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GS칼텍스, 현지 법인 설립 '황금어장' 입질 시작

전 세계 석유 기업들의 중국 진출 러시가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활동이 급팽창하면서 13억 인구와 수많은 공장들이 소비하는 석유량도 날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기업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황금 어장이다.

중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2001년 470만 배럴에서 2005년에는 679만 배럴로 불과 4년 만에 1.5배 가까이 늘어나는 폭증세다.

‘기름 먹는 하마’인 자동차 등록 대수(승용차ㆍ상용차 합산)도 2000년 1,600여만 대, 2001년 1,800여만 대, 2002년 2,050여만 대, 2003년 2,380여만 대로 해마다 수백만 대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 석유 시장의 빗장이 본격적으로 풀린 시기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부터다. 3년 동안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04년 12월 소매 시장(주유소)이 먼저 개방됐다.

이 때부터 외국 기업은 30개 이내의 주유소에 대해서는 100% 자기 자본으로 설치할 수 있게 됐다. 30개 이상인 경우에도 중국 회사와 공동 출자를 통해 주유소를 세울 수 있다. 다만 대주주가 될 수는 없다는 제약이 뒤따른다.

올해 12월부터는 도매 시장(대리점)도 활짝 열린다. 외국 기업은 대리점을 설치해 원유와 석유 제품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점포 수나 지분율에 대한 제한도 전혀 없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 석유 시장을 몽땅 외국에 내줄 리는 만무하다. 아직까지 석유 수입은 정부 기관의 승인을 얻어야 할 뿐 아니라 수입 쿼터도 엄연히 존재한다.

외국 기업은 페트로차이나, 사이노펙 같은 중국의 거대 국영 석유기업에 비하면 사업 환경이 한참 열악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 접근을 게을리하는 것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된다. 현재보다 미래의 파이가 훨씬 큰 게 중국 석유 시장이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 박진호 과장은 “중국이 WTO 가입 이후 단계적으로 석유 시장을 개방해 왔지만 아직 국영 기업에 우선권을 주고 외국 기업들에게는 각종 제약을 주고 있어 완전 개방은 아닌 셈”이라면서도 “그러나 중국은 워낙 덩치가 큰 시장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두고 사전 준비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사들, 거액 투자하며 중국 공략

국제 석유 시장을 주무르는 이른바 ‘메이저’ 기업들은 바로 그 때문에 일찌감치 중국 본토에 깃발을 꽂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현재 국제 석유 메이저들이 중국에 구축한 생산, 판매 거점은 수십 개에 이른다. 또한 중국 투자액도 10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가장 먼저 진출한 것은 엑슨모빌, 셸, 토탈, 아람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쟁쟁한 메이저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중국 기업과 합작 형태로 정유공장 건설부터 뛰어들기 시작했다.

재팬에너지와 신일본석유 등 일본 기업들도 이에 뒤질세라 90년대 중·후반 윤활유 시장에 중국측과 합작으로 진출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유소나 판매회사를 차려 유통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또 다른 대세로 떠올랐다. 엑슨모빌, 셸, BP 등이 중국 국영 기업과 공동으로 현재 40개 안팎의 주유소를 운영 중인데, 그 숫자는 수 년 내로 500개까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정유사들도 불붙은 중국 석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제 메이저에 비해 자산이나 매출에서 휠씬 열세인 마이너이지만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정유사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숨기지 않는다.

GS칼텍스의 중국 주유소 1호점 기공식

국내 1위 업체 SK㈜는 2004년 중국 베이징에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인 ‘SK중국투자유한공사’를 설립하면서 중국 현지화 전략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20여개 현지법인을 보유해 중국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를 통해 SK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태지역 에너지ㆍ화학 메이저’로의 도약이다.

중점 육성 분야는 석유 도ㆍ소매망 사업, 화학 제품 제조 및 판매 사업, 윤활유 사업, 아스팔트 사업 등 4대 분야. 이 중 윤활유와 아스팔트 사업은 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이미 수출을 통해 중국 시장을 노크해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신헌철 사장은 연초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화를 위해 올해도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밝혀, SK㈜의 중국 드라이브가 강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주유소 통한 중국내 사업네트워크 구축

SK의 중국 석유 시장 공략은 자회사인 SK네트웍스(이하 네트웍스)를 통해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SK㈜가 ‘업스트림’(제품 생산) 쪽에 치중한다면 네트웍스는 ‘다운스트림’(유통ㆍ판매) 쪽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네트웍스는 주유소와 충전소를 합친 ‘복합주유소’ 아이템으로 중국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 회사 장세찬 과장은 “중국의 주유소들은 말 그대로 기름만 넣는 곳으로 시설이 형편없지만 우리는 국내 경험을 바탕으로 최신 서비스로 중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SK 브랜드를 단 복합주유소는 상반기 중에 2개소가 문을 열게 되며 올해 안에는 40개 가량이 완공돼 본격 영업에 들어가게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천 개 수준까지 주유소 네트워크를 크게 확대할 예정이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주유소 네트워크를 통한 향후 사업 계획이다. 네트웍스 측은 중산층 이상 운전자들과의 ‘접점’ 역할을 할 주유소에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손쉽게 확보, 이를 다른 사업에 연결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른바 통합 마케팅 전략인데, 궁극적으로 SK그룹의 중국 내 사업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다.

국내 2위 업체 GS칼텍스의 중국행도 최근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SK그룹사들의 중국 석유 유통망 시장 공략에 자극을 받은 듯 중국 사업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GS칼텍스는 2월18일 중국 청도시 청도경제기술개발구 안에 자사 브랜드를 단 중국 내 주유소 1호점 기공식을 가졌다. 이 주유소는 경정비 업소인 오토오아시스와 자동 세차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을 갖춰 중국 현지 고객들에게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사업의 베이스캠프 구실을 할 현지 법인 GS칼텍스(청도)석유유한공사도 동시에 설립됐다. 이 회사는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석유 제품 판매 사업과 함께 주유소 설립과 운영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GS칼텍스의 중국 진출이 당장 급물살을 타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사 김성우 차장은 “이번 주유소 기공은 거대 중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크다.

올해 안에 주유소를 2개 정도 더 열 계획인데 아직 중국 공략을 위한 큰 그림을 구체화한 단계는 아니다. 중국이 녹록치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서서히, 그러나 치밀히 진출한다는 생각”이라고 회사 입장을 밝혔다.

SK(주)가 개발 중인 베트남 15-1 광구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석유 자본이 대주주인 S-Oil과 오일뱅크는 중국 시장 공략과 관련한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세계 5위 석유 소비국인 한국 시장 확보라는 차원에서 국내에 진출했기 때문에 중국 진출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지난해 SK에 인수된 인천정유는 SK의 대 중국 수출 전초기지로 활용될 전망이다.

아시아 에너지시장 경쟁력 확보 의미

SK와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이 중국 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어떻게 볼까.

“완전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에서는 더 이상 수익 창출이나 시장 점유율 상승이 어려운 데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아시아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 공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레드오션을 떠나 블루오션을 찾아가는 정유업계의 항해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자원개발에 초점을 맞춰 해외사업을 수 년 전부터 크게 강화해온 SK나 최근에 유전개발에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한 GS칼텍스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