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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포… 유가, 세계를 떨게하다
배럴당 60달러 넘나들어… 정유시설 부족 등 원인
'수년 내 100달러' 주장도




6월27일,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격이 한때 6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28일 오후 안양 석유공사 상황실에서 공사직원들이 국제원유가격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안양=김주성 기자

6월 27일 뉴욕 맨하탄 중심부에 위치한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전광판에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8월 인도분의 마감 가격을 알리는 숫자가 멈춰 섰다. 배럴당 60.54달러. 석유 거래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불확실한 검은 미래'가 시작된 것이다. 아시아 장외 전자거래에서 60달러를 처음 넘어선지 3거래일만이고 26일 정규시장에서 장중 한 때 60달러를 돌파한 지 하루만의 일이다.

60달러를 돌파한 유가를 놓고 전문가들은 ‘유가가 미쳤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등으로 표현하면서 당분간 유가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야흐로 ‘유가 60달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
지금의 유가 급등은 외관상 지난 70년대의 1,2차 오일쇼크와 비슷하다. 석달도 안돼 10달러 이상이 뛴 것이나 이라크의 정세 불안과 이란의 강경파 대통령의 당선 등 중동 정국 불안도 빼다 닮았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위기의 본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까지 유가 상승은 공급부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공급 부족은 공급량을 늘리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1,2차 오일쇼크 이후 산유국들이 석유생산을 늘리면서 유가가 안정세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공급부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6월 29일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발표에 따르면 세계 석유보유량은 올해 1조1,900만배럴로 지난해의 1조1,000억배럴 보다 900억 배럴이나 늘었다.

전세계적으로 하루 석유소비량이 6,600만배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유량 증가분 만으로 전세계의 1년치 소비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유시장의 수급 현황을 봐도 지난해 이후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초과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일쇼크 당시 하루 100만~500만 배럴의 공급차질이 빚어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장인 셰이크 아메드 파드 알 사바 쿠웨이트 석유장관이 연일 "석유 공급량은 충분하다. 시장은 공급부족상태가 아니다"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시장"이라고 발표해도 시장이 요지 부동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연일 사상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유가 불안의 요인이 공급이 아니라 수요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 증가'가 유가 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공급 부족'과 '수요 증가'는 같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재 유가 급등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를 근본적으로 보여준다. '필요한 분야에 필요한 양 만큼이 공급이 안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위기의 근원인 것이다.

유가 급등의 원흉은 '정유 부족과 시장 심리?'
그렇다면 수요 증가의 문제는 왜 발생했을까. OPEC와 전문가들은 가격 폭등의 진원지로 정유시설 부족을 1차로 꼽고 있다. 원유 공급량은 지난 30년간 5배 이상 늘었는데 그것을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정제할 수 있는 설비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 MKM 파트너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클 다르다는 미국의 정유시설은 30년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제유 가격 상승폭이 원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WTI 가격은 전년말 보다 30% 가량 오른 데 반해 휘발유 선물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고 난방유도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30% 이상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봐도 휘발유 선물은 37% 이상, 난방유 가격은 62%나 뛰었다. 세계 최대의 정유사인 BP도 올해 유가 전망을 하면서 현재 갤런당 2달러선인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연내 3달러선을 돌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정제유 수요가 최근 4주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9% 상승했고 4ㆍ4분기에 수요가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소식은 가격 상승세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됐다.

정유시설 부족이 구조화된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해소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헨렌 헬튼 스탠더드차터드 상품리서치팀장은 “정제능력(부족)문제는 고유가를 야기시키기에 충분한 요인”이라며 “시장은 이러한 추세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심리의 불안도 전문가들이 유가급등의 이유로 제시하는 원인이다. 현재 OPEC(이라크 제외)의 공식 쿼터량은 하루 2,800만배럴. 여기에 50만 배럴 추가 증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쿼터량은 하루 2,850만 배럴로 올라간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생산량은 이를 훨씬 웃도는 하루 3,000만~3,100만 배럴선 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초 쿼터량이 2,350만 배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만에 무려 20% 이상의 증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OPEC의 잉여 생산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최근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5년간 수백억 달러를 투입, 석유생산시설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가 ‘60달러’ 넘어 세자릿수 시대 올까
석유 딜러와 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추세적으로는 60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유가 60달러 고착화 시대'에 돌입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특히 계절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이상 고온과 이상 저온 현상은 여름철 냉방과 겨울 난방 수요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돼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터레스캐피털매니지먼트의 사이토 카즈히코 수석 애널리스트는 “높은 온도가 수요증가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라며 “가솔린시장도 원유시장의 상승을 유도, 7월초안에 유가가 62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유가 전망도 갈수록 어두워져 가고 있다. 메릴린치는 최근 올해 3ㆍ4분기 WTI 유가 전망을 배럴당 51달러에서 59달러로 높였고, 브렌트유도 4달러 올린 배럴당 49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2005~2006년 유가 전망을 50달러로 상향하고 2007년 WTI 가격 전망치는 45달러로 높였으며, 장기 석유가격 역시 40달러로 올렸다.

더욱 비관적인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 향후 수년내 배럴당 105달러 돌파를 주장하며 시장에 '슈퍼 스파크 쇼크'를 안겨줬던 골드먼삭스는 최근 또다시 "수년내 공급부족으로 유가가 배럴당 105달러로 올라설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미 지난 3월 100달러 돌파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고 국제경제연구소(IIE) 역시 100달러를 경고했다.

100달러 돌파론은 독일에서도 흘러나왔다. 독일의 세계경제연구소(IfW)의 게르노트 클레퍼 환경·자원경제국장은 현지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시적으로 100달러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가가 50달러선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ㆍ중국 등 주요 소비국들이 에너지난을 극복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에너지 고소비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원유수급 대책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종가기준 배럴당 60달러를 기록한 다음날부터 유가가 다시 하락, 57달러선으로 주저앉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 에너지 개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십년이 지나야 하고 ▲에너지 대책도 경제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강력 대처하기 힘들다는 점 ▲가격이 시장에 의해 결정돼 OPEC의 가격 지배력이 약화됐다는 점등은 유가가 중장기적으로 60달러 이상에서 형성될 수 밖에 없게 하는 요인이다.


송영규 서울경제 국제부 기자 skong@sed.co.kr
사진=김주성 기자


입력시간 : 2005-07-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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