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 감사원 권고따라 포항본부 폐쇄 등 추진"인구 등 적은 곳 살리면서…" 경북 지자체 "역차별" 격한 반발

“(지역민들이) 경제 침체 등으로 안 그래도 울고 싶은데 때마침 한국은행 총재가 따귀를 때린 거 아닙니까.”(경상북도의회 이상천 의장)

한국은행(이성태 총재)이 조직개편 차원에서 추진 중인 지역본부, 지점의 축소 및 폐쇄 계획에 대해 해당 지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포항본부의 지점으로 축소와 구미지점 폐쇄에 맞닥뜨린 경북 지역은 자치단체와 의회는 물론 지역 기관ㆍ단체장들까지 벌떼처럼 일어나 한은의 비대한 조직을 수술하려는 방침을 성토하고 나섰다.

"울고 싶은 차 뺨 때린 격"

한은은 지난해 감사원이 방만한 경영에 대해 구조 개편을 권고한 뒤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해 왔는데 최근 순천, 진주, 구미 3개 지점을 폐쇄하고 포항본부를 지점으로 축소한 후 중장기적으로 폐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또한 교통 및 통신의 발달로 지역본부의 역할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폐쇄에 따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얼마 전 일선 학교 사회과목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연수 다과회에서 “지역본부와 지점의 축소 및 폐쇄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최종 결정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한은은 은행 지점이나 기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밝혀 구조조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전체 인원 2,400여 명의 3분의 1 정도인 750여 명의 인력이 파견돼 있는 한은의 지역 조직은 세금을 걷는 국고 수납, 금융기관에 대한 여수신, 화폐 수급, 지역경제 조사 및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16개 지역본부와 3개 지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경남본부, 대구경북본부, 광주전남본부 산하에 각각 진주지점, 구미지점, 순천지점이 딸려 있다. 한은 지역 조직은 1994년에는 16개 본부 및 13개 지점이 운용됐으나 97년엔 13개 지점이 7개로 줄어들었고 99년에 다시 3개로 감축된 바 있다.

한은 내부 방안에 따르면 이번 구조조정으로 3개 지점이 모두 즉시 폐쇄되고 포항본부는 지점 축소 후 2010년께 폐쇄된다. 또한 강릉본부가 지점으로 축소돼 유지되는 한편 목포본부는 전남도청이 인근 무안으로 이전되는 점을 고려해 전남본부로 확대 개편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도의회 등 비대위 발족

이 같은 한은의 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경북 지역이다.

경북도청과 도의회 등을 주축으로 지난 3일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ㆍ이상천 경북도의회 의장)를 발족시킨 경북 지역은 도민들이 총궐기 대회를 열어서라도 한은의 철회 선언을 이끌어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다.

경북 지역이 이렇게 반발하는 것은 우선 ‘정치적 차별’이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경북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포항본부와 구미지점 2곳이 함께 문을 닫는 반면 전남 지역의 목포본부는 전남본부로 확대 개편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경북도의회 이상천 의장은 “일반 도민들은 중앙은행을 접할 일도 없지만 ‘참여정부가 우리 지역을 변방으로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갖고 있다”며 “게다가 참여정부는 지방분권, 국토 균형발전을 지향해 왔는데 이번 조치는 여기에도 역행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목포본부, 강릉본부와 비교해 보더라도 포항본부와 구미지점 폐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일부에서는 지적한다. 실제 각 본부의 관할구역 인구와 여수신 규모를 살펴보면 포항본부와 구미지점이 목포와 강릉본부에 비해 오히려 많다. 경북 지역민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지역의 당국자들은 한은 지역 조직이 지역경제 활동을 배후 지원하는 기능을 지닌다는 점에서도 포항본부와 구미지점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경북도청 주상수 경제교통정책과장은 “한은 포항본부와 구미지점은 국내 주요산업 거점인 두 도시의 경제 및 금융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설립됐다”며 “이들 도시가 계속 성장 중일 뿐만 아니라 도내 타 지역도 경제발전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마당에 한은 지점을 폐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한은 측의 교통ㆍ통신 발달에 따른 지역 조직 축소 불가피론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 따른다.

주상수 과장은 “교통, 통신이 발달했으니 지역 조직을 없애도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서울에 있는 지점(강남본부)부터 건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포항본부와 구미지점의 1년 경상경비 55억원을 아끼자고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야말로 비효율과 비경제성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한은의 구조 개편 방침은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조직 축소에 따른 고용 불안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해당 본부와 지점은 물론 본점과 타 지역 조직도 뒤숭숭하다.

뿐만 아니라 한은의 ‘독립성’과 이번 사안을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감사원은 고유 업무의 성격상 한은에 권고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한은 총재가 조직의 설립 목적과 기능을 잘 살펴 독자적이고 합리적으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 노동조합 안운섭 사무총국장은 “교통 발달과 전산화 등으로 지역 업무가 간소화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미시적 변화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지역 본부가 갖는 여타 순기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에서는 방만한 한은 조직을 줄이라 하고, 경북지역에서는 오히려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틈새에서 한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