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값 내리기모임 시민연대회원 2만명 넘어 샅샅이 감시… "반발하면 단지 문제점 등 폭로"

▲ '아파트값 내리기모임 시민연대'
왼쪽부터 조우영·이교양·황현창 씨
“드뎌 산본 OO아파트 가격담합 한 건 잡았습니다. 부녀회원의 이기적인 행위를 시청 홈페이지 ‘열린광장’에도 올렸죠. 회원님들도 주위 담합행위 목격하시면 해당 시 홈페이지에다 대문짝만하게 자랑해주세요.” (ID 감자바우)

최근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아파트값 내리기모임 서민연대’(cafe.daum.net/downaptㆍ 이하 아내모)가 지난 3일 홈페이지를 통해 ‘아파트 부녀회 아파트값 담합 행위’에 대한 고발 신고 게시판을 개설한 이래 벌써 100여 건이 넘는 신고 의견이 올라왔다. 경기도 광명ㆍ구리ㆍ용인, 서울 사당ㆍ상도동ㆍ동부이촌동 등 전국 각지에서 신고가 속속 접수된다.

담합 행위를 한 아파트가 적발되면, 해당 아파트에 대한 문제점 폭로도 빗발친다. “언덕에 위치해 차가 없으면 살기 힘들어요”, “쓰레기 소각장이 가까워 냄새나고 공기도 탁해요” 등등.

“그래도 담합이 계속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실 공사 내역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엄중 경고’도 올라온다.

이들 담합 행위를 한 아파트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다음달 선보일 신문 광고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부당행위 대대적 신문광고, 거리 캠페인도 예정

연일 ‘고공행진’하는 아파트 가격에 비해 ‘기는’ 부동산 정책으로 뒷북치는 정부에 화난 네티즌들이 스스로 치솟는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아내모’는 월드컵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아파트값 거품 빼기를 위한 대대적인 신문 광고와 거리 캠페인 등 장외 투쟁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인간다운 삶의 필수 조건인 주택을 ‘투기’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이러한 사람들과 온라인 게시판에서 논쟁하다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게 됐죠.” 평범한 직장인 황현창(33) 씨가 아내모를 발족시킨 배경은 간단하다. 그러나 인터넷에 소문이 나 벌써 그 힘은 대단하다.

2002년 4월 개설한 이래 회원수만 2만5,000여 명에 이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부 조우영(31) 씨도 “2001년 부동산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무산된 뒤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찾다 우연히 가입했다”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투기꾼들 때문에 무능력한 ‘못난이’가 되는 현실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집값 현실화를 외치는 아내모 회원들 중에는 ‘내 집’을 갖고 있는 유주택자들도 상당수다. 지난해 서울 근교에 20평대 아파트를 장만한 이교양(38) 씨는 아파트를 사고 난 뒤에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핵심 멤버가 됐다.

이 씨는 “집을 마련했지만, 결국 주거비에 너무 많이 투자하다 보니 은행에 저당 잡힌 인생이 됐다. 집값이 현실화돼야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지지 않겠냐”고 주택 투기 광풍을 질타했다.

아내모에는 학생, 주부를 비롯해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 건설업계 종사자, 변호사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있다. 매일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출석 도장을 찍는 회원들만 5,000명을 넘어설 정도.

이 같은 시민들의 순수한 단합으로 “부동산 관계자, 학계 및 경제 전문 언론인 등이 주목하는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황 대표는 밝힌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도 부동산 관련 공청회의 참석을 요청해오고 있을 정도다.

“돈 안 되는 일 한다.”,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가족과 동네 이웃들에게 눈총을 받기 일쑤지만, 아내모 회원들은 꿋꿋하다.

12일에는 “담합 신고와 관련 부녀회로부터 위협이나 협박 받는 이들은 신고해달라”는 공지까지 올리며 의연하게 맞서고 있다. 운영진의 경우 보통 새벽 1~3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정보를 교환할 만큼 ‘사서 고생하는’ 이들은 조금씩이라도 아내모의 주장이 부동산 정책에 반영돼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보람이다.

온라인 시위를 통해 아내모가 줄곧 주장해온 ‘등기부등본에 실거래가 명시’는 곧 현실이 될 전망이다. 요즘 이들은 분양원가 공개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분양 원가를 공개해야 아파트값 거품이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주택공사나 토지개발공사 등 정부기관이 먼저 나서서 공개해야 민간 업계도 뒤따라갈 것입니다.”

"아파트 값 현실화는 삶의 질과 직결"

황 대표는 “여당이 지방선거에 참패한 이유도 부동산 정책 실패와 관련 깊다”면서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원성에 귀를 기울여 분양원가 공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 씨도 분양 원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주택공사가 나서서 집장사를 하는 게 문제예요. 판교만 해도 그렇죠.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제가 아무리 계산해도 평당 300만원이 넘어가기 어려운데 주공이 서민주택 분양가로 1,100만원을 제시하고 나서니 민형 아파트 값도 폭등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주공이 앞장서 민간업자들이 폭리를 취할 기반을 만들어준 꼴입니다”고 분개했다.

요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도 알고 보면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초래한 결과라는 게 아내모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주택 마련 비용에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도시 근로자들이 아무리 벌어도 먹고 살기에도 빠듯합니다. 대부분 맞벌이를 해도 모자란 형편인데 어떻게 둘째, 셋째를 낳아 아내에게 육아에 전념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내모는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값 내리기 운동’은 집을 가진 사람이든, 집이 없는 사람이든 모두가 동참해야 할 ‘후손을 위한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시민단체들과 연계한 오프라인 활동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흔히 무주택자들의 모임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강남권의 고가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자기 재산이 줄어들 수 있는 데도 이러한 운동을 하는 것은 바로 우리 후손들과 나라 경제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어서 아내모가 없어지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