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사업확장 등이 화근…검찰 고강도 수사로 창사 후 최대 위기

국내 재계 서열 2위의 현대차그룹이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로부터 강도높은 수사를 받으면서 그룹의 성장과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수사 진행상황을 보면 혐의를 두고 있는 시점이 일정 시기에 국한돼 있지 않고 그룹의 출범부터 최근까지 전체 성장과정을 포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현대차그룹의 정통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2000년 9월 1일이었다.(현대차그룹이 공정위로부터 공식적인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것은 2001년 4월 1일이지만 현대차는 이때 독자적인 그룹 출범을 선포했다.) 그룹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만 6세도 안 되는 셈이다. 그 이전까지 현대차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룹 출범 이전의 현대차부터 살펴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과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차 전 회장이 현대차를 설립한 것은 지난 67년. 현대차는 내년에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정 명예회장이 주력사인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그룹을 육성하는 동안 정 회장은 포니 신화를 일궈냈다. `포니 정'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회사 설립 후 21년이 지난 98년 3월이었다. 그의 아들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가 정세영 회장 일가 쪽으로 분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머릿속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동차 사업은 맏아들의 죽음으로 사실상 장자 역할을 하고 있던 정몽구 회장에게 맡기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명예회장은 그 첫 단계로 현대차가 98년 10월 국제입찰에서 대우차와 삼성차를 제치고 낙찰받은 기아차의 회장에 정몽구 회장을 앉혔다. 기아차를 통해 자동차 경영을 익히라는 명예회장의 배려였다. 정 회장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아차를 멋지게 살려냈다. 그는 사촌동생인 정몽규 회장을 밀어내고 99년 3월 드디어 현대차 회장에 올랐다.

김재록과 인연, 위험한 질주

정 회장의 성공 스토리가 본격 시작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러나 정 회장이 만든 스토리 첫 부분부터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회장이 조연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결국 화근이 됐다. 98년께 기아경제연구소 이사로 기아차와 첫 인연을 맺은 김 전 회장은 이후 현대차의 M&A를 통한 확장전략과 비상장사를 통한 경영권 승계전략 등을 컨설팅하며 현대차그룹과 깊숙한 관계를 이어갔다.

정 회장에게는 사업운도 잘 따라줬다. 97년 위환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수출에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 주춤했던 현대차 경영실적은 정 회장이 취임한 99년부터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내수시장은 정체를 면치 못했지만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이 급증했다.

현대차가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 수 있었던 데는 막대한 환차익도 큰 몫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이때 축적한 자금으로 연구 개발과 품질 분야를 강화한 것이 브랜드 가치 상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98년 8조6,900억원이었던 현대차 매출액은 99년에 14조2,400억원까지 불어났다.(현대차는 이후 북미시장에서 모험적으로 실시한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 마케팅까지 성공하며 승승장구해 지난해 매출액이 27조3,800억원까지 늘었다.)

이처럼 잘 나가던 현대차가 독립적인 그룹 형태로 출범한 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2000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지속된 `왕자의 난'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3월 14일 정몽구 회장이 동생인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하는 내정 인사를 단행한 것이었다.

정몽헌 회장이 이에 반발하며 인사보류를 지시한 것을 시작으로 형제간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왕자의 난이 발생하기 직전 현대그룹은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정몽구.정몽헌 공동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형제간 다툼의 씨앗은 이런 경영구도 속에서 이미 뿌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형제간 다툼은 5월 31일 고 정 명예회장과 몽구.몽헌 회장 등 3부자 동반 퇴진 발표로 이어졌다가 몽구 회장의 반발로 현대차그룹이 계열 분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결국 2000년 9월 1일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강관, 현대캐피탈, 오토에버닷컴, 현대이에이치닷컴, 현대우주항공 등 8개사를 계열사로 하는 현대차그룹이 공식 출범하며 새 역사가 시작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때부터 김재록씨가 회장으로 있던 아더앤더슨코리아 등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동차 부품부터 완성차, 할부금융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해 나갔다. 현대차그룹이 계열사를 늘려가는 속도에 재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개 계열사로 출범한 현대차그룹은 2001년 4월 공정위로부터 대기업 집단 지정을 받을 때 이미 글로비스(옛 한국로지텍) 등을 추가로 설립해 계열사가 16개로 늘어나 있었다. 2001년 11월에 현대카드 등을 추가해 22개사로, 2002년에는 이번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본텍(옛 기아전자)과 위아(옛 기아중공업)를 포함해 위스코, 코리아정공, 엠코 등을 추가해 계열사 수가 26개까지 증가했다.

이후에도 아폴로산업, 엠시트, 이노션, 카스코, 현대오토넷 등 주요 계열사를 잇따라 인수해 현재 계열사 수를 40개까지 늘렸다. 지난 2004년 일관제철소 사업 진출을 위해 현대제철이 자산인수 방식으로 매입한 한보철강은 현대제철의 당진공장이 됐다.

계열사 인수에 편법·탈법 사용

그러나 검찰은 이처럼 계열사를 늘리는 과정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검찰은 각 계열사를 인수하는 데 편법.탈법적인 방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금 위장 투자회사에 주식을 매각했다가 헐값에 다시 사들이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 큰 부담은 그런 식으로 인수하거나 혹은 새로 설립한 계열사가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위해 편법.탈법적으로 활용됐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증시에 상장한 글로비스는 현재 최대주주인 정 사장에게 약 5,000억원의 평가차익을 안겼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꼼꼼이 재검토하는 중이다.

정 사장이 비상장 계열사에 액면가로 출자한 뒤 현대·기아차의 밀어주기에 힘입어 성장한 회사의 주식을 비싸게 팔아 그 자금으로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주식을 취득한 과정에 편법·탈법적인 요소가 확인되면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확장전략과 경영권 승계전략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짜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재계 주변에 나돌고 있다.

그룹 전체 매출액이 지난해 85조원에서 올해는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글로벌 기업 현대차가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이겨내고 성장신화 가도를 계속 질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정몽구 회장

정혁훈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moneyjung@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