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사, 코스닥 상장사 지분 대량 매수로 시장 편법 진입… 개미 피해 우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온라인게임 개발업계에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지녔던 코스닥 상장기업 N사는 이제 게임 개발업체가 아니다.

몇 달 전 N사는 난데없이 주력 업종을 게임 개발에서 생명공학 사업으로 변경했고, 또 얼마 전에는 회사 간판마저 다른 이름으로 바꿔 내걸었다. 이에 따라 N사는 더 이상 시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 돼버렸다.

한때 멀쩡하게 굴러가던 게임 개발업체가 불과 수 개월 만에 ‘정체’를 싹 바꾼 데 이어 아예 ‘호적 정리’까지 해버린 까닭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코스닥 시장에서 유행처럼 번진 이른바 ‘우회상장’과 관련된 제도적 허점과 이를 악용한 일부 기업들의 한탕주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 먼저 올들어 N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희한한 일들을 살펴 보자.

지난해 10월 말 N사의 최대주주인 코스닥 상장기업 A사는 자신의 보유지분 45%를 B사와 투자회사 등에 매각했다. A사의 지분 매각은 최근 몇 년간 영업 손실을 낸 N사가 지분법 평가에 따라 A사의 손익 구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정체' 바꿔 상장 효과 승계

전략적 파트너들과 공조해 A사로부터 N사의 지분 45% 중 36%를 사들인 중소 제조업체 B사는 그동안 코스닥 상장을 희망해 왔으나 상장 기준에 미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코스닥 상장기업인 N사의 지분을 대거 인수함으로써 우회상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B사는 지분을 인수하자마자 당초 목적인 우회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우선 N사와 영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뒤 자사의 생명공학 사업부를 N사에 넘겼다. 이에 따라 N사는 고유 사업인 게임 개발과 아울러 생명공학 사업을 함께 펼치는 회사가 됐다.

B사가 다음으로 취한 조치는 사업부 분할. 즉 N사에는 생명공학 사업부만 남기고 게임 사업부를 분할해 새로운 법인을 세웠다. 이로써 B사는 자신이 대주주인 코스닥 상장기업 N사를 활용한 우회상장을 통해 그토록 꿈꿔왔던 코스닥 시장 진입 목적을 수월하게 달성한 셈이 됐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N사의 주인은 또 한 번 바뀌게 된다. B사가 지난 4월 내부 자금 사정 악화로 인해 자신의 지분 36% 가운데 24%를 다른 C사에 매각한 것이다. C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바이오 기업이지만 2005년 매출액이 3억원에 불과한 소기업이다.

최대주주가 C사로 변경된 N사는 상장 폐지를 부를 수도 있는 자본잠식 상태를 탈피하기 위해 기존 주식 수를 1/11로 줄이는 감자 결정을 내렸다. 동시에 C사는 N사와 합병 비율 1:20(C사의 주식 1주를 N사의 주식 20주와 동등하게 평가)으로 M&A를 결정했다.

그 결과 C사는 N사의 상장 효과를 그대로 승계해 순식간에 코스닥 상장기업이 됐다.

몇 달간 N사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첫째로는 최대주주가 두 차례 변경됐고, 둘째로는 회사의 주력 업종이 전혀 다른 사업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는 회사 이름이 달라졌다. 즉 N사라는 회사가 시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N사의 주식을 산 개인 투자자들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N사를 통한 B사와 C사의 우회상장 과정에서 개인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N사의 최대주주가 B사로 변경된 뒤 주가가 단기간 급등락하면서 손해를 본 개미들이 적지 않다. N사 주가는 B사에 지분 매각 직후 3~4일 동안 2,000원대에서 2,500원대로 상승했다가 곧바로 1,600원대로 추락했다.

또한 C사가 N사의 최대주주가 된 이후에는 감자 결정에 따라 보유주식 평가액이 크게 줄어드는 손해까지 입었다.

이에 대해 N사를 둘러싼 우회상장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대출 받은 자금으로 N사의 지분을 인수한 B사의 우회상장은 대주주가 주가 차익을 노리고 치고 빠지기를 시도한 전형적인 머니 게임의 성격이 짙다”며 “사업 분할, 감자, 합병 등을 통해 이뤄지는 우회상장 과정에서 대주주들은 이익을 보지만 내막을 잘 모르고 소문에 일희일비하는 일반 소액주주들은 그냥 앉아서 막심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N사의 사례와 같은 변칙적인 우회상장이 현행 제도 아래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벤처 활성화 대책 등을 내놓으면서 우회상장 요건을 상당 부분 완화한 바 있다. 게다가 코스닥 시장의 활황세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시장에 진입하고 말겠다는 장외 기업들의 욕망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을 상대로 우회상장을 한 사례는 지난해에만 100여 건에 달한다는 추정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테마주’로 뜨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바이오, 로봇 등 3개 업종의 업체들이 우회상장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특히 배용준, 이병헌 등 연예계 톱스타들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잇따른 코스닥 우회상장은 개인들 사이에 ‘묻지마 투자’열풍을 불러 왔다.

우회상장 테마주 투자는 위험

하지만 우회상장 테마주에 대한 부화뇌동 투자는 자칫 상투를 잡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박동명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우회상장이 처음 활발했던 1999~2001년에 우회상장을 했던 기업들을 살펴보면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한 경우는 불과 10%도 되지 못했다”며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들은 합병 등 공시를 보고 뛰어들기 마련인데 이 때는 이미 단기 고점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충고했다.

이밖에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부실 장외 기업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대거 증시에 들어오고, 또한 이런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이처럼 우회상장과 관련한 문제점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증권선물거래소 등 감독 기관들도 뒤늦게 실태 점검에 나서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보완책으로 우회상장 기업들의 공시 기준을 강화하고 주식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해 함량 미달 기업들이 우회상장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벌이고 있는 실태 점검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제도를 정비해 문제점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 후 개발' 방식… 편법악용이 문제

우회상장(Backdoor Listing)은 장외 기업이 증시에 상장된 장내 기업과 합병을 통해 상장 심사나 공모주 청약 등의 상장 절차를 밟지 않고 장내로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 표기의 뜻이 '뒷문 상장'인 까닭도 정식 절차를 밟지 않는 상장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우회상장을 하게 되면 상장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자금 여유는 있으나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대주주 지분이 적거나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상장 기업을 상대로 '인수 후 개발(A&D)'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대량 매입해 이뤄진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우회상장은 곧 인수 후 개발과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우회상장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주식 맞교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영업 양수도, 합병 등 다양하다.

우회상장은 기업 인수합병(M&A)의 한 방법으로 정착했으나 최근에는 일부 함량 미달 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편법적 수단으로 악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