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논란 가열되면 환율 불안 불러… 해외 투기세력 준동 빌미 될 수도

최근 해외 외환시장에서 엔화의 가치가 그다지 하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 원화에 대한 엔화의 환율은 5개월 만에 최저치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엔-원 환율은 최고치를 기록하였던 2001년 5월에는 100엔당 1,122원에 이르기도 하였으니 5년 만에 300원 이상, 즉 비율로는 무려 39%나 하락한 셈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가 엔화에 대하여 강세를 보인 결과가 된다. 따라서 예컨대 2001년에 엔화 표시 외화대출을 받은 사업자라면 현 시점에서 부채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셈. 갚아야 할 원금이 저절로 줄었으니 대단한 이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에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정말 죽을 맛일 것이다. 수출대금을 엔화로 지급받는다면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앉아서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결과가 된다. 이처럼 같은 움직임일지라도 환율은 어떤 사람에게 좋은 소식으로 작용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나쁜 뉴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엔-원의 환율은 100엔당 1,000원이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마치 100엔=1,000원이 황금비율인 양 간주되는 분위기가 2004년 말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엔-원 환율이 급속하게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초의 일이다. 100엔=1,000원이라는 황금비율이 붕괴되면서 엔-원 환율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최근처럼 엔화의 하락세가 가속도를 붙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해외 외환시장에서 엔화의 가치가 그다지 뚜렷하게 하락하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엔-원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 그 배경과 향후 전망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달러/원 환율 하락, 엔/원 하락 불러

엔-원 환율이 하락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무엇보다도 달러-원 환율이 최근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엔-원 환율은 전문적인 용어를 빈다면 소위 ‘재정환율(arbitrated rate)'이다. 엔-원의 재정환율이란 독자적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통화의 환율이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산출된다. 예컨대 최근의 외환시장 흐름에서처럼 달러-엔의 환율은 그다지 크게 움직이지 않는데 달러-원 환율이 크게 움직인다면, 재정환율인 엔-원 환율은 수동적으로, 그리고 저절로 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처럼 달러-원 환율이 크게 하락하여 950원 벽도 무너진 상황에서는 엔-원 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그렇다면 엔-원 환율의 하락 원인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달러-원 환율의 하락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상당한 기간 동안 위쪽으로는 960원을 저항선으로, 그리고 아래쪽으로는 950원을 지지선으로 하여 지루한 횡보세를 이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환율의 움직임에서 수익을 얻으려는 외환 딜러들 가운데에서는 여기저기 ‘죽겠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주 들면서 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도무지 1원도 움직이지 않을 듯하던 달러-원 환율이 내림세로 방향을 틀더니 자못 급락하는 모습을 드러냈고, 급기야 950원도 무너뜨릴 듯한 기세이다.

이처럼 환율이 하락하게 된 이유로는 첫 번째로 수급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매수 세력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역외 투기세력들이 엔 캐리 트레이딩을 이용하여 달러 매수를 주도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 그런데 이들이 원화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큰 데 비하여 엔화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낮아지자 엔 캐리를 이용한 달러 매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중국이 외환 보유액 내에서 원화의 비중을 늘릴 것이라는 소식도 이들로 하여금 달러 매수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외환 보유액에서 원화 보유를 늘린다면 원화의 가치가 높아질 터이니 달러를 사고, 원화를 팔기보다는 거꾸로 달러를 팔고, 원화를 매수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조차도 외환 보유액에서 현재 달러 일변도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통화를 다변화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달러에게는 악재면 악재이지 호재는 아닐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수급요인은 일시적인 환율 변동 요인이 될지언정 중장기적으로 환율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따라서 최근 달러-원 환율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엔-원 환율을 건드리고 있는 것에는 다른 근본적인 요인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최근 불거지고 있는 것처럼 외국환 평형기금의 적자를 둘러싼 논란이 결정적인 달러-원 환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 일부 야당 의원들은 2005년 말까지 외국환 평형기금의 누적적자가 17조8,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감사원에 대하여 감사를 청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원들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 안정의 책무를 맡고 있는 외국환 평형기금이 이처럼 적자가 크게 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은행의 환율 전망이 엉터리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부실한 외환시장 개입 활동에 대하여 감사를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이를 한국은행의 부실한 외환시장 개입 혹은 환율 전망이 엉터리였다는 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국회에서 논란이 벌어질수록 한국은행이 부담을 느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못하리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여 투기적인 세력들이 환율을 크게 흔들어도 한국은행으로서는 국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터이니 외환시장에 이전처럼 강력하게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

실제로 지난 2004년 국정감사를 전후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 바가 있었다. 당시 국회는 외국환 평형기금이 역외 선물환(NDF)까지 동원하여 외환시장에서 개입하여 손실을 입은 것을 두고 국정감사에서 한국은행을 질타한 바가 있는데, 그 직후 한국은행이 쉽사리 개입에 나서지 못할 것을 노리는 투기 세력이 외환시장에 뛰어들면서 2004년 10월 초 1,150원대였던 환율이 급락세를 보여 12월 말에는 1,030원 수준으로 추락한 바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또 투기적인 세력이 나타난다면 2004년 말의 사례가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환 평형기금, 환율 안정에 일조

외국환 평형기금의 적자가 커지는 것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질타를 받을 대상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환 평형기금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인하여 그나마 환율이 안정되었고, 그로 인하여 수출 촉진 등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덕수 전 부총리도 외국환 평형기금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국회에서 기금의 손실은 되도록 줄여야 하겠지만 거시경제 차원에서 발생하는 비용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해명하면서 외평기금의 활동으로 약 0.1~0.4% 정도의 성장률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국환 평형기금은 손실을 보았을지라도 그 결과,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면 이는 감수할 만한 비용이 된다.

또한 외국환 평형기금은 외환 거래 이익을 얻으려는 기관이 아니다. 외국환 평형기금이 순전히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면 달러를 매입할 것이 아니라 달러를 매도하였어야 옳았다.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외국환 평형기금은 이제까지 의원들이 지적하는 ‘적자’가 아니라 ‘흑자’를 당당하게 나타내었을 터.

하지만 외국환 형평기금이 흑자를 내는 데 골몰하였다면 달러-원 환율은 급락하여 우리나라 전체의 수출이며 경제는 엉망이 되었을 터이다. 물론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그만큼 외국환 평형기금의 특수성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요즘 외국환 평형기금을 둘러싼 논란이 해외 투기세력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쥐고 흔드는 좋은 기회로 활용한다면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 태우는’ 꼴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냉엄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틈만 보인다면 사정없이 파고들기 마련이다.

국회에서 외국환 평형기금 적자를 논란할 때, 해외 투기세력은 그 틈새를 파고들고, 한국은행은 국회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던 2004년의 경험이 이번에도 되풀이될 공산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무래도 달러-원 환율과 엔-원 환율은 당분간은 더 하락세를 이어갈 공산이 높아 보인다.


김중근 매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