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 공약 내용, 시장성 · 타당성에 회의적 시각 많아

▲ 홍콩 디즈니랜드
‘세계 최고의 놀이공원 디즈니랜드 서울 유치’. 과연 실현될까 아니면 실현되기 어려운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한가.

“디즈니랜드가 서울 근교에 들어선다고요. 글쎄…, 힘든 일 아닐까요?” 디즈니랜드의 한국 유치에 대한 질문을 받은 관련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보인 반응이다.

디즈니랜드가 서울 근교에 들어서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년여. 지금쯤 궁금해질 때도 됐다. 과연 이들의 지적대로 디즈니랜드의 서울 유치는 물건너간 것인지, 아니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협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물음표는 더해만 가고 있다.

당초 디즈니랜드를 서울에 세우겠다는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공약이었다. 이 시장은 취임 전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국제수준의 대단위 레저시설이 미흡하다”며 디즈니랜드같은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월트디즈니사는 2003년 말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의 추천을 받아 테마파크 후보지로 인천 영종, 용유, 청라, 서울대공원 등 4곳을 놓고 시장성과 타당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 시장은 지난해 9월 청계천 복원 공사에 이어 또 다시 디즈니랜드 유치를 공언했다.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월트디즈니사와의 협상에서 꽤 진전을 이뤘다”며 “내년 초 건설 계획을 공식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

서울시 협의 중, 구체적 진척 사항 없어

하지만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진전된 내용이나 성과는 아예 없는 실정이다. 지금쯤 정식 계약에 앞서 양해각서(MOU) 정도는 나올 수 있을 법한 데도 서울시는 “계속 협의 중”이라는 답변뿐이다.

협의 당사자인 서울시청 측은 “기본 구상과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구체적인 시간표가 나와있지 않으며 협의 진행상황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며 “MOU가 체결돼야만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협의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부분까지 진전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기 곤란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때문에 디즈니랜드의 서울 유치에 대한 부정론도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엄밀히 말해 굳이 ‘들어서서는 안된다’라는 불가(不可)론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아니냐는 쪽에 가깝다.

디즈니랜드가 서울권에 들어서기 힘들다는 주장에는 경제적이고도 과학적인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자리잡은 테마파크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 대형 놀이공원만 3개. 이 중 에버랜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형 테마파크로 꼽힌다. 그런데 또 다른 테마파크가 들어선다면 서울 근교권에 대형 테마파크가 4개로 늘어난다.

이에 대해 정창무 서울대 공대 교수는 “한 구역권에 비슷한 시설이 지금도 3개나 되는데 그것도 모자라는지 묻고 싶다”며 “한국 사람들이 놀이공원에 못 가 안달이 난 것도 아닌데 굳이 테마파크 한 개를 더 늘릴 필요가 있는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 이명박 서울시장

물론 디즈니랜드가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지역과 인구 비례에 비해 테마파크 과잉공급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최근 중국 상하이시가 “디즈니랜드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당 중앙과 국무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발표를 한 것도 큰 변수로 등장했다.

당초 상하이시가 디즈니랜드를 유치한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고위 관계자가 이를 언론을 통해 확인한 것은 처음이어서 이 계획에 대한 실현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에 자리한 디즈니랜드는 도쿄와 홍콩 두 곳. 상하이까지 더하면 3개가 되고 서울까지 추가된다면 4개가 된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에 무려 4개의 디즈니랜드를 세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나온다. 또한 상하이는 홍콩에서 그리 멀지 않고 서울 또한 비행기로 1시간여 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상하이에 테마파크 건설 준비

도쿄 디즈니랜드가 개장 후 성공을 거뒀지만 홍콩 디즈니랜드는 고전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 요인이다. 때문에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00만명에 불과한 수도권 시장을 겨냥해 디즈니랜드가 들어선다는 것은 시장성을 무시한 모험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디즈니랜드가 서울을 포기하고 중국 상하이시로 테마파크 부지 선정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서울시의 디즈니랜드 유치 작업이 순탄치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소식으로까지 풀이하고 있다.

또한 디즈니랜드가 들어설 부지 선정 문제도 수월치 않다.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 얘기가 번번이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시설이 들어설 땅에 대한 보상 액수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예전에 디즈니랜드는 한때 “평당 30만원이 넘어가면 투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수도권의 웬만한 땅 한 평의 가격이 백만원대를 넘어서기 일쑤인데 이를 감당하기에 디즈니랜드건 서울시청 측이건 벅차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당초 디즈니랜드는 2010년쯤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말했지만 현재 진행 상황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원 한 개를 세우는데 최소 5~6년은 걸리는데 지금 시작해도 2010년까지 개장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다. 이를 의식한 듯 이명박 시장도 지난해 말 “유치되더라도 임기 중 조성 공사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발을 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활성화해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디즈니랜드 유치를 놓고 서울시가 밝혔던 명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서울에 디즈니랜드가 없으니까 유치 계획을 굳이 탓할 만한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경제성, 실현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지 않고 ‘안 되면 말고’식으로 덜렁 장밋빛 청사진만을 발표하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고 이 시장의 현실성 부족한 공약(空約)을 비판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