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횡보·엔화 약세 등으로 하락 요인 적어… 해외 투기자본 등이 변수

최근 달러 환율은 지극히 조용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7월 이후 달러화의 환율은 위쪽으로는 960원 이상으로 크게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아래로는 950원 이하로도 쉽사리 내려서지 않고 있다.

달러 환율이 위, 아래 대체로 10원 범위의 박스 권에 갇혀 이처럼 다소 지루한 횡보 양상이 이어지고 있으니 정작 외환거래로 수익을 얻으려는 서울 외환시장의 외환딜러들은 죽을 맛이다. 무언가 위쪽이건 혹은 아래쪽이건 환율이 크게 움직여야 딜러들이 수익을 얻을 기회라도 있을 터인데, 내내 거의 변동 없이 환율은 옆으로만 움직이고 있으니 이들이 제대로 된 외환거래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을 지경.

그러나 외환딜러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외환당국이나 기업들은 느긋하다. 오랜만에 태평성대를 만난 셈이다.

수출이나 수입에 주력하는 기업으로서는 환율이 이처럼 안정적이니 당분간은 외환 리스크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또한 당국으로서도 환율이 불안할 때에는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느라 온갖 정책수단을 집중하여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다. 내내 지금처럼만 환율이 움직여준다면 외환딜러들의 고충과는 달리 기업이나 정부당국은 일할 맛이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치 바다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것이 외환시장의 움직임이다보니 지금 당장에야 환율 움직임이 안정적이라고 하여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는 바다지만 언제 폭풍우가 몰려와 항해하는 배에 위협을 가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이야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외환시장의 환율도 조만간 본색을 드러내어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특히 외환시장에는 우리나라 은행이나 기업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는 데다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NDF(역외선물환거래)를 이용하는 해외 투기세력도 끼어들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세력균형 여하에 따라 환율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요동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여하간 향후 달러화의 환율을 좌우할 변수들을 예상해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달러 수요 상존, 꾸준한 상승으로 이어질 듯

우선 국내외 달러에 대한 수급 요인으로 본다면 달러화가 쉽사리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 이유는 국내 대형 유통사의 매각대금을 지급하기 위한 달러 수요가 상존한다는 것. 즉 이랜드 그룹이 인수한 까르푸와 신세계가 인수한 월마트의 인수대금은 달러로 지급되므로 결국 원화를 대가로 달러화를 매수하려는 수요가 국내 외환시장에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반면 국내 주식시장이 크게 상승하거나 하여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자금 유입이 많아질 것이라면 달러화의 공급요인이 늘어나서 환율 하락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최근 국내 주식시장 역시 환율처럼 뚜렷한 방향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횡보하고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투자를 위하여 달러 자금을 대거 국내로 유입해 올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달러 수요는 늘어날 수 있으나, 공급은 그리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낮다면 달러 환율은 점진적으로나마 상승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국내 외환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급이 따른 달러 강세론이 항구적으로 이어질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카르푸, 월마트 등의 대금을 지급하기 위한 달러 수요는 결국 단기간에 충족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다시금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달러 공급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달러화의 하락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많다.

이를테면 시차를 두고 단기적으로는 달러가 강세를 보이겠지만 점차 하락세가 힘을 더하리라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시야를 바깥으로 돌려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움직임과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의 움직임을 살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그리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올해 들어 달러화는 유로화나 일본 엔, 혹은 영국 파운드 등 주요 통화에 대하여 대체로 강세기조를 유지하여 왔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늘어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폭과 경기 둔화로 말미암아 결국 하락세를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외환시장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던 터.

그러나 이런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현재까지 굳건한 강세기조를 이어왔던 것이다. 물론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달러 금리 인상 기대감이 달러화의 강세를 유발하였다는 사실도 달러 강세의 이유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왜 연초에 전문가들이 언급하였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가 달러화의 약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여태껏 적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미국 정부 스스로 달러 약세 정책에 한계를 느껴 적극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나 올해 연말이면 GDP의 6%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경상수지 적자폭은 GDP의 3% 이상이면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결국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이런 위험수준보다 두 배에 이르는 상황이므로 적자폭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볼 적절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수출을 늘리는데 주력하겠으나 미국은 오히려 수출보다는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경상수지를 잡으려면 내수, 즉 수입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위적으로 국내경기를 둔화시켜 내수를 줄이고, 이를 통해 수입을 감소하여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미국 정부당국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래서 달러의 가치를 떨어트려 수입을 억제하는 조치가 강구되었으나 이것 역시 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실제로 2002년의 엔론 사태 이후 달러화는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내었지만 미국의 2005년도 경상수지 적자는 8,049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2004년의 6,681억 달러의 적자보다 20% 이상이나 늘어난 것으로서 달러화 약세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소비자들이 달러 약세로 인한 수입가격 상승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으며,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대만 등 미국에 대한 주요 수출국들이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미 수출물량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 급등 가능성 낮아 안정세 예상

따라서 앞으로는 미국의 정책도 무작정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보다는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에 특별관세, 쿼터, 반덤핑 제소 등 통상압력을 늘려가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공산이 높다.

결국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하여 달러화가 저절로 약세를 보이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환율도 덩달아 하락하는 식의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일본의 엔화도 당초 기대한 만큼 강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예전처럼 우리나라 원화와 일본의 엔화 움직임이 밀접하게 움직이지는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일본 엔화가 강세를 나타낸다면 우리나라의 원화도 강세(즉 환율 하락)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장의 인식. 하지만 일본의 엔화는 요즘 연일 약세로 주저앉고 있다.

예컨대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 유로화의 환율은 지난 9월 초, 일시적이지만 150엔대를 넘어서면서 1999년 1월에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 사상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바 있다. 유로화의 환율이 사상최고이니만큼 거꾸로 엔화는 사상최저치로 주저앉은 셈. 이처럼 엔화가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경기회복이 기대보다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일본은행은 제로금리 정책에서 탈피할 것으로 선언하고 엔화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8월 일본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예상보다 낮게 나타나고 또한 일본의 경기 회복속도도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안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간 주춤하던 엔 캐리 트레이드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재차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를 차입하여 이를 외환시장에서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통화로 환전하여 투자하는 거래를 말하는데, 필연적으로 외환시장에는 일본 엔화의 매도 주문이 늘어나므로 엔화 약세 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아베 신조 현 일본의 관방장관이 차기 일본총리로 선출될 경우, 엔화의 약세 양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베는 총리에 선출될 경우, 현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개혁정책에서 한발 물러설 공산이 높고, 그럴 경우 일본은행이 금리를 과감하게 인상할 가능성도 낮아지기 때문에 엔화가 약세기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하간 현 상황에서는 일본 엔화가 급격히 강세로 돌아설 공산은 낮다. 결국 우리나라의 원화도 일본 엔화의 강세로 인하여 덩달아 강세가 될 가능성 역시 낮아지는 것이다.

중국 위안화의 동향도 관심거리인데, 위안화는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8.00선을 무너뜨리기는 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히 ‘황소걸음’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하 0.3%로 정해져 있는 하루 중 위안화 변동폭을 늘릴 계획이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어 지금과 같은 완만한 위안화 평가절상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종합한다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데다 일본 엔화의 약세가 이어질 공산이 높고, 위안화 역시 급등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 또한 당분간은 안정세를 이어가리라고 판단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김중근 매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