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투자 증가로 증시 '훈풍' 기대

조기퇴직을 뜻하는 사오정이나 오륙도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게 되면서, 사회의 성향도 바뀌고 있다. IMF 금융위기를 겪기 이전만 하더라도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닌 듯하던 노후 보장문제가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대상 1순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올 12월부터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퇴직연금제도가 실시된다.

선진국의 경우는 국가가 보장하는 공적연금과 기업의 사용주가 보장하는 기업연금에다 개인 스스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의 3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가 보장하는 국민연금과 개인 스스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제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퇴직연금 제도는 실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12월부터 퇴직연금제도를 새로 도입함으로써 선진국에 버금가는 사회보장 제도를 완비한 셈이다.

물론 퇴직연금은 아니더라도 일시금 형태로 지급되는 퇴직금 제도는 이전부터 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퇴직금 제도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많이 내포한 상황이었다.

첫째로, 현행 법에 의하면 기업은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를 기업내부에 유보하거나 혹은 외부에 유보할 수 있는데, 그게 문제가 많았다. 대부분의 기업은 기업내부 유보를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정상적일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회사가 경영난으로 부도가 날 경우, 근로자는 직장도 잃지만 동시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둘째로,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하거나 혹은 연봉제를 실시하여 퇴직금 부담을 덜려는 기업들이 많아진 것도 문제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퇴직금 중간정산제도를 채택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IMF 위기를 겪으면서 퇴직급여충당금이 자본금을 넘어서는 등 경영을 크게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자 기업들은 너도 나도 중간정산을 통하여 부담을 덜려고 시도하였다.

근로자의 입장에서야 당장에 목돈을 받는 것이었지만 결국 그게 생활비 등으로 다 소비되어버려 정작 노후대책에는 구멍이 생긴 꼴이 되고 말았다.

세 번째로 설령 기업이 중간정산을 채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근로자 스스로 잦은 이직으로 인하여 평균 근속기간이 짧아진 것도 문제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노후에 받을 퇴직금을 ‘미리’ 받아버리는 꼴이 되므로 노후대책으로서 퇴직금이 가지는 의미는 퇴색하였다.

퇴직금제·퇴직연금제 동시 실시

이에 따라 정부는 그간 노사정 위원회와의 오랜 논의 끝에 12월부터 새로이 퇴직연금을 실시하기로 했다. 5인 이상 기업에는 당장 12월1일부터 새로운 퇴직연금제도가 적용되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2008년에서 2010년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기에 도입될 예정이다.

다만 기존의 퇴직금제와 퇴직연금제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므로 퇴직금제와 퇴직연금제를 동시에 실시할 수 있다. 그리고 퇴직연금제에는 확정급여형, 확정기여형 등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근로자 개인별로는 기존의 퇴직금 제도, 혹은 퇴직연금제 중의 하나, 즉 세 가지 제도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의 차이는 퇴직급여의 운용을 누가 책임지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확정급여형은 기업주가 적립금의 운용을 책임지는 형태인 반면, 확정기여형은 근로자가 스스로 자신의 적립금 운용을 책임지는 형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확정급여(DB : Defined Benefit)형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받을 퇴직 급여 규모와 내용이 사전에 확정되는 제도다.

그러므로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순전히 기업주가 책임지고, 근로자는 그 운용 결과에 상관없이 정해진 급여를 정기적으로 수령 받는다.

운용수익이 좋으면 기업주의 퇴직금 부담이 줄고, 운용수익이 나쁘면 기업주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적립금의 운용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기업주가 부담금의 40%까지는 사내 적립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기업이 도산하면 퇴직급여 일부도 날아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확정기여(DC : Defined Cotribution)형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과는 반대로 기업주의 부담금이 사전에 확정되고 근로자가 받는 퇴직연금이 운용실적에 따라 변동되는 연금제도이다.

기업주가 퇴직분담금을 근로자 개인별로 계좌에 적립하면, 근로자는 노사가 퇴직연금규약에서 선정한 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운용방법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적립금을 직접 투자하고, 그 결과로 얻어진 연금(혹은 일시금)을 받는다.

근로자의 운용방법에 따라 손실도 볼 수 있기에 투자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며 또한 운용 금융기관도 원금보장, 위험자산투자제한 등의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확정기여형은 적립금이 사용자로부터 독립돼 근로자 개인 명의로 적립되므로 기업이 도산해도 수급권이 거의 100퍼센트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주식투자자들이 투자 설명회에서 참석 강사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는 가운데 한 투자자가 단말기를 통해 주식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일반적인 근로자의 경우, 금융시장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므로 퇴직 급여금의 모든 운용을 기업주 측에서 맡아서 하고, 근로자는 그저 일정한 퇴직연금을 정기적으로 수령하는 확정급여형이 인기를 끌 듯하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일 수도 있다. 우리보다 먼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오래 전부터 이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1981년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인 401K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확정급여형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확정급여형은 앞서 살폈듯 최악의 경우, 100퍼센트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도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면서 덩달아 사내에 유보된 퇴직연금의 지급도 불가능하게 되자 확정급여형 일변도였던 양상은 변모하게 되었다.

결국 미 정부는 퇴직연금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확정기여형인 401K를 도입하였고 대다수의 근로자들이 이 제도를 선택하였다.

그 결과, 401K 자금의 절반 이상이 뮤추얼펀드 형태로 주식과 채권시장에 유입되면서 1990년대 미국 경제 장기 호황의 토대를 마련했다.

간접투자가 주종을 이루는 미국의 주식시장을 401K가 이끌어 간 셈. 그러니 우리나라라고 하여, 간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확정급여형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시장 추이 주시하며 선택 미룰 듯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우선은 새로운 제도가 12월부터 실시된다고 할지라도 퇴직금 제도가 일거에 변모하거나 시장에 큰 영향을 주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일시금 형태의 퇴직금 제도가 한시적으로(2010년까지) 병행하여 실시될 것이므로 근로자 혹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시장의 눈치를 보아가며 서서히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근로자의 경우도,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이라는 두 제도 사이의 차이점이나 장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선택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이건 혹은 근로자이건 당장은 기존의 제도에 안주하고 있다가, 도저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심산일 터이다.

그러나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제도가 가져다 줄 금융시장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적립식 펀드같은 간접투자 상품은 물론이고, 주식투자 등의 직접 투자 상품에도 영향이 클 것이다.

401K제도가 도입되면서 간접투자 상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게 장기적인 주식시장의 호황을 가져다 준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도 점차 간접투자가 더욱 늘어나고, 그것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그런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