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경영시대 마켓 전장의 야전사령관, 고객욕구 읽어내는 통찰력 필요

“여기 오렌지가 있다. 이것도 오렌지고 저것도 오렌지다. 그러나 소비자의 80%가 그 오렌지라는 과일의 이름을 ‘썬키스트’로 알거나 믿고 있다.” (러셀 헨린ㆍ썬키스트 재배자 조합 CEO)

브랜드의 힘과 중요성을 아주 쉬우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다른 상품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핵심은 대부분 소비자의 뇌리에 기억되는 것은 일등 상품뿐이라는 사실이다.

브랜드 파워가 곧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다. 일류 기업일수록 브랜드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처럼 브랜드 전략에 일찌감치 눈뜬 기업들을 필두로 국내 기업들의 ‘브랜드 경영’ 열기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브랜드 경영의 최일선에 특정 브랜드를 전담 관리하는 ‘브랜드 매니저’가 있다. 이들은 각자 맡은 브랜드의 홍보 전략을 수립, 실행하고 브랜드 가치를 창출, 유지하는 등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마케팅 활동을 관리한다.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하고 여러 분야 기능들을 조율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할 만하다. 게다가 대외적으로는 동종업체의 경쟁 브랜드와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에 전장의 야전사령관과도 같다.

브랜드 경영 시대의 총아, 브랜드 매니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브랜드는 자식, 매니저는 부모

빙그레 김태훈 과장은 간판 제품인 더위사냥, 메로나 등을 비롯해 6개의 빙과류 제품을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 매니저다. 이 회사에는 빙과류와 우유 부문을 합쳐 모두 10여 명의 브랜드 매니저가 근무한다. 이들이 관리하는 브랜드는 1인당 평균 4개 정도.

김 과장이 지난해 산파 역을 맡아 내놓은 더위사냥의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제품(일종의 자매 제품)인 더위사냥 키위 슬러시는 첫해 매출이 100억원을 넘을 만큼 큰 히트를 쳤다. 그런 만큼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이는 브랜드도 역시 더위사냥일 수밖에 없다.

“브랜드 매니저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당연히 신제품이 성공했을 때죠. 회사 홈페이지에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호평을 올려 놓은 것을 볼 때는 가슴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그가 브랜드 매니저로서 관여하는 일은 손으로 꼽기도 힘들 만큼 아주 많다. 기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관리와 브랜드 로열티 유지, 시장 조사와 소비자 트렌드 파악, 이에 따른 신제품 기획과 개발, 광고 및 판촉 활동 등등. 그뿐이 아니다. 빙과류 제품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매출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생산량과 생산 일정도 조절해야 한다.

물론 김 과장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지는 않는다. 회사 내 유관 부서와 외부 협력업체들과의 협의 하에 진행한다. 그럼에도 최종적인 권한과 책임은 당연히 그의 몫이다. 김 과장은 그런 자신의 역할을 “전체 조직을 잇는 연결고리 혹은 조직이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하는 윤활유”로 정의 내리기도 했다.

그는 빙그레 식품연구소에서 9년 동안 아이스크림을 연구 개발하다 브랜드 매니저로 ‘전직’했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소비자의 입맛을 중시한다. 전 세계 빙과업계의 최신 동향 파악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는가 하면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를 꾸준히 읽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시장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브랜드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브랜드 매니저는 브랜드를 낳아서 돌보고 키우고 마지막으로는 죽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보죠. 그런 점에서 브랜드는 자식이고 브랜드 매니저는 부모나 마찬가지인 셈이에요.”

신선하고 늙지않는 브랜드 창조

▲ 아모레 퍼시픽 이수향 과장

아모레퍼시픽(옛 태평양)에는 10개 정도의 브랜드가 있는데 각 브랜드는 4~5명 정도로 구성된 브랜드 매니저 팀의 전담 관리를 받는다. 이수향 과장은 그중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화장품인 라네즈를 전담하고 있다.

“화장품은 소비자들이 심리적 충족감을 얻기 위해 구매하는 전형적인 감성 상품이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고객이 어떤 품목을 사려고 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순위로 다섯 번째 안에는 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요. 그래서 브랜드 매니저의 역할도 다른 업종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라네즈는 시장에 출시된 지 벌써 10년이 됐다. 롱런하고 있지만 뒤집어보면 고객들에게 진부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과장이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이 “항상 신선하고 늙지 않는 브랜드로 유지하는 것”이다. 즉 20대 여성의 변화무쌍한 니즈(욕구)를 끊임없이 반영하는 것이 브랜드 마케팅의 핵심인 것이다.

“고객의 숨은 니즈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 고객들을 보다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시장 조사를 자주 다닙니다. 고객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마케팅 활동에 필요한 영감들을 얻기 마련이죠.”

브랜드 매니저는 광고홍보, 디자인, 연구개발, 생산, 영업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아울러서 마케팅 활동과 브랜드 관리의 큰 줄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자리다. 이 과장은 광고홍보 기획 업무를 하다가 2001년부터 브랜드 매니저로 전환했는데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맡았던 이전 경험이 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처음 맡았던 브랜드는 마몽드였다. 마몽드는 당시 고객들이 점차 이탈하면서 매출이 줄어들고 있었던 까닭에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때 이 과장은 ‘브랜드 리뉴얼’(brand renewal)을 진행했고 토털 솔루션과 파우더 팩트 등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마몽드 브랜드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매출이 이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나는 대성공이었다. 이 과정에는 인터넷과 연예인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는 등 치밀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브랜드 매니지먼트는 매출뿐 아니라 기업 가치에도 직결될 만큼 중요한 활동이 됐어요. 이제 고객들은 브랜드를 기억하지 회사를 기억하지는 않거든요. 대부분 선진 기업들은 벌써부터 ‘브랜드 컴퍼니’로 가고 있습니다.”

이 과장의 말처럼 브랜드 매니지먼트는 이제 기업들의 생존 요건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브랜드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식품, 화장품 등 일부 소비재 업종을 제외하면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브랜드 매니저 제도가 정착됐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 대기업의 브랜드 매니저는 “국내에 브랜드 매니저 제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한 브랜드를 책임지고 관리할 만큼 권한을 주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우리 회사 경우에도 재무나 영업 파트의 입김이 거세 브랜드 매니저 역할이 반쪽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의 브랜드 경영 역사가 일천한 탓에 브랜드 매니저 제도 역시 아직은 설익은 셈이다. 하지만 브랜드 파워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브랜드 매니저의 역할도 점차 확대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