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전화, 집전화에 선전포고 - LG텔레콤·하나로텔레콤, 요금 파격할인으로 KT유선전화 공략

#1. TV에선 난민들이 “집단 밀항을 시도했다”는 뉴스가 긴박하게 흘러나온다. 바다 위에서 난민들과 해양경찰대가 대치하고,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대변인은 “본국으로 소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항해를 계속 하는데···.

#2. “알뜰한 김선아, K와 완전 결별”. 신문지상에 톱스타 김선아의 스캔들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된다. 새로운 상대로 밝혀진 H에 대해 그녀는 “따져보면 볼수록 알뜰한 H에 반했다”고 고백, 기자회견장은 술렁인다.

LG텔레콤이 최근 선보인 ‘기분Zone 서비스’와 하나로텔레콤의 ‘하나포스 보이스 팩’ 광고의 줄거리다.

이들 광고에서 공교롭게도 밀항을 시도한 #1의 난민과 #2의 실연 당한 K는 동일 주인공(?)으로 추정된다. 집 전화, ‘KT의 유선전화’를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KT 유선전화의 ‘수난시대’라 할 만하다.

KT는 유선전화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절대 강자이지만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유선전화 시장 자체가 내리막길인 데다, KT 유선전화 가입자를 노린 통신업체들의 협공도 만만찮다.

무선전화 요금, 집전화 수준으로 인하

LG텔레콤의 ‘기분존(Zone)’ 서비스는 요즘 KT를 ‘기분 나쁘게’ 하는 대표적인 서비스 상품이다. 우선 요금 할인이 파격적이다. 기분존은 무선전화 요금을 유선전화(집 전화) 수준으로 대폭 할인했다. 무선전화가 영역을 넘어 유선전화 시장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기분존 서비스는 블루투스(Bluetooth) 기능을 탑재한 플러그 형태의 ‘기분존 알리미’를 집 또는 사무실 등에 설치하면, 반경 30m안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기존 유선전화 수준의 요금(3분 39원)이 적용되도록 한 서비스다.

LG텔레콤은 4월 25일 이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더 이상 집에 유선전화가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KT의 유선전화를 정면 공격하고 나섰다.

LG텔레콤 마케팅실 윤준원 상무는 “기분존은 유선전화의 모든 장점을 휴대폰이 흡수하도록 함으로써 유선전화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광고의 내용처럼, 집 전화의 ‘가출’과 ‘밀항’(?)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일단 ‘기분존’ 서비스는 출발이 좋다. LG텔레콤의 ‘기분존’은 출시 불과 3주 만에 1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할 만큼 승승장구하고 있다. 연말까지 13만 명의 가입자 확보를 목표로 할 만큼 기세등등하다.

‘기분존’ 서비스의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삼성전자도 이례적으로 기분존을 거들고 나섰다.

수요층이 두터운 SK텔레콤, KT텔레콤에 단말기를 우선 공급하느라 늘 LG텔레콤 단말기 공급에는 뒷전이던 삼성전자가 ‘기분존(Zone)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용 단말기를 서비스 출시 꼭 한 달 만에 ‘서둘러’ 공급하며 LG텔레콤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는 계산이다.

KT는 그간 시장의 절대적 지배자답게 다른 회사들의 공격을 애써 무시해왔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5월 22일 LG텔레콤의 ‘기분존’ 서비스를 통신위원회에 신고했다. “기분존이 사실을 왜곡하고 이용자 이익을 저해하고 있다”며 시정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만일 유선전화 가입자가 이를 해지하고 기분존 서비스에 가입한 경우, 기분존 가입자는 휴대폰을 쓰면서 유선 전화 수준의 요금을 내게 돼서 경제적이지만, 통화 상대방은 집 전화로 걸지 못하고 요금이 비싼 LG텔레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야 한다.

전용 단말기(삼성전자 SPH-V9850, LG전자 LG-LF1200, 팬택앤큐리텔 PT-L2200)와 ‘알리미’(2만9,800원)을 구입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LG텔레콤은 이에 대해 “KT의 논리 비약”이라며 발끈했다.

LG텔레콤은 “국민의 통신요금 부담 가중이라는 문구로 고객의 제대로 된 알 권리를 왜곡시키는 것”이라며 “KT의 논리는 국민 모두가 받는 전화는 유선전화를 이용하고 거는 전화는 이동전화로만 하던 상태에서, 유선전화를 해지하고 기분존 단말기를 교체한다는 극히 예외적 상황을 일반화한 극단적 논리”라고 반박했다.

사업자 간 접속료도 KT 자극

소비자와는 상관없지만, 사업자간 ‘접속료’도 KT를 자극했다. 다른 통신사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 때 전화를 건 이용자측 사업자가 받는 측 업체에 접속료를 물게 되는데, 이는 통신사마다 상이하다.

KT는 분당 18원, SK텔레콤은 31원, KTF는 45원, LG텔레콤은 55원을 받는다. 기분존 가입자가 늘수록 LG텔레콤의 접속료 수입도 늘게 된다. LG텔레콤의 (소비자에 대한) 요금 할인으로 “앞으로는 밑지지만, 뒤로는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KT 관계자는 “SK텔레콤이었으면 그런 식으로 요금 깎아주는 장사를 할 수 있었겠냐”며 “LG텔레콤이 후발 사업자로 보호(접속료 유리 등) 받는 지위를 교묘하게 악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통신위측에서는 7월 중 LG텔레콤 기분존 서비스의 위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KT 유선전화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무선전화뿐이 아니다. 유선 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은 초고속 인터넷과 시내전화를 한데 묶은 ‘번들상품’으로 KT가 장악하고 있는 시내 유선전화 시장의 적극적 공략에 나섰다.

‘하나포스 보이스 팩’ 요금제는 초고속 인터넷과 전화를 함께 쓰는 고객에게 월 2만9,900(일반 이용자용)원으로 초고속 인터넷의 무제한 이용은 물론 하나로텔레콤 전화 가입자간 시내전화 매일 60분, 이동전화로의 통화를 매월 60분간 무료로 제공한다.

이 상품은 예전 쓰던 집 전화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며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번호이동성 제도’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유선전화 가입자는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1만 명 이상이 증가하고 있다. 5월에는 1만 9,000명이 증가했다. 현재 7%인 전화 시장 점유율을 내년까지 10%대로 끌어올린다는 게 하나로텔레콤의 목표다.

이처럼 경쟁사들이 새로운 결합 상품과 저렴한 요금제를 무기로 KT를 자극하면서 KT의 고민은 커져 간다. 만일 KT가 유선전화와 인터넷 메가패스 서비스를 묶어 가격할인 상품을 내놓는다면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이지만,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는 규제에 묶여 있어 이 같은 대응이 쉽지 않다.

KT 다양한 컨버전스 상품으로 이탈 방지

이에 따라 KT는 다양한 컨버전스(융합)형 상품으로 유선전화 가입자 이탈을 방지한다는 전략이다.

KT의 안(Ann) 전화기는 단문문자서비스(SMS) 등 휴대폰의 기능성을 유선전화 단말기 안에서 구현한 상품으로, 일반 집 전화기를 가져오면 안 전화기로 바꿔주는 보상 판매제도를 실시하며 안 전화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 전화와 컴퓨터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유선전화 ‘비즈폰’도 12일 출시했다. 비즈폰에서는 컴퓨터프로그램에 전화번호를 등록해 놓으면 마우스를 클릭하여 유선전화를 걸 수 있다. 최대 128명과의 동시에 통화하는 그룹통화도 가능하다.

이 같은 ‘집전화 영역을 넘보는 휴대 전화’ vs ‘휴대 전화의 기능을 구현한 집 전화’ vs ‘컴퓨터와 결합한 유선전화’ 등 유ㆍ무선ㆍ인터넷 등이 서로 엮이며 벌이는 경쟁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장재현 연구원은 “유선 시장은 현재의 수요 감소 추세를 둔화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고, 무선 시장은 지금은 ‘잘 나가지만’ 향후 성장 정체에 대비해 새로운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며 “차세대 시장의 선점 차원에서도 서로간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ㆍ결합 상품의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