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단가 인하 등 '마른 수건 짜내기'에 일부서 반발신뢰 바탕 노사 및 협력업체와 상생관계정립 우선돼야

"도요타는 전 임직원이 지속적인 위기감을 갖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다. 우리도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2004년 6월2일 월례조회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이날 도요타의 앞선 내구 품질과 하이브리드차 개발을 거론하며 위기관리 시스템과 미래차 개발, 노사관계 등 전반적인 부문에서 ‘도요타 벤치마킹론’을 펼쳤다.

현대차는 이날 조회를 계기로 임원들에게 도요타의 경영철학을 다룬 저서 `도요타 웨이'의 번역서를 배포하고 임직원 대상의 특강에서 일본의 원가절감 컨설팅 전문업체인 아이디어사의 후쿠다 히로야쓰 고문을 초청해 도요타의 원가절감에 대한 강의를 듣는 한편 현대차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서는 도요타 특집을 내는 등 그야말로 한동안 도요타 신드롬에 휩싸였다.

사실 도요타는 1980년대 이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왔으며 현대차는 가장 성공적으로 도요타를 벤치마킹한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대차는 도요타가 미국 공략 초기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던 것을 본따 80-90년대 성능대비 낮은 가격을 앞세워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도 현대차는 도요타처럼 부품업체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기 위해 작년에만 제동장치 생산업체인 카스코, 전기장치 생산업체 현대오토넷을 인수하고 현재는 국내최대 규모의 자동차부품업체인 만도 인수를 추진 중이다.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별도의 고급 브랜드를 런칭해 한 단계 더 도약한 것과 같이 현대차도 내년에 BH라는 럭셔리카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도요타의 경영 방식을 본받아야 2010년 글로벌 톱5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현대차의 도요타 벤치마킹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주로 생산과 판매전략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닮고자 노력했다면 지금은 노사관계와 원가절감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집중된 양상이다.

운은 김동진 부회장이 뗐다. 그는 1월11일 무역협회 주최 조찬강연에서 "도요타와 현대차의 가장 다른 점은 도요타는 50년간 노사분규가 없었으며 최근 4년간 노조에서 먼저 임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우리는 매년 격렬한 노사분규를 겪는다는 것"이라며 "현대 · 기아차 근로자도 이제 중산층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으니 임금동결을 선언할 때도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원칙론적인 수사로 받아들여졌지만 현대차 분위기는 이날 강연을 계기로 급속하게 바뀌었다.

보름 뒤 도요타의 원가절감 노력을 본받아 비상관리체제 돌입을 선포한 데 이어 납품단가 인하를 추진하고 급기야 지난달에는 과장급 이상 전 임직원이 임금동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오일쇼크와 엔고의 파도를 `마른수건도 다시 짜자'며 이겨낸 도요타처럼 인건비와 부품값을 아껴 원.달러 환율 하락과 유가 상승 등 악화되고 있는 영업 환경을 돌파하자는 취지다.

수익성 악화 이유, 일방적 희생 강요

하지만 이번에는 현대차의 도요타 따라하기가 성공할지 미지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대가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당장 납품단가 인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여부를 조사하고 있고 납품업체들도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현대차가 비용 상승 압박을 납품업체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내심 반발하는 분위기다.

과장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동결 선언은 또 어떤가. 노조는 "노사간 협의도 없이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임금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노사간 불신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일부 임직원도 "누가 주도한 임금동결인지 모르겠지만 난 찬성한 적이 없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으니 환율 및 유가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에도 임금동결 선언에 동참한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 금융계열사와 건설사 엠코 등의 기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같은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차는 도요타의 노사협력이라는 탐스러운 과실이 부러워 닮으려고 하지만 그 과실을 키운 토양은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 노사협력의 배경에는 종신고용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쿠다 히로시 회장이 직접 나서 "종업원 목을 자르려면 경영자가 할복하라"고 말할 정도로 종업원의 평생 직장을 보장해준다.

그러다 보니 종업원들은 `도요타는 내가 일할 힘이 있는 한 내 직장'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지금 당장보다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사측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됐다 싶으면 구조조정부터 해왔던 현대차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현대차는 올 들어서도 명예퇴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도요타는 세계 최초로 1959년부터 협력업체의 원가절감 노력으로 얻어진 이익의 일부를 다시 협력업체에 돌려주는 성과공유제를 시행해왔다.

실례로 2000년 시작된 `원가 경쟁력 구축(CCC) 21' 운동을 통해 자재 및 부품비의 30%를 절감했는데, 이중 3분의 1은 소비자에게 환원하고 3분의 1은 부품업체의 R&D에 지원했으며 나머지 3분의 1만 회사 이익으로 남겼다고 한다.

도요타는 또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협력업체에까지 피해를 줄 수 없다며 협력업체 지급대금을 3개월어치는 확보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협력업체와의 상생이 이처럼 체질화돼 있으니 어려울 때 고통을 함께 감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어떤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납품단가를 깎으려 하자 납품업체들은 "회사가 잘 나갈 때 언제 납품단가를 올려준 적은 있느냐"며 고통 분담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넘보는 도요타의 지금이 있기까지는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노사협력과 협력업체와의 상생의 역사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우리 노조가 사사건건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발전의 저해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동안 갈등의 연속이었던 노사관계가 어느 한순간에 협력관계로 돌아서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간의 추측대로 과장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동결이 임금협상을 앞두고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됐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더 큰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가 도요타를 따라잡기 위해, 아니 더 나아가 도요타를 능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 그 기본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관계와 협력업체와의 상생관계의 구축이다.


이정진 연합뉴스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