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쌍둥이 적자 해소 카드… '제2플라자 합의' 시각도

▲ 부시 대통령이 4월 20일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식 도중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얘기를 건네고 있다. / AP
제2의 플라자 합의 되나?

1985년9월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7개국 재무장관들이 모여 회담을 열었다. 이들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문제,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자 하였던 것.

당시, 미국은 무역적자는 무역적자대로 증가하고 있었고, 재정적자는 재정적자대로 나날이 늘어가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취할 정책의 선택 폭은 좁았다. 왜냐하면 두 종류의 적자가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데, 국채가 원활하게 소화되려면 달러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달러가 강세를 보일수록 무역적자 폭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니 미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던 것.

결국 미 의회가 앞장서서 달러 강세를 유지하되, 무역적자는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미국의 이러한 보호주의적 정책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회담을 하게 되었고, 결국 선진 7개국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달러화의 가치를 하락하도록 하는데 합의를 하게 된다. 그 결과 달러환율은 드라마틱한 하락세를 나타내게 된다.

예컨대 1985년9월 당시, 1달러=265엔 수준이던 것이 플라자 합의 1년 반 만인 1987년 말에는 1달러=123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달러는 그 이후 1달러=80엔 수준으로까지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 뒤 달러 폭락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11년 후인 2006년4월 22일, 미국의 워싱턴에서 선진 7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의 회담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사실 그때까지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들의 회담결과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플라자 회담 이후 이제까지 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지만 그때마다 별달리 특징 없는 성명서만을 발표하였기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번에도 별 일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회담 후 발표한 성명에서 "세계 경제의 불균형 시정을 위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환율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포함시키자 국제금융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선진 7개국의 성명서에서 ’유연한 환율제도'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삽입된 것은 2003년 9월20일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G7 재무회담의 성명서에서였는데, 당시에도 선진 7개국 재무상 회담의 성명서가 국제금융시장에 파장을 안기며 달러화 환율 하락을 초래한 바가 있다. 그러니 2003년의 경험에서처럼 이번에도 달러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특히 이번 선진국 회담의 파장은 지난 2003년보다 더 강력하다. 이제는 달러 금리가 오를 만큼 올라 달러 강세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국제 유가는 연일 상승세이며,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2003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각에서는 이번 워싱턴 선진7개국 회담을 ‘제2의 플라자 합의’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번 회담의 파장으로 인하여 달러 가치의 하락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85년 당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내었던 배경이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문제였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무역적자는 일반적으로 정상수준으로 인식되는 GDP의 3% 수준을 훨씬 초과하였고, 올해에는 심지어 정상수준의 두 배가 넘는 GDP의 6%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선진 7개국 회담 성명서가 발표됐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 때와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는 미국의 주된 무역적자 대상국이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었던 데 비하여 지금은 그것이 중국, 우리나라, 대만 등 아시아 지역 국가라는 점이다. 선진 7개국의 성명서가 아시아 국가의 유연한 환율정책을 요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 4월20일에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위안화 추가절상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는 ‘원칙적’인 것이었을 뿐 위안화가 평가 절상되는 것은 결국 시기의 문제이지 방향의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선진 7개국 재무상들이 “(중국과 한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환율 유연화”를 요구하였으니 이는 대놓고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적시한 것과 다름이 아니다. 위안화는 지난해 7월, 2% 수준의 평가절상을 단행하면서 자유변동환율제도의 전단계인 복합통화바스켓 제도로 환율 시스템을 전환한 바 있다.

▲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달러화 폭락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 해상유전.

그러나 하루 변동폭이 고작 0.3%에 불과하도록 정해지면서 위안화의 환율이 실제 가치에 비하여 인위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이나 혹은 선진국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선진 7개국의 성명서 발표를 계기로 위안화의 하루 변동 폭이 조만간 1.5%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당 위안화의 평가절상 속도가 가팔라질 것은 당연지사.

원화 환율 평가절상 압력

그런데 정작,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가속도가 붙으면 그 직격탄은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가해진다. 중국과의 교역비중이 23%가 넘는 우리나라의 환율도 그만큼 평가절상의 압력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달러/원 환율의 경우, 수출업체들의 마지노선으로 간주되던 950원 선이 무너진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940원마저 무너뜨리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환율은 1997년10월 24일 기록한 929.50원 이후 최저수준으로 추락하면서 8년6개월 만에 930원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국제 외환시장에는 달러가치가 상승하여 달러/원 환율이 상승할 재료보다는 달러가치가 더 하락할 만한 뉴스들로 넘치고 있어서 문제이다. 선진 7개국 회담 결과는 의당 달러 약세 뉴스이지만 아울러 스웨덴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 중에서 달러 비중을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도 달러에는 악재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외환보유고가 중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 5위인 러시아 재무장관도 달러 보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너도나도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 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상황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달러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한다면 우리나라의 달러/원 환율도 의당 추가로 하락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원화의 평가절상 추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달러화 환율에서 ‘여기가 바닥’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수출기업들이 수출을 포기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던 950원 선이 붕괴된 지 오래이며, 940원 선도 무너졌으니 마땅한 지지선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나름대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는 있으나, 한국은행 당국자들이 밝히고 있듯 이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즉 환율의 하락속도를 완만하게 하고자 하는 일이지 환율의 흐름 자체를 상승세로 돌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환율의 하락은 대세일 수 밖에 없다.

이번 선진 7개국 회담이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될지는 아직은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특히 당시와는 달리 선진국들이 일사불란하게 자국 통화를 평가절상하도록 용인할지도 의문시된다.

하지만, 제2의 플라자 합의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실현 가능성 여부에 관계없이 달러가치는 하락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만, 원화의 평가절상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