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벤처기업 '헬릭서', 일본 소프트뱅크서 500만 달러 유치

“헬릭서라는 회사 이름이 좀 특이하죠? 하지만 그 안에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만병통치약을 만들고 싶은 저희들의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유전공학특화 창업보육센터 307호에 입주해 있는 ‘헬릭서’는 우리 주변에 흔한 야생 식물이나 약초 등 천연물을 재료로 신약을 개발하는 생명공학(BT) 분야 벤처기업이다.

대학교에 둥지를 튼 ‘대학 벤처’답게 임직원들은 모두 패기만만한 젊은 피들이다. 경영을 맡고 있는 방기훈 대표이사가 89학번, 연구원들의 리더인 박은진 연구소장이 92학번으로 아직 30대다.

그렇다고 경륜과 노련미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회사 창업의 주역인 김선영 교수(생명과학부)가 후원자이자 버팀목이 돼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재정적으로 든든한 지원 사격을 해줄 파트너도 생겨 회사 운영에 한결 탄력을 받게 됐다. 일본의 투자전문 회사인 소프트뱅크인베스트먼트(SBI)가 500만 달러의 자금을 헬릭서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SBI는 일본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자프코(JAPCO)와 함께 투자 규모 1위를 다투는 대표적인 회사다.

더욱 눈길을 모으는 대목은 SBI가 재일동포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거대 정보기술(IT)업체 소프트뱅크의 관계사라는 점이다. 손 회장은 SBI에 25%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직접 경영을 챙기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손 회장은 ‘욘사마’ 배용준과 함께 코스닥 기업 오토윈테크를 인수해 한류 콘텐츠 사업에 나서는가 하면,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110억원을 투자하는 등 국내 시장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여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항알러지제 등 개발에 전력

SBI가 헬릭서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은 이 회사가 보유한 MOM(Molecular biology of Oriental Medicine) 분야의 높은 연구개발 능력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MOM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축적된 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의학을 해석하는 학문으로, 쉽게 말해 동양에서 치료용으로 쓰이는 여러 약재의 효능을 서양 학문의 틀로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헬릭서는 MOM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SBI의 투자는 이 회사 자문역을 맡고 있는 일본인 학자가 평소 국제학회 등에서 친분을 쌓은 김선영 교수의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해 투자를 추천하면서 이뤄졌다.

물론 투자 유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반년에 걸친 지루한 협상과 철저한 기술력 심사 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헬릭서의 MOM 분야 사업은 2001년부터 본격화했다. 이제 겨우 5년 정도의 연륜이 쌓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개발 실적은 BT 업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항(抗)알러지제(PG102), 관절염치료제(PG201), 비만개선제(PG105) 등이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 가지 모두 개발에 성공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주로 자라는 자생식물 다래에서 추출한 물질로 개발된 PG102는 아토피 피부염, 비염, 천식, 음식 알러지 등 4대 알러지에 모두 효능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시험관 실험과 동물 실험을 마쳤고, 현재는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는 중이다.

방기훈 대표

PG102의 무궁무진한 시장성을 인정한 거대 회사들도 상용화를 위해 헬릭서와 손잡았다.

국내에서는 동아제약이 2004년 4월 헬릭서와 PG102를 재료로 한 신약 개발ㆍ판매 라이선스를 맺었고, 해외에서는 미국 에피카스 사가 같은 해 5월 PG102를 활용한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제조ㆍ판매에 대한 권리를 헬릭서로부터 사들였다.

기술력 인정, 거대기업 제휴 손짓

JP모건 등 세계적인 투자기관들이 대주주로 참여한 에피카스 사는 날로 급성장하는 세계 건기식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회사로, PG102는 이들의 첫 번째 주력 제품이 될 것이라는 게 헬릭서 측의 설명이다.

헬릭서 자체적으로도 국내 건기식 시장을 타깃으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은진 연구소장은 “올해 안에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으로부터 건기식으로 개별 인정을 받을 예정인데, 아마도 알러지에 듣는 건기식으로는 세계 최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PG201, PG105의 개발 과정도 순조롭다. 현재 PG201은 임상 2차 실험(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물의 용법ㆍ용량 시험)이 올해 안에 실시될 예정이고 PG105도 곧 인체 실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벤처는 기술로 창업하지만 걸음마를 떼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금이라는 젖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헬릭서는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셈이다.

방기훈 대표는 “일본 벤처 캐피탈이 국내 BT 기업에 투자한 것은 헬릭서가 최초 사례다.

당장 수익을 내지도 않고 상장도 하지 않은 기업에 그들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돈을 댄 것은 그만큼 투자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 것 아니겠냐”며 “남은 건 투자자들의 기대대로 연구개발에 최선을 다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라고 향후 목표를 밝혔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