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시청 도중 리모컨 이용해 주문·경제하는 신종 상거래

직장인 K씨는 퇴근 후 쇼핑을 할 일이 있으면 TV를 켜고 리모컨을 집어든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화면 한 켠에 쇼핑 메뉴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원하는 상품의 번호를 리모콘으로 입력한다. 잠시 후 나타나는 결제화면에서 암호화된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 이름 등을 리모컨으로 입력하면 쇼핑이 끝난다.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모든 쇼핑이 해결되므로 더 이상 홈쇼핑 채널을 보고 주문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

조만간 본격화될 T-커머스 풍경이다. T커머스는 텔레비전(Television)과 상거래(Commerce)의 합성어다. TV시청 도중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리모컨을 이용해 바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신종 상거래를 말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올해 국내 T커머스 사용 인구가 91만명, 내년 217만명, 2010년에 728만명 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덩달아 시장 규모도 올해 2,269억원에서 2010년 1조6,891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차세대 쇼핑 산업으로 부상

전망이 이렇다보니 홈쇼핑업체들은 T커머스를 차세대 쇼핑산업으로 꼽고 있다. 이미 케이블TV의 홈쇼핑 채널을 운영하는 GS홈쇼핑과 CJ홈쇼핑은 지난해 12월부터, 현대홈쇼핑은 올해 1월부터 T-커머스를 시작했다.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 하나로텔레콤, 아이디지털, KTH, TV벼룩시장, 화성산업 등 7개사도 올해 안에 T-커머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 이들은 지역 케이블TV 전송사업자(SO)들이 제공하는 셋톱박스를 이용해 서비스를 하고 있다. 문제는 SO들이 계열 관계에 있는 홈쇼핑 업체의 T-커머스 서비스만 지원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CJ케이블넷 가입자는 CJ홈쇼핑의 T-커머스만 이용할 수 있으며 GS홈쇼핑의 T-커머스인 ‘GST숍’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다. 업체들의 이해관계 외에 기술 방식이 약간씩 다른 것도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독일 월드컵 대회 기간 중이나 이후에는 이 같은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지난달 9일 방송위원회에서 KBS2,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에서도 디지털 데이터 방송을 이용해 T-커머스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KBS1과 EBS는 그동안 공익성 차원에서 T-커머스가 제한됐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서비스를 개시하면 미래의 모습으로 예시한 풍경처럼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리모컨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T-커머스는 이르면 월드컵 대회기간 중이나 이후에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대신 방송위는 프로그램 제목이나 출연자 이름 등 프로그램을 이용한 시청자의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는 금지했다. 프로그램 자체가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연애시대’ 드라마를 방송하며 ‘연애시대 숍’처럼 드라마 제목과 연계된 연동형 쇼핑서비스는 할 수 없다. 대신 쇼핑상품을 선전하는 문자 데이터방송을 화면크기의 4분의 1 이하로 줄이고 이를 시청자가 선택해 2차 화면으로 넘어가서 쇼핑을 하는 것은 허용된다.

방송위의 지상파 T-커머스 허용에 맞춰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TV도 때맞춰 등장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처음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양방향 데이터 방송용 DLP 프로젝션TV ‘SVP-56K3HDB’를 지난달 말에 출시했다. 이 제품에 채택된 데이터 방송 표준인 ACAP은 KBS, MBC, SBS, EBS 등에서 시험방송 중이며 이달 중 각 방송사별로 본 방송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 제품의 핵심은 리모컨으로 각종 데이터 방송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드라마, 뉴스 등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날씨, 증권, 오락, T-커머스 등 정보를 주고 받는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지난 줄거리, 배우들이 입고 있는 의상 정보, 스포츠 선수들의 프로필 등을 리모컨 조작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들은 화면 한 켠에 문자로 표시되며 자세한 정보를 원할 경우 아이콘을 리모컨으로 선택하면 2차 화면으로 넘어간다. 가격은 269만원이다.

데이터 방송용 셋톱박스 설치해야

그렇지만 꼭 이 제품을 구매해야한 지상파 방송의 T-커머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TV 이용자들은 조만간 삼성전자에서 내놓을 예정인 ACAP을 지원하는 데이터 방송용 셋톱박스를 구입해서 TV에 연결하면 지상파 방송의 T-커머스 등 각종 데이터 방송을 즐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 셋톱 박스를 내놓을 예정이며 LG전자 등 경쟁사들도 데이터 방송용 TV를 개발 중이다.

지상파 방송의 T-커머스가 가능해지면서 바빠진 것은 홈쇼핑 업체들이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홈쇼핑 업체들이 T-커머스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편리함과 강력한 쇼핑 유도 기능때문이다. T-커머스는 시청자들이 상품 목록을 만들어 보관할 수 있다. 그만큼 당장 구매하지 않더라도 목록을 보게 되면 나중에 다시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당연히 홈쇼핑 업체들의 매출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투자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모든 시청자들에게 디지털TV나 셋톱 박스가 보급돼야 하며, 케이블망 또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만큼 장기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는 일부 홈쇼핑 채널이 서울 양천구, 경기 분당과 안양, 대구 달서구, 부산 해운대, 인천 부평 등지에 T-커머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T-커머스의 성공 여부에 따라 홈쇼핑업계의 구도가 다시 짜여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경쟁이 치열하고 초기 투자비와 마케팅비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도입 초기에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T-커머스의 성공진입 여부가 향후 업계구도를 재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도 ‘TV홈쇼핑의 신성장동력 T-커머스’라는 보고서를 통해 “T-커머스가 제품 수의 제한, 방송시간 제약, 일방적인 정보전달 등 TV홈쇼핑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며 “TV홈쇼핑이 하루 30여 개 상품만 판매할 수 있지만 T-커머스는 무한정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