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 시장 환경에 맞춘 스피드 경영으로 비약적 성장 이룩석유제품 · LPG 운반선 설계 · 건조분야서 세계적 경쟁력 보유

제3호 태풍 에위니아가 호남지방에 상륙해 영남집방에 큰 피해를 주던 지난 10일 경남 진해시 원포동 STX조선.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이날 조선소는 일시적으로 작업을 중단하고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이 때문인지 30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조선소는 스산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건조 중인 선박의 위용은 감춰지지 않았다. 높이가 7~8층 건물에 해당하고 길이는 200m나 되는 거대한 배는 아무리 세찬 태풍이라도 튕겨낼 듯한 위풍당당함을 뽐내고 있었다.

STX조선은 적재중량 4만~8만 톤급 중형 선박 건조에 특화된 설비와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석유제품운반선, 컨테이너선 및 LPG선의 설계, 건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출범 5년만에 400% 성장 기록

STX조선의 모태는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 전용선과 석유시추 보조선을 건조한 기록을 가진 대동조선이다. 하지만 경영 부진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1년 STX그룹에 인수되면서 재탄생의 계기를 맞았다.

STX조선은 지난 5년 동안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왔다. 2001년 연간 건조능력 14척, 수주금액 3억 달러에 머물렀던 외형이 올해는 건조능력 47척, 수주금액 26억 달러를 바라볼 정도로 급신장했다.

매출 규모도 2001년 4,000억원 선에서 2005년에는 1조원 대를 돌파했고, 올해는 1조 6,000억원 대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불과 5년 만에 400% 성장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물론 STX조선의 도약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 조선 경기가 꾸준한 활황세를 타면서 신규 선박 발주 물량이 급증한 덕이 크다. 그룹 임원들도 “지금 생각해도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사실 회사 인수 후 일정 기간은 고전할 각오를 했는데 때마침 경기 사이클이 호황에 접어들어 순풍을 탈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STX그룹에 편입된 후 회사 체질이 크게 강화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으로 평가된다. 진두지휘는 역시 강덕수 회장의 몫이었다. 강 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조선 시장 환경에 맞춰 스피드 경영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STX조선은 2002년부터 혁신적 생산 시스템 구축, 전략적 영업 및 수주 활동 강화, 상생과 협력의 노사문화 정착 등 목표를 조기 달성하면서 수주량, 건조능력, 매출 규모를 매년 평균 3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같은 기간 이뤄진 STX조선의 기술 혁신은 세계 조선업계를 놀라게 했다. 2003년 STX조선은 한 해 동안 한 개의 도크에서 20척의 선박을 진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1년 1도크 20척 진수’라는 기록은 어느 조선소에서도 실현하지 못한 초유의 성과였다.

이는 하나의 도크에서 4척의 배를 동시 건조하고 먼저 건조된 2척의 배를 동시 진수하는 ‘세미 텐덤’(Semi-Tandem) 방식으로 생산성과 공간 활용도를 최대화한 공법이다.

지난해에도 STX조선은 하나의 도크에서 24척의 선박을 진수해 세계 최고의 도크 회전율을 경신했고 올해에는 27척 진수라는 신기록을 달성할 전망이다.

2004년 개발한 육상 건조공법 SLS(Skid Launching System) 역시 이 회사의 경쟁력을 잘 보여주는 독창적 기술이다. SLS공법은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선박을 2개 부분으로 나누어 건조한 후 해상에 떠 있는 스키드 바지선 위로 옮겨 그 위에서 한 척의 배를 최종 완성시키는 첨단 공법이다.

STX조선은 2005년 이 공법을 활용해 도크를 신설하지 않고도 6척의 배를 육상 건조해 전체 건조량 증대에 적잖은 보탬이 됐다. 올해는 공정 프로세스를 더욱 개선해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12척의 배를 육상에서 건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간에 STX조선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한 데는 그룹의 수직계열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한몫을 했다. 국내 최대 부정기선 전문 선사인 STX팬오션과 선박용 엔진ㆍ부품업체인 STX엔진, STX중공업, STX엔파코 등이 앞뒤로 포진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가운데 STX조선도 활짝 날개를 펼 수 있었던 것이다.

'1년 1도크 20척 진수' 세계 최고수준

사실 강 회장은 왕성한 M&A를 통해 그룹 덩치를 키우면서도 일관된 확장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연관사업 진출에 따른 시너지 창출로 21세기 해양대국의 선봉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향후 경영 목표도 야심만만하다. 우선 해운ㆍ물류 사업부문의 핵심 축인 STX팬오션은 대형 선단 구축을 통해 글로벌 사업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대, 2010년까지 매출 7조원 대의 세계 5대 해운선사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미 세계 7대 조선소의 반열에 오른 STX조선도 같은 기간 세계 5대 조선소로 한층 더 도약시킨다는 목표를 세웠고, 또한 STX엔진과 STX중공업이 맡고 있는 엔진사업부문은 세계 3위권 엔진 메이커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STX그룹의 가파른 성장세를 다소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과속 내지 과욕 경영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초고속 성장을 직접 경험한 임직원들도 조금은 얼떨떨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실 경영을 다지는 데도 점차 비중을 높이고 있다.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의 균형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STX그룹의 행보가 갑작스럽게 느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 재계의 신흥 주자답게 사업 현장 곳곳에서는 한번 해보자는 열정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창립 5년 만에 초고속 성장 신화를 이뤄낸 임직원들의 단결은 앞으로도 STX호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2001년 대동조선 인수, 현장 경영으로 내실 다져

▲ 강덕수 STX그룹 회장.

STX그룹은 2000년대 들어 M&A로 주목을 끈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룹의 모태는 옛 쌍용중공업에서 이름을 바꿔 새로 출발한 STX엔진이다. 샐러리맨 경영자였던 강덕수 회장이 주식을 대거 매집해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월급쟁이에서 오너로 화려하게 거듭난 강 회장은 이후 행보에서 더욱 과단성을 보이며 재계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2001년 대동조선 인수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는 재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STX그룹은 선박용 엔진-조선-해운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됐다.

강 회장은 M&A만으로 그룹을 키운 것은 아니다. 조선 기자재 업체인 STX엔파코와 엔진 업체인 STX중공업, 지주회사 격인 ㈜STX를 잇달아 설립해 그룹의 외형을 갖췄다. 지난해에는 STX건설을 발족시켜 2002년 인수한 STX에너지(옛 산업단지관리공단)와 묶어 에너지ㆍ건설 사업부문을 출범시켰다.

그룹의 핵심 사업은 해운ㆍ물류, 조선ㆍ기계, 에너지ㆍ건설 등 3대 축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6조 4,000억원 대. 재계 서열로는 20위권에 해당하는 중견그룹이다.

강 회장은 어엿한 재벌급 기업의 오너가 됐지만 경영 외적인 활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현장 경영을 중시해 1년의 절반 이상은 지방 사업장과 해외 사업장을 챙기는 데 보낸다고 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