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PDP·OLED 세계 최고 기술력…선두 다툼 치열

디스플레이(Display) 경쟁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한국은 브라운관, LCD, PDP, OLED 등 4가지 주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모두 세계 1위에 올라있는 디스플레이 강국이다. 그래서 ‘디스플레이 그랜드슬램’이라는 자랑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이처럼 한국이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반도체 산업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적기(適期) 투자와 이를 통한 시장 주도권 확보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CD의 경우만 보더라도 제품으로 먼저 내놓은 것은 일본이었지만, 공격적인 투자와 쉼 없는 연구개발, 공정 최적화를 통해 본격적인 시장을 열어 제친 것은 한국이었다.

LCD 시장의 제패로 자신감을 얻은 한국 기업들은 다른 디스플레이 분야도 더욱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열릴 듯 말 듯한 시장에 먼저 달려가 깃발을 꽂고 울타리를 쳤다. 기술 혁신과 함께 제품 표준화를 선도한 것이다. LCD에 이어 PDP, OLED 시장에서 최근 잇달아 일등에 오른 것도 그 덕분이다.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정보디스플레이 학술대회 및 전시회 'IMID(국제 정보디스플레이 전시회) 2005'에 참가한 삼성전자의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세계최대 82인치 TFT-LCD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번 오른 왕좌를 계속 지켜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달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FPD 인터내셔널 2005’ 행사에서는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첨단 제품을 대거 선보이며 또 다시 기술력의 주도권을 뽐냈다.

이 전시회에서 특히 삼성전자는 ‘32인치 TV용 컬러 필터 없는 LCD’를 출품해 많은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LCD는 백 라이트가 비쳐주는 빛을 적ㆍ녹ㆍ청색으로 구분하는 컬러 필터가 반드시 부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이 컬러 필터가 필요 없도록 기술 혁신을 이룬 것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의 디스플레이 양날개인 삼성SDI는 세계 최초 63인치 풀HD급 PDP와 세계 최대 크기의 102인치 풀HD급 PDP를 전시해 PDP 강자임을 입증했다.

삼성·LG 치열한 선두다툼

LG필립스 디스플레이 32인치 슈퍼슬림 브라운관 <서울경제>

삼성과 끊임없이 디스플레이 업계의 자웅을 겨루는 LG그룹의 간판 업체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LG필립스LCD는 풀HD급 TV용으로 37인치, 42인치, 47인치, 55인치의 첨단 LCD 제품을 소개했고, LG전자는 60인치와 71인치 풀HD급 PDP 제품 등을 선보였다.

주목할 것은 삼성전자가 LCD를 통해 디스플레이 시장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 이상완 LCD총괄 사장은 ‘FPD 인터내셔널 2005’ 행사 기조 연설에서 “1인치부터 100인치까지 모든 사이즈에 적용되는 LCD 시장 규모가 2010년쯤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1,150억 달러 정도로 전망했다.

이는 LCD 시장 주도력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에 대한 정확한 확신이 없다면 내놓기 어려운 전망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올 초 82인치 LCD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LCD 대형화를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이고 보면 이 같은 예측이 결코 허언만은 아닌 듯하다.

삼성전자의 ‘LCD 띄우기’는 디스플레이 시장에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당장 PDP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40인치 이상의 대형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PDP가 대형화의 한계를 극복한 LCD의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필립스 두루마리 디스플레이 리디우스의 펼친 상태

‘세계 최대 화면’를 놓고 서로 경쟁하던 PDP 업계가 LCD라는 외부의 새로운 라이벌을 맞아 어떻게 싸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형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는 PDP 특유의 장점이 빛을 잃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LCD 제품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40인치대 평면 TV 시장에서 LCD와 PDP의 가격 차이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LCD의 빠른 진보는 OLED와의 격돌도 예상케 한다. OLED는 LCD와 PDP의 뒤를 이어 빠르게 상용화하고 있는 첨단 디스플레이로, LCD보다 제조 공정이 단순하면서도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주로 휴대폰 등 소형 화면에 채택되고 있지만 대형 OLED를 생산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향후 몇 년 뒤면 LCD가 OLED에 의해 서서히 대체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LCD 스스로 진화하면서 단점을 없애 나가고 있는 추세여서 양자 간 싸움의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새롭게 주목받는 브라운관

삼성SDI 슬림 브라운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브라운관의 분전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해외 유수 업체들이 철수하면서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국내 업체들에 의해 ‘슬림화’가 진행되면서 브라운관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 세계 TV 중 60% 이상이 브라운관을 쓰고 있는 데다, 이를 평판 디스플레이가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브라운관 전성시대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스플레이 시장의 신구(新舊) 경쟁이 끝을 알 수 없는 혼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싸움에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디스플레이 열국지가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산업은 대규모 투자와 앞선 연구개발 능력이 성공의 필수 조건인데, 최근 신기술이 쏟아져 시장 전망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