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현정은 號 '김윤규 후폭풍' 맞나

北 금강산 관광 축소 파장 촉각
현대 현정은 號 '김윤규 후폭풍' 맞나

북측이 8월29일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을 문제 삼아 9월부터 금강산 관광 규모를 지금의 절반 수준인 하루 600명으로 축소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또 북측은 이번 일로 개성과 백두산 관광을 비롯한 남북경협사업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최근 개성관광 등 대북사업이 일사천리로 풀려가고 있다고 한껏 고무됐던 현대그룹 입장에선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난 셈이다.

이는 현정은(50) 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 사후 KCC 정상영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이겨내고 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 10개월여 만에 맞는 최대의 위기로, 향후 현정은 체제 구축의 중요한 실험대가 될 전망이다.

현 회장은 7월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백두산과 개성관광까지 성사시키면서 대북사업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게 거꾸로 화근이 된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계기로 현 회장은 그 동안 대북 사업의 명줄을 쥐고 ‘유일 창구론’를 내세우던 김윤규 부회장 없이도 자신이 직접 대북 사업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이러한 판단이 결과적으로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북한 '심한 불쾌감' 표현 분석

북한이 가장 큰 달러 수입 사업인 금강산 관광의 수입이 절반으로 주는 것을 감수하면서 이런 조치를 취한 데에는 ‘지도자의 위상’을 손상시킨 것에 대한 불쾌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오랜 파트너였던 김 부회장을 김정일 위원장 면담 직후 현대측이 대표이사직에서 일방적으로 사퇴시킨 것은 ‘신의의 위반’이란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1989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북한측과 금강산 관광 의정서를 체결할 당시에도 정 명예회장을 수행해 김 위원장을 만났고 이후 2차례나 김 위원장과의 면담자리에 동석했다. 그만큼 김 부회장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일각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개성관광 비용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현실적인 포석이란 분석과 함께 대북 사업의 새 얼굴인 현정은 회장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현재 개성관광 대가로 1인 당 150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나 현대는 관광객을 모집하기엔 이 가격이 너무 비싸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현 회장은 이번 사태에 즉각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불 끄기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다. 현 회장은 8월31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 참석차 방북 했지만, 북측이 이 문제와 관련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대북사업에 있어서 김 부회장의 위치는 확고부동 했다. 특히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유서를 통해 현대그룹 내 입지는 더욱 굳혀지는 양상이었다.

정 회장은 자살하면서 가족 이외의 사람으로는 오직 김 회장에게만 유서를 남겼다. 당시 정 회장은 “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보다 더한 자식입니다.

(정주영)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는 유언으로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 적자임을 밝혔었다.

그렇다면 이런 남편의 유언에도 현 회장은 왜 김 부회장을 내친 것일까. 우선 현대그룹은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 배경을 내부 감사에서 드러난 묵과할 수 없는 개인 비리 탓이라고 설명한다.

현대그룹에서 밝힌 김 부회장의 비리 혐의는 금강산관광 부대 시설인 온정각과 신축 중인 제2 온정각 등을 친지들과 지인에게 특혜 분양했다는 의혹과 강원도 땅 위장 매입과 땅 투기 설, 북한 사업소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몰래 가져오다 적발됐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에서 증명됐듯이, 대북 사업에 있어 김 부회장의 업적과 위상을 놓고 볼 때 그의 전격 퇴진은 현대 측의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보다 현정은 회장의 친정체제 강화를 위해서는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김 부회장의 퇴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가 드러난 내부감사도 현 회장의 직접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고, 감사의 첫 대상이 주력 계열사가 아닌 김 부회장이 몸담고 있는 현대아산으로 잡힌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 부회장의 퇴진은 지난 3월에 열린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윤망?상임고문을 대표이사 사장에 전격 선임하면서 사실상 확정됐다.

이후 김 부회장은 임원회의도 주재하지 않았고, 그룹 사장단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자금ㆍ인사ㆍ신규 사업 추진 등 회사의 주요 경영 결정권은 신임 윤 사장이 행사했다.

이런 와중에 7월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을 직접 만나 “금강산은 정몽헌 회장에게 줬는데, 백두산은 현정은 회장에게 줄 테니 잘 해보라”고 한 것을 현 회장을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새 수장으로 공식 인정한 것으로 판단, 현 회장 측에서 ‘김윤규 시대’ 정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 동안 김 부회장의 ‘대북 유일창구론’이 정씨 일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었다는 얘기도 나돈다. 대북 사업이 현대그룹 전체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점을 들어 현 회장이 정씨 일가의 호의적 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해 김 부회장을 퇴진시키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KCC 정상영 회장이 과거 현 회장과 경영권 분쟁 때도 지속적으로 김 부회장의 퇴진을 주장했다는 점도 이런 사정을 말해 준다.

김 부회장은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의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현대가(家)의 ‘마지막 가신(家臣)’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김 부회장은 80년대 중반부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정 회장이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현대건설 상무로 있을 때다.

특히 2000년 현대그룹 내에서 ‘왕자의 난’이 났을 때도 김 부회장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편에 서서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에 맞서며 정 회장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01년 이후 김 부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직을 그만두고 정 회장과 함께 대북 사업에 전념해왔다.

'일선퇴진 파동' 여진 클 듯

8월18일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곧장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국했다가 30일 귀국한 김 부회장은 중국에 머물며 북측 인사에 구명운동을 했다는 항간의 소문을 일축하며 자신의 거취와 관련, “대북사업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며 조용히 물러날 뜻을 밝혔다.

현대그룹의 ‘김윤규 파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대그룹 주변에서는 ‘왕 회장’ 때부터 대북사업에 헌신해 온 전문경영인을 하루 아침에 내친 그룹의 처사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김 부회장 동정론과 함께 기업 내부 인사까지 관여하려 하는 북한 비판론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향후 추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9-07 17:2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