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해체과정서 DJ 정부와의 물밑협상설, 'X파일'실체 놓고 논란 예상정치권·재계 일각의 사면론 제기 등 우호적 분위기로 '결자해지' 결심한 듯

'김우중 귀국' 후폭풍 반경은?
대우그룹 해체과정서 DJ 정부와의 물밑협상설, 'X파일'실체 놓고 논란 예상
정치권·재계 일각의 사면론 제기 등 우호적 분위기로 '결자해지' 결심한 듯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마침내 돌아온다. 1999년 10월 중국으로 출국한 이후 종적을 감췄던 그가 6년에 걸친 지루한 해외 유랑을 접고 귀국하기로 최종 결심했다.

시기는 유동적이다. 김 전 회장 측이 검찰에 귀국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5월 말부터 언론에서는 ‘D-데이’와 관련한 다양한 설(說)이 쏟아졌다. 5월 안에는 들어온다, 6월 3일 혹은 10일이 될 것이다, 8월 아니면 늦어도 연내에는 귀국한다 등등. 그러나 현재로선 모든 것이 예상에 불과하다. 택일은 오로지 김 전 회장의 몫이다.

조만간 귀국 가능성 높아
김 전 회장은 날짜를 선택하는 데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아오겠다는 의지와는 별개로 귀국의 모양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귀국 시점에 대한 이런저런 예상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껄끄러운 대목이다. 자칫 국민들에게 여론의 눈치를 살핀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김 전 회장의 한 핵심 측근은 “귀국 날짜를 못박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급적 상반기 안에는 들어온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안이라면 6월 중 귀국 가능성이 아주 높은 셈이다.

김 전 회장이 귀국을 결심한 배경에는 나이(69세)와 건강 악화 등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4월 29일 ‘대우 경영비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중대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우그룹 분식 회계 및 사기 대출 등 혐의로 기소된 전ㆍ현직 임원들에 대한 상고심에서 재판부는 징역 3~5년에 집행유예 4~5년형을 선고하고, 총 23조여 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는 등 원심 판결을 거의 그대로 확정했다. 김 전 회장의 주도적 혐의가 인정된 것은 물론이다. 대법원의 판단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김 전 회장 측은 당연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전 회장이 ‘결자해지’를 마음먹은 것은 이에 따른 자연스런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터에 더 이상 뒤로 물러서 있다가는 자칫 대우 사건의 진상을 밝힐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명예회복 가능할까
김 전 회장의 귀국으로 대우 해체 과정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 붙을 전망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1999년 8월 주력 계열사의 워크아웃(기업 구조개선)을 받아들이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사실상 그룹 해체의 시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 고위층과 김 전 회장 사이에 모종의 물밑 협상이 있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을 수용하는 대가로 대우자동차 등의 경영권을 갖기로 했다는 것 등이었다. 그의 외국 행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 동안 김 전 회장 주변에서는 “여권 고위층 인사가 ‘잠시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라’고 해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말해 왔다.

검찰의 수사가 어느 부분에까지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검찰은 김 전 회장 조사와 관련, ▲41조원의 분식 회계를 지시한 과정 ▲10조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경위 ▲비자금 조성 및 정ㆍ관계 로비 의혹 등을 밝혀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분식 회계나 불법 대출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비교적 손쉬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4월 말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김 전 회장의 관련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우그룹 퇴출 저지 과정에서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부분이다. 초점이 여기에 맞춰진다면 결과에 따라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른바 ‘김우중 X파일’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한 핵심 측근은 “몰락하고 있는 기업인으로부터 누가 돈을 받겠는가. 게다가 김 전 회장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김 전 회장이 수사에 임하면서 희망하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 대우그룹 몰락에 대한 잘잘못이 공정하게 가려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소한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굴레를 벗고 재평가를 받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는 김 전 회장에게 다소 우호적이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사면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거나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정치인들의 잦은 행보도 눈길을 끈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의 귀국이 현 정부와의 교감 하에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관련 당사자들은 펄쩍 뛴다. 측근들도 손사래를 친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우리가 먼저 사면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진정한 사면은 김 전 회장이 국민 여론의 이해를 얻고 난 뒤에야 가능한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재기 프로젝트 여부 관심
해외에서 떠도는 동안에도 김 전 회장의 움직임은 간간이 국내에 포착되곤 했다. 특히 ‘경제 활동’과 관련해서는 더욱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프랑스의 한 회사에서 해외 사업 고문 직책을 맡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과거 대우그룹 총수 시절 깊은 인연을 맺었던 베트남이나 중국 등지에서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한 방송사는 5월 초 김 전 회장 일가가 베트남을 중심으로 재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고 보도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정부가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그의 막내 아들은 하노이에서 골프장과 주택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부인 정희자씨와 둘째 아들은 경기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을 운영하는 등 국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이 보도는 덧붙였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종합레저 사업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재기를 도모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비록 고령이지만 평생 일밖에 몰랐던 성격상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사업은 김 전 회장과 별개라는 게 측근들의 주장이다. 백기승 전 이사는 “정 회장(정희자씨)은 과거부터 직접 사업을 해온 분이어서 완전히 다른 ‘어카운트’(계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전 회장이 기업가로서 재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과거 대우그룹과 같은 규모의 사업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재기를 꿈꾸겠는가. 다만 대우를 통해 펼쳤던 기업 활동에 대한 온전한 재평가만을 바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열쇠는 김 전 회장이 쥐고 있다. 그의 귀국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8 17:35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