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커진 자원 부국… 남미·러시아 등 잇따른 '자원 국유화', 거대 소비국 '발등의 불'

바야흐로 자원 전쟁이다. 남미와 러시아 등 자원 생산국들은 가스ㆍ유전 지대 등에 대한 국유화를 선언하며 미국과 유럽계 메이저 회사의 손에 넘겨줬던 자원 개발ㆍ운영권을 되찾고 있다.

자원 소비국들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앞서 1, 2차 오일 쇼크를 비롯해 지금까지는 중동 산유국만 상대하면 됐지만 이제는 남미와 러시아가 가세해 고유가를 등에 업고 목소리를 키우면서 자원을 무기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전통적인 주요 소비국은 물론 에너지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 인도까지 새로운 자원 개발, 소비 루트 다양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 핵 개발 사태, 이라크의 정정 불안, 나이지리아 다르푸르 사태 등 주요 산유국에 혼란이 이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유가에 걱정들이 쏟아지고 있다.

석유 공급량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지금 추세가 계속되다가는 자칫 1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까지 오를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거세지는 에너지 산업 국유화 바람

1일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외국 회사의 약탈은 끝났다. 볼리비아가 천연자원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유전ㆍ가스 지대를 국영화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는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지분을 장악한 56개 석유ㆍ가스전 및 정유시설에 국영에너지회사(YPFB) 직원과 군대를 보내 시설을 접수했다. 외국계 회사에게 새로운 계약에 서명하거나 떠날 것을 요구했다. 바로 다음날 광물ㆍ삼림 자원에 대한 통제권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의 이번 조치는 앞서 3월 광물자원국유화법을 시행한 베네수엘라에 이은 것으로 외신들은 남미 발(發) ‘국유화 도미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32개 유전개발사업에 대한 지분 60%를 국영석유공사(PDVSA)가 확보하도록 하고 이를 거부한 프랑스(토탈), 이탈리아(에니) 에너지 회사를 쫓아냈다. 여기에 에콰도르도 석유 로열티를 50%까지 올리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와 함께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주도하고 있는 쿠바 역시 자원 국유화를 선언할 예정이다. 게다가 대선 2차 투표를 앞둔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도 자원 산업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나라끼리 에너지 공조도 활발하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1월 1만2,000㎞ 짜리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우루과이를 잇는 가스관 건설도 추진 중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또 지난해 6월 페트로카리브(중남미 에너지 동맹)를 결성, 이 지역 빈국들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등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남미의 자원 국유화는 미국이 주도하는‘신자유의적 흐름에 대항한 좌파 정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국가의 부가 서방 다국적 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불만에 가득 찼던 국민들도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노엄 촘스키 MIT대 교수는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중남미의 지역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스스로 삶을 찾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며 “중남미가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패권국을 꿈꾸는 러시아의 기세도 무섭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유럽에 집중된 에너지 수출 선을 아시아로 바꿀 수 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국영회사 가즈프롬이 영국 최대 가스업체 센트리카를 인수하려고 하자 영국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이를 막으려 한다는 보도에 대한 협박이었다. 그는 이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벌어 들인 돈을 가지고 러시아가 국제채권국 모임 ‘파리클럽’에 진 빚 290억 달러도 올해 안에 갚아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는 유럽이 소비하는 가스의 25%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겨울 가즈프롬의 가스 공급 중단 조치로 큰 고생을 해야 했던 유럽에게는 폭탄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남미와 러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은 1970년대 오일 쇼크 때 자원의 영향력이 확인된 ‘자원의 무기화’가능성을 또 다시 보여주는 셈이다.

바빠진 자원 소비국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자원 소비국들은 공급 초과에서 수요 초과로 에너지 수급 구조가 뒤바뀌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에너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10%를 생산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구애는 눈에 띈다.

▲ 4월 28일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순방외교를 펼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케냐 육군 의장대를 사열 하고 있다. / AFP

지난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은 나이지리아를 찾아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회사의 유전 지분 45%를 27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어 모로코, 케냐에서 석유탐사권을 따냈다.

앞서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새해 벽두 아프리카를 찾아 나이지리아ㆍ가봉ㆍ수단 등 주요 석유 수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지 석달 만에 이뤄진 방문이었다. 후 주석은 아프리카 방문 직전 사우디아라비아를 들러 52억 달러(5조원) 어치 유전 개발 계약을 맺었다.

일부에서는 수단의 수출 원유 중 절반을 수입하는 중국이 다르푸르 인종 학살에 대해 눈감으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 반대하는 탓에 아프리카 내전을 부추기고 비민주적 정권을 강화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에너지 사냥에 열심인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후 주석은 올 초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베이징에서 만나 볼리비아 내 가스전 개발에 상호 협력하기로 하는 등 2004년 이후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미 국가들을 잇따라 방문하거나 중국으로 초청, 자원 및 경제 협정을 맺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중남미의 반미 바람을 이용,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정치적 속셈도 깔려 있다.

중국의 움직임에 긴장한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 미국은 새로운 유전개발과 에탄올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3일 공화당 내부와 석유 개발업자 등을 중심으로 알래스카 주 야생보호구역(ANWR) 안 유전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ANWR 유전은 103억 배럴 정도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개발하면 에너지 대외 의존도도 크게 낮추고 정부의 수입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 계획을 밀어붙인 적이 있으며 상원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사탕수수 나무에서 뽑아 낸 에탄올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연초 국정연설에서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비 연구비를 지난해보다 22% 늘리겠다”던 그는 “6년 안에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탄올 연료를 상용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 가정용 전기로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인 전기 자동차 개발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부시 대통령은 비싼 기름값에 대비하기 위해 자동차 연비 기준 강화,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석유회사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 지시도 내렸다.

자원 확보가 간절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이란의 아자데간 유전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총 20억 달러(약 2조원)가 투입되는 아자데간 유전 개발사업은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중 최대 규모로 일본의 ‘국제석유개발’이 비용의 75%를 부담하고 이란 국영 석유회사가 25%를 투자하도록 돼 있다.

내년부터 생산에 착수해 2012년까지 하루 원유 15만∼26만 배럴 원유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맹방 미국은 “일본이 투자한 돈을 이란이 핵 개발에 쓸 것”이라며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아자데간 유전 개발을 밀어붙일 태세다.

유럽연합(EU)은 자국 내 자원 관련 기업들에 대한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 시도를 막으려는 회원국들의 움직임에 대해 제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협박’등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관련 규정까지 어겨 가면서 에너지 관련 기업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