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시장 벌써부터 긴장

그린스펀 美 FRB의장 내년 초 퇴임 예정
세계금융시장 벌써부터 긴장

지금 미국의 금융시장에서는 그린스펀 풋 옵션(Greenspan Put)의 효과가 사라질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뜨겁다. 풋 옵션이란 주로 포트폴리오의 가치방어, 즉 헤징에 사용되는데, 대상 자산의 가격을 일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풋 옵션을 보유한 사람은 해당 포트폴리오의 시장 가격이 낮아지면 옵션을 발동하여 미리 정해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으므로 가격하락에 따른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린스펀 풋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은 없다. 이는 금융상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은 결정적인 위기 때마다 시장을 구해내는 막강한 FRB의 위력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 중심에 위치한 그린스펀 FRB(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그린스펀을 이처럼 확고하게 믿는 현상을 ‘그린스펀 풋 옵션’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린스펀만큼 온갖 금융위기를 헤쳐 온 사람도 드물다. 그가 FRB의장에 취임한지 겨우 70일째 되는 1987년 10월19일 월요일(이 날을 블랙 먼데이라고 부른다),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무려 22.6%나 폭락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블랙 먼데이 다음날, 증시가 열리기 직전에 간단한, 그러나 명료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FRB는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유동성을 공급하여 금융 시스템을 지원할 것입니다.”

바로 그 날 다우지수는 102포인트 치솟으며 사상 최대의 급등세로 화답했다. 그린스펀이 시장을 수렁에서 건져낸 첫 업적이 되는 셈이다. 그 외에도 그린스펀이 FRB 의장을 지내는 동안 금융시장은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블랙 먼데이를 겪은 지 2년 뒤 상호저축은행의 대량파산 사태가 발생하였고, 그리고 간신히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되는가 했더니 멕시코(94년), 아시아(97년), 러시아(98년), 아르헨티나(2002년) 등 각국의 금융위기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01년에는 9ㆍ11 테러가 발발하였고, 2002년에는 엔론 등 대규모 기업회계 조작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라는 대규모 헤지 펀드의 파산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금융시장은 일촉즉발 대규모 금융 불안으로 번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미국판 '묻지 마 투자'로 모럴 해저드 시비

그러나 이런 위기 때마다 그린스펀은 시장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을 수렁에서 건져내었고,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투자자들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린스펀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자들이 그린스펀을 너무나도 믿은 나머지 무모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린스펀 풋 옵션’을 과신한 끝에 모럴 해저드 시비까지 재연되고 있다.

예컨대 LTCM펀드의 파산으로 말미암아 그간 주춤하였던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는 다시 급증하여 과도한 수준에 이르고 있고, 또한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분류되는 신용등급 BB수준의 정크본드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판 ‘묻지 마’ 투자가 되고 있는 셈인데, 예컨대 수익률에만 연연하여 매수세가 몰린 나머지, BB 등급의 정크본드와 미 재무성 증권의 금리 차이는 1997년 아시아의 IMF금융위기 직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형편이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버블논쟁을 일으킬 정도로 급등했다. 2005년 8월, 미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15.8%로 1979년 7월 이후 가장 높았으며 2004년의 경우, 미국에서 주택 매입 동기는 23%가 ‘투자’, 13%는 ‘두 번째 주택 마련’이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주택 매입 동기는 뒷전으로 가려질 정도로 부동산투기열풍이 드세다.

전문가들은 자칫 이런 식이라면 2006년경에는 부동산 버블이 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塚愍湄湧?이제까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그린스펀 풋 옵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영원하지 않다. 그의 FRB 의장 임기는 2008년 6월이면 끝난다. 또한 FRB이사의 임기는 14년인데, 2006년 1월에 만료된다.

그런데 FRB 이사직은 연임 규정이 없으므로 시장에서는 그린스펀이 FRB 이사직이 끝나는 2006년 1월까지만 의장직을 맡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그린스펀 역시 친구涌“?“의장과 이사직을 동시에 끝내겠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그린스펀 의장의 후임을 선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린스펀의 퇴임이 결정되는 순간, 금융시장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린스펀이 사임하는 순간, 그린스펀 풋 옵션도 사라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FRB 의장이 교체될 때마다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그린스펀이 임명될 때에도 금융시장은 하락했다. 1987년, 당시 시장의 막강한 신뢰를 얻고 있던 폴 볼커 FRB 의장이 사임하고 그린스펀이 선임되자 금융 시장은 한바탕 크게 흔들렸다.

주가는 폭락했고, 달러화 가치는 추락했으며 채권 수익률은 급등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폴 볼커에 비하여 그린스펀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니 시장이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린스펀 임명에 부정적이었던 시장은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1987년과 같은 일이 재연될 수 있을까. 현재 그린스펀의 후임으로는 벤 버난케, 마틴 펠트스타인, 글렌 허바드 등 3명의 전ㆍ현직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거기에다 현 FRB 이사인 도날드 콘, 로저 퍼거슨 등도 손꼽힌다.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버난케가 대략 30%의 지지를 받아 선두이고 뒤이어 펠트스타인(27%), 퍼거슨(21%), 콘(10%) 등의 순서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향후 움직임에 촉각

하지만 전문가들은 누가 그린스펀의 후임이 되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린스펀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시장이 그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한국축구에서 히딩크 감독의 후광이 워낙 강력했기에 후임감독이 처신하기 어려웠던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런 ‘적응기간’동안 시장은 다소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그린스펀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까지는 FRB가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리라 예상하고 있다. 현재 연방기금금리는 3.75% 수준이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세 차례의 FRB 이사회에서 인상을 거듭하여 4.5% 수준으로 상향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은 주식시장으로서는 악재일 수 밖에 없다. 그로 인하여 미국 증시는 내년 초까지 약세를 보일 공산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후임 FRB 의장이 그린스펀 같은 강력한 리더십 혹은 신뢰도를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장은 결국 불안감으로 인하여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래저래 미국의 주식시장이 당분간 상승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의 동조화 현상은 요즘 들어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미국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보인다면 결코 우리 증시에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금리가 인상될 경우 한-미간의 정책금리 차이에 따른 자본유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스펀의 사기: 20년에 걸친 그의 정책이 전 세계 경제를 황폐화시킨 과정>이라는 책의 저자인 라비 바트라는 “단기적으로 볼 때,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에 기적을 일으켰지만, 덕분에 우리는 지금 청구서를 떠안고 있다”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평가일 수 있으나, 그만큼 그린스펀의 후광이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당분간 금융시장은 다소 불안할 듯 하다.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입력시간 : 2005-10-26 13:43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