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시장 최대 알짜배기 매물, 재계 판도 뒤바꿀 계기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에서 분리돼 성공적인 워크아웃을 거쳐 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대우건설이 새 주인을 찾는다. 대우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의 빅3. 자산 규모 5조원대의 초대형 매물이다.

지난달 예비 입찰에 참여한 10개 인수 희망업체 가운데 본입찰 자격을 얻은 것은 금호아시아나, 두산, 한화, 유진, 삼환, 프라임 그룹 등 6개 컨소시엄. 이들은 대우건설 인수에 그룹의 미래 명운을 건 듯 하나같이 총력전이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단순히 대우건설의 외형보다도 내재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출 5조원 돌파, 영업이익 4,300여 억원 달성 등 사상 최대의 경영 실적을 기록했다.

부채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130%로 대폭 개선돼 재무구조가 건실하다.

게다가 수주 잔액만 4년치 공사 물량에 해당하는 18조원에 달해 이 회사의 내재가치를 짐작케 한다. 근래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매물 중에서도 가장 ‘알짜배기’기업으로 평가된다.

6개 컨소시엄 사운 걸었다

본입찰 자격을 얻은 6개 컨소시엄은 대기업 3곳과 중견기업 3곳. 대우건설 인수전은 그야말로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장이다.

하지만 그런 구분은 기업 덩치에 따른 것일 뿐, 속내를 들여다 보면 6개 컨소시엄 모두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

마지막 축배를 들기 위해서는 든든한 재무적 투자자를 컨소시엄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하는 데다, 최고의 인수가격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물밑 정보전과 신경전이 치열하다.

언론을 통한 대국민 홍보전 또한 한치의 양보가 없다.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각자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부각시키며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으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6개 컨소시엄은 대우건설 인수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각각의 셈법은 다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기업 가치를 일거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자산 규모 1조원대의 중견기업 3사로선 5조원대의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회사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다. 대기업 3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룹 외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물론 사업구조 고도화까지 이룰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우건설의 향배는 재계 판도까지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주력 업종을 건설업으로 삼기 위해 대우건설 인수를 결정했고, 30년 동안 금호건설을 경영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공개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그룹 내 여유자금이 현금으로만 1조5,000억원이 넘는다며 자금 동원력도 은근히 과시했다. 박 회장은 또 “대우건설을 못 얻으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서겠다”고 밝혀, 건설업 확대에 대한 불퇴전의 의지를 나타냈다.

‘뉴 한화’를 표방한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도 대우건설 인수를 올해 3대 사업으로 선언할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한화는 대우건설을 인수해 기존 한화건설과 함께 레저사업 부문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금융, 레저ㆍ유통, 석유화학의 3각축 사업구조를 4각축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중공업,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M&A귀재로 평가받는 두산그룹의 행보 역시 관심을 끈다.

두산은 오너 형제 간 경영권 다툼으로 그룹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지만 초대형 알짜 매물을 놓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특히 거대 중공업 그룹을 지향하는 두산은 두산중공업 등 핵심 계열사와 대우건설이 합쳐지면 해외 시장 공략에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견기업 3사, 강력한 다크호스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의 숨은 변수는 유진그룹, 프라임그룹, 삼환기업 등 중견기업 3사의 도전이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의 인수전 참여에 대해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연 인수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유진그룹, 프라임그룹 등이 예비 입찰에서 3조원이 넘는 인수 금액을 써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계는 깜짝 놀란 모습이다.

때문에 당초 이번 인수전의 ‘허세’로 평가절하됐던 중견기업 3사는 단숨에 강력한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이들 3사는 대외 인지도가 낮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갖춘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부 자금 동원 능력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부에선 은행, 사모펀드(PEF) 등 컨소시엄 파트너만 잘 엮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대우건설 노조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고 있는 대기업 3사에 비해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이다.

유진그룹은 건빵 군납업체로 시작해 1980년대 건설 붐을 타고 레미콘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국내 레미콘 시장 1위 업체다.

90년대 후반부터는 디지털미디어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구조를 다각화하고 있다. 20여 개 계열사를 통해 올린 지난해 매출 규모는 8,700억원대.

유진은 대우건설 인수로 기존 레미콘, 시멘트 사업과 수직계열화를 이뤄 종합건설업체로 도약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대우건설이 러시아 사할린 남부 코르사코프 해안가인 프리고노드노예에 아야슈즈키 해저에서 채굴된 천연가스를 액화상태로 만드는 LNG플랜트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 '서울경제'

1998년 국내 최대 전자제품 쇼핑몰인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를 개장하며 이름을 알린 프라임그룹은 부동산 개발 전문업체다.

‘테크노마트’ 성공 이후 한글과컴퓨터, 프라임상호저축은행 등 계열사를 늘리면서 그룹 규모를 키워 왔다. 기존의 부동산 개발과 설계ㆍ감리 분야 경쟁력에 대우건설의 시공 능력을 보태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삼환기업은 토목ㆍ건설 전문업체다. 교량과 도로 분야에 높은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 회사는 중동 등 해외 시장에도 활발하게 진출해 왔다.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에서는 국내 건설 업체 중 24위. 주택 부문과 해외 플랜트 건설에 강점을 지닌 대우건설을 인수해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대우건설 인수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인수 가격이다. 최대 지분을 가진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인수 금액, 재무 건전성, 경영 계획 등 다양한 항목에 걸쳐 평가한다고 밝혔지만, 공적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해야 하는 입장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돈을 많이 적어내는 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캠코는 경영권(지분 50%+1주)만을 먼저 매각한다는 방침을 바꿔 채권단 전체 지분인 72%를 일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럴 경우 인수 대금은 당초 3조원 선에서 최대 5조원까지 훌쩍 뛰게 된다. 실탄 마련을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있는 6개 컨소시엄 모두에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누가 됐든 무리한 자금 조달로 대우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과도한 금융 부담 때문에 인수 업체와 대우건설 모두 부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직 대우 임원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국민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돼야 한다.

때문에 정부는 대우건설을 팔 바엔 회사 가치를 더욱 키우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업에 매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씬대는 '대우맨'…인수전서 무슨 역할?

지난달 대우건설 예비 입찰에 인수 희망을 밝힌 컨소시엄은 모두 10개. 워낙 알토란 매물인 탓에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옛 대우그룹 또는 김우중 전 회장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컨소시엄이 무려 5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경남기업,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는 대우의 옛 계열사들, 대주그룹은 ‘대우그룹의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알려진 김우일 씨가 사장으로 영입된 회사, 3조2,000억원의 최고 인수가를 써낸 유진그룹은 김 전 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전 대우 홍보이사가 몸 담았던 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고 박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씨와 김 전 회장의 차남 선협씨가 부부 사이라는 점에서 사돈기업, 모두 대우와 인연이 있는 업체들이다.

그러다 보니 시중에는 대우맨들이 회생에 성공한 대우건설을 다시 품에 안으려고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예비 입찰 결과 경남기업, 대우자판, 대주그룹 3개 컨소시엄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오히려 일각에서는 ‘옛 대우 연고기업 왕따설’까지 흘러나왔다.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측은 엄격한 심사 기준에 의해서 탈락했을 뿐이라며 그런 의혹을 차단했다.

예비 입찰에서 옛 대우그룹과 인연이 있던 3개 컨소시엄이 떨어졌지만 대우건설 인수전에 드리워진 ‘옛 대우의 그림자’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본입찰 자격을 얻은 6개 컨소시엄 가운데 유력한 인수 후보로 금호아시아나와 유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증권가에는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전에 막후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그럴 듯한 루머까지 한때 나돌았다.

이와 관련, A컨소시엄 관계자는 “우리도 김우중 전 회장이나 옛 대우맨들이 대우건설 인수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 봤다”며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김 전 회장 등이 개입할 여지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분식회계 및 외화도피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드러난 김 전 회장의 재산으로는 3조원 안팎에 달하는 거래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김 회장에게 돈이 어디 있나. 거기(대우건설) 넣을 돈이 있었다면 이전에 정부가 다 찾아냈을 것이다”라고 개입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또 “옛 대우맨들이 지금 자신이 속한 기업을 위해 뛸 수는 있겠지만 이를 옛 대우그룹과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옛 대우계열사들의 잇단 매각과 관련 이에 대한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또 다른 측근은 전했다. ‘과거지사’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편 자산관리공사는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 3월까지 최종입찰 제안서를 받아 4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연내 매각절차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