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등 가족간 경영권 분쟁 잇달아

돈 앞에 무너진 기업들의 가족애
두산 등 가족간 경영권 분쟁 잇달아

박용성 두산회장

‘물보다 진한 게 피고, 피보다 진한 건 돈이다.’

웬만하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황금만능 자본주의 사회의 짙은 그늘이다. 돈 때문에 가족 간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세태가 아니다. 심한 경우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와 자매 간에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재벌 집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돈이 많을수록 근심도 커진다는 옛말처럼 오히려 이들의 경영권 분쟁은 더욱 추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두산그룹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형제의 난’은 단적인 예다.

7월 18일 두산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신임 그룹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두산의 ‘가족 경영’ 전통이 면면히 계승되는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21일 박용오 전 회장 측이 박용성 신임 회장 측의 비자금 조성 등 비리 의혹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두산은 뜻밖의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두산 측은 즉각 박 전 회장의 진정 내용을 반박함과 동시에 그룹과 가문에서 그를 제명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현재까지 양측의 주장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박 전 회장은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수천 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들키자 함께 공모해 자신을 몰아냈다는 주장이다. 반면 두산 측은 박 전 회장이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라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데 대해 불만을 품고 그룹을 비방하는 투서를 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진정서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도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두산이 입은 상처는 쉽사리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창사 이래 109년 동안 내려온 ‘인화의 대명사’라는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졌음은 물론이고 형제 간에도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룹의 오너 경영 체제에 큰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과 약간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가족간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까지 간 사례는 또 있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이 그런 사례로 꼽힌다.

롯데는 1996년께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37만평의 소유권을 놓고 창업주인 맏형 신격호 회장과 동생인 신준호 부회장이 한 바탕 싸움을 벌인 경우다. 신 회장이 신 부회장에게 이 땅을 명의 신탁했는데 나중에 신 부회장이 부지 소유권을 주장한 게 분쟁의 발단이었다.

이에 크게 노한 신 회장은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법원에 내는가 하면 신 부회장의 그룹 내 직위를 모두 박탈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이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4개월 만에 분쟁은 끝났지만 이후 신 회장은 신 부회장의 그룹 내 지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는 1981년 타계한 고 김종희 창업주가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게 불씨가 됐다. 처음에는 김승연-호연 형제의 역할 분담 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뒤늦게 일이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이 송사는 30여 차례나 재판을 벌일 정도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졌다.

두 형제는 그러나 1995년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형제 간 화해를 권유하는 주변의 말에 김호연 회장이 용단을 내려 소를 취하한 것이다. 소송이 시작된 지 3년 6개월 만이자 김승연 회장이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이들 재벌의 사례는 나름대로 화해의 모습을 취하며 분쟁을 종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끝내 가족애를 원상회복하지 못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른바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 등 두 차례의 분란을 겪은 현대그룹과 3남에게 대권이 넘어간 삼성그룹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왕자의 난’은 2000년 3월 당시 현대그룹의 후계 다툼을 벌이던 정몽구(MK) 회장이 동생 정몽헌(MH)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당시 현陸超?회장을 전격 경질하면서 촉발됐다. 이 싸움은 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MK, MH 형제의 동반 퇴진 등 볼썽사나운 모양새 등을 연출하면서 몇 달 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그룹 분할로 귀결됐다.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이 봄볜?목숨을 끊은 사건은 현대가를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가족 분쟁이 바로 ‘숙부의 난’이었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경영권 인수에 뛰어든 정상영 KCC 명예회장(고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과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 회장 간의 다툼이 골자였다. 지난해 3월 현 회장 측이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승리함으로써 막을 내린 이 싸움은 그러나 여전히 현대가에 불편한 기류를 드리우고 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삼성그룹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장남인 맹희 씨를 제치고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 받고 활발한 경영 수업을 받던 맹희 씨는 사카린 밀수 혐의를 받았던 ‘한비 사건’ 등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버지와 심각한 불화를 빚게 되고 결국 후계 구도에서 낙마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들 그룹과는 대조적으로 창업주에서 후대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이 비교적 매끄러웠던 재벌들도 적지 않다. LG그룹은 확고한 장자 승계 원칙과 동업자인 허 씨 일가와의 협업 체제를 지킨 덕택에 현재까지 별다른 분란이 벌어지지 않았고, 한진그룹은 형제 간 그룹 지분 분할로 우애를 유지하고 있다. 형제 간 경영권 승계 전통을 가진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두산과는 달리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모습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8-03 17:5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