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건설기계·선박·의료기기 분야서 두드러진 성장세

돈을 빌려 주는 금융 산업과 마찬가지로 각종 고가 장비를 빌려 주는 리스 산업도 오늘날 시장경제에서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국내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리스 산업의 기여도는 매우 컸다.

하지만 리스 산업은 외형 성장 위주의 경영에 집착하다가 외환위기 때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리스 이용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면서 돈을 떼이는가 하면 저리로 끌어들인 외화 차입금이 환율 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감당하기 힘든 수렁에 빠졌던 것.

이로 인해 리스 업계가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기업들의 신규 투자도 사실상 중단되면서 리스 산업의 비중 역시 급격하게 축소됐다. 97년 국내 전체 설비 투자액 가운데 22%를 차지했던 리스 실적은 이듬해 8%로 추락한 데 이어 99년과 2000년에는 불과 1%대로 내려가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후 리스 산업은 서서히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업계에 몰아쳤던 구조조정이 끝나고 내실 위주의 경영이 자리잡은 데다 기업들의 신규 투자 활동이 되살아난 덕분이다.

실행액 추이는 리스 산업의 회복세를 잘 나타내는 지표다. 97년까지 10조원을 상회하다가 99년 1조원대로 추락해 3년 연속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실행액은 2002년 2조원대를 회복한 뒤 대략 해마다 1조원씩을 더하고 있다.

2005년 기준 전체 실행액 규모는 5조5,690억원. 외환위기 이전 호황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꾸준한 성장세라면 멀지 않아 옛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하고 있다.

한국여신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근래 리스 실적이 두드러지게 높아진 물건은 건설기계류, 선박, 의료기기 등이다.

먼저 건설기계류는 2002년 1,000억원 대에서 2005년 3,000억원 대로 올라섰고, 선박은 같은 기간 1,700억원 대에서 4,800억원 대로 성장했다. 의료기기 역시 2,400억원 대에서 4,100억원 대로 증가했다.

연합캐피탈의 문석호 과장은 “건설기계로는 대형 크레인, 타워 크레인 등이 주로 리스되고 의료기기로는 CT, MRI, 고급 X-레이 장비 등을 많이 찾는다”며 “특히 대학병원을 비롯해 웬만한 병원들은 요즘 대부분 리스로 장비를 마련하고 있어 의료기기 리스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컴퓨터 리스 실적은 2002년 1,800억원 대에서 2004년 8,100억원 대로 급신장했다가 지난해 4,700억원 대로 반토막 났다.

이에 대해 대우캐피탈 김효성 차장은 “2000년대 초 급팽창한 PC방 산업이 컴퓨터 리스를 주도했는데 최근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게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리스 산업의 지도 역시 경제의 흐름과 산업의 유행에 따라 그려지는 셈이다. 선박 리스가 최근 급성장한 것도 중국 경제 발전 등에 따른 해상 물동량 증가로 선박 수요가 늘어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리스 시장을 주도하는 물건은 자동차다.

2005년 기준 리스 실적은 2조9,700여 억원에 달해 전체 실행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95년의 경우 자동차 리스가 전체 실행액의 10% 남짓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쏠림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리스는 성장세도 가파르다. 2005년 실적은 전년 대비 거의 100% 신장했을 정도다.

이처럼 자동차 리스가 전체 시장을 좌우할 만큼 커진 것은 최근 일반 법인은 물론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리스 이용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자동차 리스 상품은 리스 이용료를 비용 처리할 수 있어 절세 효과가 큰 데다, 취득, 등록, 보험 등 귀찮은 유지ㆍ관리 업무까지 대행해 주는 등 장점 덕분에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현재 자동차 리스 시장에는 거의 대다수 리스사들이 뛰어들어 치열한 영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리스에 지나치게 편중된 국내 리스 산업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여신금융협회 김인성 팀장은 “자동차 리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은 국내 리스 산업의 수익 모델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리스 상품을 다양화하고 수익원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 향후로도 리스 산업의 건전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리스산업 약사

국내 리스 산업의 싹이 처음 튼 것은 1972년 한국산업리스(현 산은캐피탈)가 설립되면서부터다.

외자 도입 창구를 다변화하고 국내 기계 산업 및 중소기업 금융 지원 등을 위한 금융기법으로 도입된 리스 산업은 많은 기업들에게 설비 조달의 편의를 제공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70년대 리스 업계의 실적은 연 평균 200%가 넘을 만큼 수직 상승했다.

80년대는 리스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였다. 정부가 리스사들에 대해 자금 조달 수단 규제를 완화하고 종합금융사들도 리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빠르게 외형 확대가 이뤄진 것.

리스 산업의 최대 황금기는 90년대. 리스 산업의 정점이었던 95년 국내 전체 리스 실행액(계약이 실제 리스로 이어진 액수)은 15조원에 육박했다. 그해 국내 전체 설비 투자액에서 리스가 차지한 비중은 25%를 웃돌았다.

즉 한 해 동안 새로 설치된 설비 4개 중 1개는 리스로 마련했을 만큼 리스의 국가 경제 기여도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리스 시장은 과거 수요 초과 시장에서 공급 초과 시장으로 전환됐고 리스사들의 수익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몰아 닥친 외환위기는 리스 산업에 크나큰 충격을 가했다. 상당수 리스사들은 금융 경색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이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98~99년에는 2년 연속 60~70% 마이너스 성장하는 퇴보기를 겪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시설대여업법이 여신전문금융업법에 통합되면서 리스 시장 진입 요건이 완화돼 조금씩 시장 규모와 경쟁력을 복원해 나가고 있는 추세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