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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활짝 열고 복덩이 불러들인 격"
외환은행, 시중은행 최초 파격적인 '개방형 공채' 화제

지난 6월 중순 취업 준비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소식이 하나 나왔다. ‘건전한 사고를 가진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한 신입사원 채용 공고였다.

공고를 낸 것은 고만고만한 무명 업체도 아니었고, 사업 내용이 수상한 업체는 더더욱 아니었다. 요즘 예비 직장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은행권, 그 중에서도 최근 탄탄한 회사로 거듭나고 있는 외환은행(행장ㆍ리처드 웨커)이 바로 주인공이었다.



학벌과 나이 때문에 낙방의 서러움을 곱씹어 왔을 이 땅의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 누구보다 반가워 할 법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혁신적인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며 밖으로는 그럴 듯하게 생색을 내고는 나중에는 결국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대로 뽑는 거 아니냐’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런 의심이었다.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기는 같은 업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적인 은행권 풍토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지난 8월 초, 외환은행은 스스로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냈다. 고졸 학력자, 전업 주부, 불혹 나이의 늦깎이 등 기존 통념으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아웃사이더’들을 다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이런 결과에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적잖이 놀랐다. 특히 언론 매체들은 사설 등을 통해 외환은행의 ‘실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이른바 ‘개방형 채용’의 성패는 지속적인 원칙으로서 뿌리를 내렸을 때 진정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이성식 외환은행 대외협력본부장을 만나 국내 시중은행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개방형 채용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성식 본부장은 외환은행의 개방형 채용 제도가 세간에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는 지적에 “외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는 답변으로 첫 운을 뗐다. 초유의 시도에 대해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잘못하면 그것이 비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그러면서도 개방형 채용 제도가 취지에 맞게 정착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도 내비쳤다.



-개방형 채용 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대부분 은행들이 소수 유명 대학에 취업 원서를 몇 장씩 돌려 그 중에서 신입 행원들을 채용하는 게 기존 관행이었다. 유능한가 아닌가 하는 사실보다 학벌이나 화려한 경력이 인재를 채용하는 잣대가 된 측면이 짙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뽑은 사람들이 과연 모두 다 일을 잘하고 조직과도 잘 융화하느냐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일률적인 잣대를 거두는 대신 분야별 업무의 특성에 맞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자는 쪽으로 발상을 바꾸게 된 것이다.

-누가 개방형 채용 제도를 처음 주창했는지.

▲인사를 담당하는 김형민 부행장이 아이디어를 냈고 큰 방향도 잡았다. 김 부행장이 먼저 ‘시대가 크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에 맞춰 변해야 하지 않느냐’며 채용 제도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취지를 이해한 리처드 웨커 행장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일이 추진됐다.



-기존 제도를 바꾸는 데 대한 내부 반발은 없는가.

▲과거 엘리트 주의의 타성에 젖어 있는 일부 직원들의 반대 여론이 없지 않았다. 외부에서도 무모한 발상이라며 폄훼하는 시선이 있었으니 이해할 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개방형 채용의 뜻에 공감을 나타냈고 “잘했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여론이다.

-채용 제도의 변화는 최근의 추세다. 그런 가운데 학력이나 연령, 성별 제한 등을 폐지한다고 선언하는 기업들도 제법 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약속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용 과정에?과거의 ‘편견’을 깨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인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편견을 깨는 게 어렵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기에 전형 과정에 더욱 만전을 기했다. 우선 면접 위원들부터 개방형 채용의 취지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갖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배제하고 사람 됨됨이와 능력만 보고 판단하자고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 면접에서는 응시자들의 신상 명세가 가려진 자기 소개서만을 근거로 면접 위원들이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도록 해 편견이 개입할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 최종 합격자들이 모두 정해진 다음 면접 위원들의 반응이 재미 있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누가 紫??출신이고 누가 전문대 출신인지 전혀 몰랐을 정도였다”고 입을 모은 것이다. 합격자들의 답변이 학벌과는 상관 없이 훌륭했고 면면 또한 만족스러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면접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서류 전형에서 응시자들을 걸러내는 데 편견이 작용할 수 있지 않나.

▲그런 가능성을 우려해 아예 서류 전형부터 외부 기관에 용역을 맡겼다. 인터넷으로 접수한 응시자들의 지원서를 모두 취합, 객관적인 전문가 집단에게 1차적인 선별 작업을 의뢰한 것이다.

외환은행은 서류 심사와 3차례에 걸친 심층 면접 등의 전형 절차를 통해 신입 행원을 선발했다. 이번 공채는 당초 80명 모집에 1만1,000여명이 지원해 14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모든 지원서는 채용 전문 기관에 보내져 1차적으로 1,000명이 가려졌다. 그런 다음 이들을 상대로 실무자급 면접, 부장ㆍ임원급 면접, 행장 면접 등을 차례대로 실시해 최종 합격자를 가려냈다.

면접 위원들은 응시자의 학력, 연령, 본적 등 기본 정보를 모른 채 오로지 자기 소개서 내용만을 토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른바 블라인드 인터뷰(blind interviewㆍ무자료 면접)다. 각 면접 위원들이 매긴 응시자의 점수는 단순 합계 방식으로 처리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행장 면접 때는 사정이 좀 달랐다. 국내 실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행장인 까닭에, 실무진이 응시자들의 배경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전달했다. 그러나 외국인 행장 앞이라고 해서 응시자들이 영어 실력 때문에 주눅들 필요는 없었다. 행장 전담 통역관이 배석해 인터뷰의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외환은행은 이번 개방형 채용에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몰려 처음 예정보다 많은 100명을 최종 선발했다.

-외국계 은행으로 변모한 지 제법 됐다. 그런데 주인과 핵심 경영진이 외국인인 은행에서 영어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 점이 다소 이채로운데.

▲지금 외환은행에서는 이사회 의장, 행장, 부행장, 상무 등 4명이 외국인이다. 이들은 각자 전담 통역관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임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모두가 하루 1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하는 등 한국 배우기에 열성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 영업을 하는데 외국어와 외국 방식을 고집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외국인 경영진 스스로가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국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직원에게 유창한 영어 실력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토익(TOEIC) 점수로 응시자들을 평가했다면 아마 최종 합격자의 절반 가량은 얼굴이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합격자들을 보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많다. 이공계 전공자도 있고 사회 경험이 전무한 주부도 있다. 이들을 활용할 복안은 무엇인가.

▲조직이 커지고 기업 환경이 변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재질의 소유자들이 은행에 필요하게 됐다. 영어나 학력 같은 특정 기준으로 인재를 재단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이공계 전공자들을 6명 뽑았는데, 이들은 산업ㆍ기업 분석 업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과거에는 어떤 기업에 얼마나 여신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외부 기관에 해당 기업 분석 업무를 의뢰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자나 건축 등 이공계 학문을 전공한 우수한 행원들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전업 주부들도 5명을 선발했는데 이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주부 고객들의 마음을 누가 가장 잘 알겠는가. 바로 주부 행원들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어느 정도 기른 주부 행원들이 더욱 안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업무 수행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30대 이상의 疵?? 주부, 고졸ㆍ전문대 졸업자 등 다소 이질적인 신입 행원들이 조직에 무리 없이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마련해 뒀나. 혹시 따돌림 등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가.

▲우선 개방형 채용의 취지에 대해 대부분 임직원들이 뜻을 같이 했기 때문에 신입 행원들을 따돌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또 새로운 제도로 뽑은 인재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인사 틀을 적용하지는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현재 신입 행원들은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연수를 받고 있는 중인데, 이 기간 동안 상담 등을 통해 개개인의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아줄 계획이다.

특히 그 동안 외국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스페셜리스트(전문가)’를 많이 양성해 나갈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개방형 채용을 통해 선발한 다양한 인재들이 어우러져 조직 전체가 강해지고 은행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라는 점이다. 만나본 합격자들 중에 재주꾼들이 아주 많아 기대감이 크다.

이성식 본부장은 요즘 신입 행원들을 만나면 인사?받는 것이 아니고 먼저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새로 도입한 개방형 채용 제도가 화제를 뿌리면서 은행 홍보와 이미지 개선 효과도 덤으로 톡톡히 누렸기 때문이다. 돈으로 이런 효과를 누리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것이란 말도 했다.

입사하기도 전부터 뜻밖의 ‘복덩이’ 구실을 한 개방형 채용 1기. 이들이 과연 외환은행의 미래를 짊어질 기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5-08-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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