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새끼' 신세 3년만에 GM대우차와 조기합병 마무리 눈앞

[자동차] 대우인천차, 백조의 날개 활짝
'미운 오리새끼' 신세 3년만에 GM대우차와 조기합병 마무리 눈앞

“재입사 통지서를 받고 너무 기뻐 펑펑 울었습니다. 이제 토ㆍ일요일도 없이 하루 11시간씩 일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행복했던 때가 평생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인천 부평구 청천동 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차 부평 공장) 조립1공장에서 만난 조립1부 의장 담당 권순열(44)씨는 곧 회사가 GM대우차와 통합되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지난 4년여를 떠올리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1987년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에 입사한 권씨는 99년 대우차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며 2001년2월 정리해고됐다.

당시 부평공장에서 권씨처럼 정리해고된 인원은 모두 1,750명. 이들은 이후 인근 공사판과 용역 업체 등을 전전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공사판으로 간 대우차 직원이 너무 많아 어느 공사판을 가도 대우차 직원복을 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렇게 회사를 떠나 고생하며 권씨는 직장의 소중함과 일을 한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다른 정리해고자와 공장에 남은 근로자도 권씨와 같은 생각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근로자 사이에 회사를 살리고 동료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품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야만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에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길 밖엔 다른 생존의 방법이 없다는 깨달음은 노사가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유가가 오르고 미국도 불경기 영향을 받으며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으로서도 소형차가 필요하게 된 것.

GM은 이에 앞서 2002년10월 대우차의 군산, 창원, 베트남 공장만 인수하고 부평 공장에 대해선 주ㆍ야 2교대 6개월 연속 가동, 매년 4%의 생산성 향상, GM 평균보다 나은 품질, 노사 안정 등의 4대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인수를 검토하겠다고 선을 그은 상태였다.

당시 부평 공장은 강성노조와 극한 노사대립의 대명사이자 1주일에 3~4일은 쉬는 생산성 최악의 기업으로 낙인찍혀 있던 터라 GM으로서도 인수가 부담스러웠던 것.

이 때문에 대우차 부평 공장은 대우인천차라는 독립법인으로 남아 GM대우차를 위탁 생산하고 있었는데 GM이 소형차에 눈을 돌리면서 대우인천차가 다시 부각된 것이다.

GM은 대형차와 트럭 시장에선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소형차 부문은 마땅한 모델이 없었다. 고민끝에 GM은 지난해부터 대우인천차를 통해 칼로스를 위탁 생산한 뒤 시보레 브랜드의 ‘아베오’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갖다 팔았고 이는 대박을 터뜨렸다.

대우인천차는 GM의 위탁생산량이 늘면서 정리해고자들에게 다시 재입사 통지서를 발송했다. 권씨처럼 이렇게 재입사한 인원은 현재 1,000여명.

대우인천차는 내년에는 나머지 700여명의 정리해고자도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매그너스 후속 모델과 GM대우차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생산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우인천차의 조립1공장은 드르륵 쿵쾅 거리는 각종 기계음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있다. 내수용 ‘젠트라’와 수출용 ‘칼로스’를 1분에 1대씩 생산하는 이 곳은 이미 24시간 풀가동 체제다.

오전8시부터 주간조가 작업을 시작, 오후5시까지 근무(점심 1시간)한 뒤 30분간 간단한 저녁을 먹고 다시 3시간 특근을 마치면 곧바로 오후8시30분부터 다시 야간조 근무가 시작되는 것. 칼로스(미국명 아베오)가 14개월 연속 미 소형차 판매 1위에 오르며 주5일 근무제는 딴 나라 이야기다.

24시간 풀가동, 생산성도 큰 폭으로 향상

물량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대우인천차는 아픔을 겪으며 경쟁력이 놀라보게 강해졌다. 29년간 근무한 박보영(57) 과장은 “불량이 생겼을 경우 누구 잘못인 지 곧바로 파악, 고칠 수 있도록 한 품질실명제가 혁신에 큰 몫을 했다”며 “실제로 2002년 130건을 넘던 자동차 1,000대당 결함건수는 최근에는 27건까지 줄었다”고 강조했다. 대우인천차에서 만드는 차의 품질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김석환(61) 사장은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공감대속에서 노사가 한마음으로 단결, 노력했다”며 “이를 통해 GM이 인수 전제 조건으로 내 세웠던 매년 4% 이상의 생산성 향상은 물론 GM의 전세계 60개 공장 중 품질 및 생산성 면에서 ‘톱3’안에 드는 쾌거를 이뤘다”고 밝혔다.

노사 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이제 파업이나 극단적인 투쟁 등은 생각조차 힘든 정도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자 지난해엔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결의, 라인을 멈추려 했으나 현장 근로자들이 거부해 파업이 유야무야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처럼 천하의 천덕꾸러기였던 대우인천차는 아픔을 겪으며 사실상 GM의 인수 조건을 대부분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생산성 매년 4% 향상, GM 평균 보다 나은 품질, 노사 안정 등을 이뤘고 주ㆍ야 2교대 6개월 연속 가동만 충족시키지 못한 것.

그러나 주ㆍ야 2교대 6개월 연속 가동도 조립1공장은 이미 충족시킨 상태이고 조립2공장이 아직 2교대가 되지 않고 있지만 내년초 매그너스 후속과 신차 SUV가 조립2공장에서 본격 생산되면 2교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GM이 그토록 꺼려했던 대우인천차를 조기 인수키로 전격 결정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대우인천차는 GM대우차에 인수되면 GM의 소형차 비밀 병기를 담당할 글로벌 생산 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GM 내부에서 GM대우차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유가가 지속되며 소형차 및 중형차 수요가 늘고 있는데다 앞으로 아시아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GM으로서는 GM대우차처럼 소형차와 중형차 부문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공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우인천차까지 GM대우차로 통합되면 GM대우차의 GM내 파워는 더 커질 것이다.

대우인천차는 이제 간판을 내릴 날이 며칠 안 남았다. GM대우차는 출범 3주년인 10월17일을 전후로 해 대우인천차와의 통합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GM대우차로 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대우인천차의 경험은 한국자동차산업사에 길이 남아 귀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무엇보다 대우인천차가 이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년 동안 남모를 아픔을 겪으며 노사 관계가 한단계 성숙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천=박일근기자


입력시간 : 2005-10-18 16:45


인천=박일근기자 ik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