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 들인 이벤트성 신차 발표 '최고의 고객' 자긍심 심어주기

10월25일 서울 잠실운동장.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수 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수입차가 한꺼번에 주차장 입구로 몰리며 긴 줄이 생겼다.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다음으로 BMW 745Li가 뒤 따르고 아우디의 A6, 크라이슬러의 300C 등이 이어졌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메르세데스-벤츠가 유독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산차는 기껏해야 10대중에 1~2대 정도다.

주차장 입구에 선 행사 직원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발행한 ‘더 뉴 S-클래스 신차 발표회’ 초청장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야 차가 통과할 수 있게 했다.

주차장 입구를 지나 100여m를 더 들어가자 차를 대신 주차 시켜 주는 발레파킹 요원들이 달려온다.

차에서 내리자 말끔한 정장의 행사 요원들이 정중하게 안내한다. 주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터널은 어느새 메르세데스-벤츠와 S-클래스의 역사 박물관으로 새 단장돼 있었다. 지금까지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가 개척해 온 길을 사진으로 압축해 표현해 놓은 것이다.

"이 차를 타는 당신은 최고입니다"

주경기장 스타디움으로 들어서자 연회복 차림의 늘씬한 미녀들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다시 인사한다.

주경기장 잔디밭엔 동쪽 대형 무대를 중심으로 1,000명 분의 테이블과 좌석이 호텔의 그랜드볼룸을 옮겨 놓은 것처럼 정열 돼 있었다.

터널을 지나며 흑백 사진으로 봤던 옛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도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이날 행사를 위해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 온 ‘올드 카’들이다.

금강산도 식후경부터다. 맨 처음 나온 요리는 연어를 씌운 생선 크림 전채. 삼각별 모양의 장식이 동그라미 형태의 접시와 어울려 메르세데스-벤츠의 엠블럼을 떠오르게 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브랜드 파워가 결코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며 메르세데스-벤츠는 여전히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는 데에 세심한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5접시가 나온 코스 요리 동안 재즈 밴드의 생음악 연주가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공식 행사가 시작되자 무대에 나타난 인물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그녀는 이날 110여명의 모스틀리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10여 곡을 열창했다. 인기 바리톤 김동규와 테너 윤영석도 조수미와 호흡을 맞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 잊지 못할 화음을 선사했다.

한국을 빛낸 11세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 양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웠다. 이처럼 무대 공연이 절정에 달하며 조수미가 마지막 곡을 시작했을 때 드디어 ‘더 뉴 S-클래스’가 주경기장 반대편 문을 통해 천천히 등장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세단 S-클래스의 8세대 모델이 한국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더 뉴 S-클래스가 천천히 객석 옆을 지나 드디어 무대에 오르고 조수미의 노래도 끝난 순간 곳곳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와 함께 무대 뒤에서 깊고 푸른 10월의 밤하늘로 폭죽 100여 발이 솟구쳤다. 꽃 모양, 별 모양, 하트 모양 등의 폭죽은 차가운 밤하늘을 어느새 빨ㆍ주ㆍ노ㆍ초ㆍ파ㆍ남ㆍ보의 화려한 색깔로 물들였다.

객석 곳곳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 것은 물론이다. 김예정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상무는 “초대된 고객들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의 특권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행사의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날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행사에 들인 돈은 모두 6억여원. 결국 1명당 60만원인 셈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뉴 S-클래스 공식 출시 행사 다음날 500대의 선주문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는 뉴 S-클래스가 출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2~3달 전부터 가계약이 들어온 것을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판매 기록이다.

극소수의 귀빈만을 타깃으로 하는 VVIP(Very Very Important Peolpe) 마케팅의 힘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뿐 아니다. 3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BMW의 뉴 3시리즈 신차 발표회도 주목을 받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엠블러 모양의 요리

이날 뉴 3시리즈 신차 발표회는 독일을 제외하면 세계 최초로 열렸다는 점 뿐 아니라 신차 발표회를 마치 영화 시사회장으로 꾸며 관심을 받았다.

BMW그룹코리아는 먼저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을 완전히 하나의 극장으로 개조한 뒤 김기덕, 차은택, 김성수 등 내로라 하는 영화감독 세 명에게 BMW 뉴 3시리즈를 주제로 제작 의뢰한 단편영화들을 상영했다.

특히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한 스타와 그 스타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스토커가 만나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난 당신에게 미쳤어요'라는 자막 뒤로 BMW 뉴3 시리즈가 등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관음증을 주제로 한 차은택 감독의 작품은 관음의 대상이 뉴 3시리즈라는 연상하게 했고, 김성수 감독의 작품은 남녀가 서로 눈을 가린 채 격투전을 벌이는 장면이 압권으로 꼽혔다. 물론 영화 하일라이트 상영이 끝난 뒤 무대엔 뉴 3시리즈 신차 2대가 등장했다.

이처럼 수입차 브랜드들이 신차 발표회에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는 이유는 언론과 주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신차의 첫인상이 판매와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끼쳐 마케팅의 승패를 좌우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신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언론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신차 발표회는 점점 화려해지고 남들과는 달리 튀어보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마케팅 비용 고스란히 고객 부담" 지적도

그러나 일각에선 이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없지 않다. 신차의 제원과 성능, 특성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알리는 데에 충실하기 보다 너무 이벤트성으로만 흐르다 보니 오히려 신차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한국도요타자동차가 경기 화성시 자동차주행시험장에서 스포츠 세단인 렉서스 ‘ 뉴 IS’의 시승 행사를 가진 것은 또 다른 길을 보여줬다.

한국도요타자동차는 뉴 IS의 신차 발표회를 딜러점인 서울 서초동 프라임모터스 전시장에서 간단히 가진 뒤 자동차주행시험장의 시승 행사에 힘을 쏟아 이 차의 성능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 주력했다.

물론 성능 중심의 스포츠 세단과 최고급 럭셔리 세단의 신차 발표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이러한 초 호화 신차 발표회를 비롯한 각종 마케팅 비용은 모두 제품 가격에 반영돼 고객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라며 “제품을 어떻게 잘 포장해 멋지게 알리느냐 만큼 일단 고객의 욕구를 채워주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충실하고 정확한 제품의 정보를 전하는 데에도 소홀해선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