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지나

시련의 삼성, 여론 수렴 대책 부심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지나

“우리는 사실 별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

무대책이 상책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융단 폭격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은 대책을 세울 만한 겨를도 없을 것 같다.

하기야 ‘삼성 논란’을 지켜 보는 국민들도 날마다 벌어지는 굵직한 논쟁의 틈바구니에서 대체 뭐가 뭔지를 알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세금과 같다는 지적도 있다.

세금은 누구에게도 부과된다. 때문에 그 세금은 당사자인 삼성에게도, 다른 기업들에게도, 일반 국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어물쩍 넘기기 곤란한, 아니 반드시 짚어봐야 할 사안이 공론의 장에 분출한 지금,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 지속되고 있는 삼성 논란은 ‘공화국’ ‘X파일’이라는 피상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거쳐 이제는 ‘지배구조’와 ‘편법상속’이라는 구체적인 이슈에 다다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25부(이혜광 부장판사)는 지난 4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저가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박노빈 전 에버랜드 상무(현 에버랜드 사장)에게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주당 7,700원에 이재용씨 등에게 발행, 이씨 등이 불과 100억원도 안 되는 돈으로 에버랜드 지분의 64%를 취득하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식 고리에 의한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계열사다.

주목할 것은 피고인들이 주주 배정을 가장했을 뿐, 실제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아들인 이재용씨 등에 대한 증여 목적으로 CB를 발행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점이다.

이는 삼성그룹이 이재용씨 후계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이는 법적으로도 잘못된 것임을 법원이 공식 확인한 셈이다.

이건희 회장 검찰 수사 불가피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은 에버랜드 CB와 관련한 수사를 전면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그룹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수사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며, 에버랜드 CB 발행의 공모 관계와 배후를 들춰내겠다”는 게 검찰 측의 다짐이다.

칼 끝이 어디로 향할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선 2000년 당시 함께 고발된 이건희 회장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어떤 변화가 오느냐 하는 점이다. 삼성은 그 동안 이 사건이 불거진 뒤 경영권 승계 과정의 편법성과 부도덕성에 대해 집중 비난을 받아 왔다.

더욱이 이번 판결로 CB 저가발행 행위에 대해 ‘위법’이라는 딱지까지 붙음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압박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

그러나 1심 결과가 당장 현재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에버랜드 임원들의 배임 행위로 손해를 입은 다른 주주들 대부분은 삼성 계열사이거나 전현직 임원들이다. 이들이 삼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나 CB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외부 환경은 삼성에게 그리 녹록치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과 관련한 정치권의 움직임도 여전히 불안을 드리운다.

금산법 개정 논의의 핵심은 재벌 계열 금융회사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상당수 재벌그룹이 모두 관련되는 사안訣嗤? 삼성의 경우에만 국한시켜 보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 두 회사가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모두 초과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두 회사의 분리 처리가 바람직하다, 의결권만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금산법 개정안은 결국 이런 논의의 절충을 통해 도출될 것으로 보이지만, 법 개정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국민정서법’이나 ‘포퓰리즘’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묘안 마련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법 개정을 하면서 처분 유예 기간을 두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 측은 최근의 현안들에 대해 성급한 목소리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 딱히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부에선 현 사태의 수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중동(靜中動) 끝에 삼성이 던질 카드는 과연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2 10:25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