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동차·주택시장 약세 소비지출 감소 - 생산 둔화 악순환 가능성 높아

세계적인 경기 둔화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그림자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원래 경기전망이란 그때 그때의 경제상황에 따라 엄청나게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예상되기도 하는 법이다. 사실 자연과학도 아닌 경제를 전망하는 일이므로 정확성을 담보할 수도 없는 일이고, 따라서 경제전망이 불안하다고 하여 벌써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이나 세계 경제전망에 대하여 금융기관이나 혹은 연구소에서 잇달아 경기 둔화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만일 미국이나 선진국 경제가 내년도에 대폭 둔화된다면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 혹은 주식시장이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美 금융계, 경제 성장속도 '정체' 판단

우선 미국의 경기 둔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당장 미국의 금융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준비위원회(FRB)가 경기를 바라보는 눈길이 걱정에 차 있다.

FRB에 속해있는 산하 12개 연방은행들은 매달 경제동향을 요약한 베이지 북(Beige Book)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FRB가 미국 경기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제까지 발표된 베이지 북에서는 미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견조하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런데 지난 9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FRB의 경기에 대한 태도가 약간 바뀐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경제는 양호한 성장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제하고는 있으나, FRB 산하 은행 중에서 5개 지역의 연방은행은 8월 중 그 지역의 경제성장 속도가 감속(deceleration)되고 있다고 밝혔고, 7개 지역의 연방은행은 경제성장 속도가 정체되고 있다는 판단을 제시하여 주목을 끈다. 경기 둔화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셈.

그 밖에도 특히 이번의 베이지 북은 경기에서 제조업의 확장세가 지속되고는 있으나 자동차와 특히 주택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서 부동산 부문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있는 경기 둔화 우려를 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는 그동안 꾸준하게 인상된 금리의 영향이 크다. 금리가 인상되면서 주택담보 대출의 부담이 높아졌고, 이는 결국 주택시장 둔화→ 소비지출 감소→ 생산 둔화라는 악순환의 골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뚜렷한 미국 경기의 하강 사이클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기 둔화 특히 부동산 부문에서 촉발된 둔화 조짐이 자칫 경제 전반을 뒤덮을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세계경제가 급격하게 둔화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IMF는 지난 주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은행 및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가 5.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나 내년에 심각한 경기 둔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IMF는 내년에 9.11테러 이후 세계 경제가 둔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내년 경제성장률이 3.25% 이하로 급락할 가능성도 16% 정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는 세계경제의 둔화 요인으로 역시 미국 주택시장이 급격하게 침체할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꼽고 있다.

참고로 IMF는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4.9%를 제시하고 있으나, G7의 성장률은 2.9%에서 2.5%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달 발표하는 선진국 경기를 반영하는 경제지표도 악화되고 있다. 특히 경기를 선반영하는 경기선행지수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올해 4월 이후 지난달까지 OECD 경기선행지수는 6개월 연율 기준으로 4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고 또한 전월비 기준으로도 6월 이후 2개월째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 나라의 경기선행지수가 하락한다는 것은 결국 그 나라의 향후 경기 전망이 악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듯,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OECD의 향후 경기 전망이 좋지 않다는 것이 OECD 경기선행지수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스태그 플레이션 가능성 경고

금융기관이나 연구소의 분석가들도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하여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자 보고서에서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5%에서 내년 4%로 후퇴하고 인플레이션은 3%에서 4%로 높아질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로존 등 여타 선진국의 경제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일본의 경우, 지난 7월 일본은행이 그동안 유지해오던 제로금리 정책, 즉 경기 확장 정책을 버리고 금리를 인상하였으나 이후 후속되는 경제성장 속도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히려 일본의 경제성장 속도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다소나마 주춤거리는 양상도 엿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8월 말에 발표된 7월 일본의 산업활동 동향은 시장에서 예상한 0.8%의 증가에 한참이나 못 미친 0.9% 감소로 나타났으며, 또한 지난 7월 핵심 기계류 수주는 전달보다 16.7% 감소하여 전문가들의 예측치를 밑돈 것은 물론이며 약 2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일본의 경제성장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경기 둔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만일 내년도에 미국의 경제가 주택부문에서의 악화로 둔화 양상으로 접어든다면 일본의 경제 역시 그리 좋지 못하리라는 예상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 경제의 경제성장 둔화 조짐이 우리나라 경제나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당장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는 세계 경제의 둔화가 우리나라의 수출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의 성장엔진의 하나인 수출의 증가세가 둔화될 경우 내년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으리라는 점.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월간 경제동향'에서 "미국 경기가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약해져 세계 경제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세계 경기 둔화가 우리 경기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제가 둔화될 경우, 주식시장의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미국의 경제성장 둔화가 반드시 주가나 우리 경제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근 급속히 하락하고 있는 원자재 가격이 단적인 사례이다.

유가의 하락세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 둔화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셈. 선진국의 경기가 둔화될 공산이 높으니,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국 원유의 수급에 영향을 미쳐 원유가격의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는 이제 배럴당 60달러 초반에 이르면서 올해 2월 15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가는 중동 등의 지정학적 불안감에다 투기수요까지 겹치면서 지난해에는 배럴당 70달러까지 치솟았고, 올해 8월에는 배럴당 77달러를 상회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유가가 하락하면서 덩달아 알루미늄, 주석, 아연 등의 1차금속의 가격도 하락세이다.

원유가격이 급락하고, 또한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도 동반 하락하는 것은 기업 실적이나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낳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 혹은 주식시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

국내 주식시장 악영향 우려

하지만 사실 1+1=2라는 꼴의 공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평소에는 호재로 인식되던 뉴스가 이번에는 악재로 둔갑하기도 하고, 반대로 악재로 간주되던 뉴스가 호재로 뒤바뀌기도 하는 만큼 주의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여 원유가가 하락한다는 사실만을 놓고 본다면 기업 실적에 호재이고 결국 주식시장에도 좋은 뉴스가 될 수 있으나, 반면 유가 하락의 이유가 세계 경기 둔화에 있다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뜻이다. 즉 경기둔화→ 매출부진→ 기업실적 악화→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 내년도의 세계 경제 전망이 예전과는 달리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유가 하락 등의 호재도 없지 않지만, 아무래도 우리 경제나 주식시장에는 다소간 먹구름이 다가올 것이라는 데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