에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최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은행권의 우량고객 유치 경쟁이 ‘승자의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경훈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은행들 간의 우량고객 확보를 위한 특판예금과 대출금리 인하 경쟁은 우량고객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없을 경우 은행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우량고객의 가치를 정확히 모른 채 우량고객 잡기 경쟁에 빠져 금리전쟁을 펼치면 오히려 승자가 가장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요지다.

한국씨티은행 출범으로 무한경쟁 점화
사실 금융권의 무한경쟁 징후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1월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합병(M&A)되면서 외국계 가운데 가장 큰 한국씨티은행이 출범했다. 이와함께 회계파문으로 표류하던 국민은행도 강정원 2대 행장을 맞으면서 본격적인 조직정비와 함께 무한 경쟁에 들어갔다.

‘은행들의 전쟁(Bank War)’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실제로 씨티은행은 초저금리 아파트대출과 특판예금 경쟁에 불을 붙였고, 국민은행을 포함해 대부분의 은행들이 특판전쟁에 가세했다. 은행권의 예대마진이 줄어든 것은 불보듯 뻔한 현실이 됐다. 이 밖에 해외펀드에 대한 판매경쟁, 파생상품을 포함한 딜링경쟁, 투신상품 판매 강화 등은 씨티의 등장으로 나타난 은행간의 전투현장이 됐다.

금융권이 발표하는 각종 지표들은 일부 전문가나 금감위원장이 제기한 ‘은행간의 과당경쟁’ 문제가 현실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당경쟁에 따른 영향은 첫 단계로 외형상 각종 상품의 판매량 증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같은 판매액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악화될 조짐을 보인다면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주요 금융권별 상품 판매 추이
<은행 주택담보대출>
2004년말 112조2,622억원
2005년 1월 113조6,500억원
2005년 2월 115조8,938억원
2005년 3월 117조8,465억원

<5개은행 지수연계예금 잔액>
2003년말 1조6,144억원
2004년말 3조8,807억원
2005년4월말 3조9,713억원
* 국민ㆍ우리ㆍ신한ㆍ조흥ㆍ하나은행 기준

<5개은행 적립식펀드 판매액>
2003년말 1,764억원
2004년말 1조4,471억원
2005년4월말 2조9,312억원

<투신사 펀드설정액>
2003년 12월말 134조9,186억원
2004년 3월말 151조9,865억원
2004년 6월말 161조7,880억원
2004년 9월말 173조3,750억원
2004년 12월말 189조237억원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은행권에서 이 같은 경고음이 가장 먼저 들려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이 제공한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말 112조2,622억원에서 지난 3월말에는 117조846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4년 전에 비해 무려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마케팅 전쟁은 대출 뿐 아니라 신종 예금과 적립식펀드 등 투신상품 판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조흥 등 5대 시중은행이 저금리 장기화로 경쟁력을 잃은 정기예금의 대체상품으로 지난 2003년부터 판매에 들어간 지수연계예금 판매액은 지난해말 3조8,807억원으로 급팽창했고, 올들어서도 4월말에 4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국민은행이 판키堧岾?주도한 적립식 펀드의 5개은행 판매액도 지난해말 1조4,471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 4월말에는 2조9,312억원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주요 상품에 대한 판매액이 증가했음에도 은행권의 수익구조는 지난해 말을 정점으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잠정 집계한 올 1ㆍ4분기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조7,559억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지만 충당금 적립전 이익은 4조6,24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6,160억원이 감소했다. 실질적인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대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도 지난해 1ㆍ4분기 2.94%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지난 1ㆍ4분기에는 2.62%까지 낮아졌다.

증권업계 영업실적 회복조짐 안 보여
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증권업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간접투자 열기가 고조되면서 투신사 펀드 설정액은 2003년말 134조9,186억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189조237억원으로 무려 40.0%나 늘어났다. 특히 새로운 인기상품으로 떠오른 파생상품 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6월말 5,039억원에서 12월말에는 4조7,267억원으로 늘어났다. 부동산펀드 역시 지난해 6월말 1,387억원에서 연말에는 8,609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정도의 성과라면 여의도 경기가 ‘호황’으로 들어갈 만도 하지만 아직도 한겨울 찬바람 속에 떨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증권ㆍ자산운용사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온다. 국내증권사의 2004회계연도 3분기 누적(2004년 4월~12월) 순이익은 2,510억원으로 지난 2003회계연도 같은 기간의 6,398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의 2004회계연도 3분기 누적(2004년 4~12월) 순이익도 582억원으로 2003회계연도 같은 기간에 비해 20%넘게 감소했다. 보험업계도 변액보험 판매가 인기를 끌면서 호시절을 구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영업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권 어디에도 ‘블루 오션’은 없다는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이 과당경쟁을 규제하는 조치를 내놓고 있어 이 같은 ‘경쟁’ 열기는 잠시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감독당국의 규제 만으로 이 같은 무한경쟁 상황을 넘어 금융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진금융기법 활용한 신상품 개발 절실
당장 시급한 것은 금융기관의 ‘상품 개발력’이다. 미끼 상품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고객과 금융기관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상품 개발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줄이는 노력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한다. 금융 신상품에 대한 배타적 이용권을 부여하는 기간을 늘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각 금융기관이 상품개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충원해 선진금융기법을 활용한 신상품을 개발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2만달러’ 시대를 열기위해서도 금융경쟁력 확보는 절실한 문제다. 최근의 이 같은 기류를 반면교사로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면 국내 금융산업은 우물 안을 벗어나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각 금융기관들이 이 같은 위기국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최근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 되고 있는 게 고무적이다.


조영훈 서울경제 금융부 차장


입력시간 : 2005-05-26 17:46


조영훈 서울경제 금융부 차장 dubbch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