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DMB 콘텐츠 빈약-12월 송출 지상파는 단말기 비상

5월부터 본격 서비스를 개시한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12월 1일로 꼬박 7개월을 채운다.

아울러 이날은 위성 DMB의 경쟁자이자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 DMB가 첫 전파를 송출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로써 ‘손 안의 TV’를 표방하는 DMB 시대가 외견상으로는 활짝 열리는 셈이 됐다.

DMB는 휴대폰이나 차량용 수신장치 등 휴대형 단말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고화질, 고음질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TV 시청 습관뿐 아니라 일상 생활의 모습도 크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집이나 사무실 등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들고 다니며 TV를 볼 수 있는 데다 시청자 개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기대는 자연스러웠다.

때문에 DMB가 ‘매스 미디어’의 시대를 접고 ‘퍼스널 미디어’의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될 것이라는 다소 섣부른 전망도 나왔다.

실제 위성 DMB 서비스를 이용해 본 가입자들 가운데 생활 습관이 달라진 것은 물론 DMB가 제공하는 환경에 만족한다고 밝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길어 지루했는데 그 시간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음악 듣기를 즐겨 평소 MP3를 휴대하고 다녔지만 DMB의 오디오 채널 음질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DMB로 바꿨다.” “TV 방송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집으로 향하던 적이 많았는데 DMB를 들고 다니면서부터는 좀 느긋해졌다.” “주행 중에도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과 음질을 제공하는 DMB 덕택에 차를 몰고 지방으로 갈 때도 지루하지 않게 됐다.”

위성 DMB 가입자들이 흔히 치켜세우는 DMB의 장점들이다. 이 같은 찬사는 물론 언제 어디서나 멀티미디어 방송을 즐길 수 있도록 한 획기적 기술 진보가 빚어낸 결과다.

하지만 그릇이 아무리 좋아도 내용물이 시원찮다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다. DMB 출범 전후로 많은 전문가들이 “결국 콘텐츠가 DMB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렇다면 위성 DMB를 운영하는 단일 사업자인 TU미디어는 콘텐츠 승부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까.

시선 끄는 프로그램이 없다

TU미디어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외주 제작업체의 한 연출자는 “위성 DMB 방송 수용자의 대다수가 젊은 층이기 때문에 이들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시청자가 마치 TV와 대화하듯 친숙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요소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참신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위성 DMB 콘텐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안팎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출범 전부터 목을 멨던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의 재전송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케이블TV 등에 운영을 맡긴 각 채널들은 기존 프로그램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위성 DMB가 구태여 이동 중에까지 보고 싶을 만큼 시청자의 시선을 당기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콘텐츠가 알찬 수준은 아니라는 게 솔직한 평가”라고 밝혔다.

DMB의 성공 키워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 확보에 있다. 사진은 채널 블루의 '코미디 카운트 다운'

이동통신 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33)씨도 “처음엔 DMB폰으로 TV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자주 봤는데 요즘은 좀 식상해 잘 안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위성 DMB 프로그램을 직접 만드는 현업 스태프들 중에도 DMB폰으로 TV 시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위성 DMB 콘텐츠가 시청자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업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이다.

TU미디어는 당초 올해 가입자 수를 최대 100만 명으로 내다봤으나 이후 60만 명으로 수정하고 또 얼마 뒤에는 30만 명으로 낮춰 잡았다.

시장의 호응이 예상과 달리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월말 현재 가입자 수가 약 29만 명으로 최종 수정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TU미디어 홍보실 관계자는 “당초 전망과 달리 가입자 수가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비스 개시 6개월여 만에 29만 명을 확보한 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시장 초기이기 때문에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TU미디어 측은 위성 DMB가 빨리 확산되지 않는 주요 원인을 프로그램의 미흡으로 파악하고 지속적인 콘텐츠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한국 프로농구 경기 같은 스포츠 중계가 대안으로 꼽힌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같은 해외의 인기 콘텐츠도 수혈 대상이다.

이처럼 선발 주자인 위성 DMB가 힘겹게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가운데 지상파 DMB가 마침내 합류해 귀추가 주목된다. DMB 시장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상황이어서 두 매체는 작은 파이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할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가입비 2만원, 월 이용료 1만3,000원을 받는 위성 DMB와 달리 무료 서비스 예정인 지상파 DMB가 전체 DMB 시장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단말기 보급도 난항 거듭

그러나 지상파 DMB 역시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공산이 커졌다. 단말기 보급 경로로 믿었던 이동통신 업체들이 “남는 게 없다”며 지상파 DMB폰 판매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위성 DMB 사업을 하는 TU미디어의 대주주인 SK텔레콤이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포석도 깔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상파 DMB 사업자로 참여하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국내 방송 시장에서 80% 이상의 콘텐츠를 공급할 정도로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어 나를 단말기가 보급되지 않는다면 지상파 DMB를 조기에 뿌리내리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거창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며 출범한 ‘손 안의 TV’ 시대가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굴러가지나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