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대거 샀다 팔았다 등 공격적 행보… 개미들 애꿎은 피해 우려

▲ 조지 소로스
1992년 9월, 퀀텀펀드라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던 조지 소로스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실제 가치에 비하여 고평가되어 있다고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은 유럽 지역의 환율 공동체인 유럽환율조정체제(ERM, 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에 속해 있었고, 회원국들과의 협정에 따라 독일 마르크에 대비,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국 당국이 파운드화의 가치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하면서 파운드화의 환율은 미국 달러 대 2.00선을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때, 파운드화가 고평가되었음을 노린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무차별적으로 파운드를 매도하자 덩달아 다른 투기세력들도 파운드 공략에 나섰고, 파운드화의 가치는 몰락하게 된다.

물론 영국의 중앙은행은 이들의 공세에 대항하여 파운드 방어에 나섰지만 투기세력의 공격이 처음부터 잘 계획된 데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한 대규모였기에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이들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심지어 영란은행은 파운드화의 가치 방어를 위하여 파운드화의 금리를 하루 동안에만 10%에서 12%, 그리고는 급기야 15%로 올리기까지 하면서 완강하게 버텼지만 거세어지는 국제 투기세력의 파운드화 매도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영국은 파운드화의 방어를 포기하였고, 아예 ERM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내리고 만다.

파운드는 투기세력의 계획대로 큰 폭으로 하락하여 투기세력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게 된다. 영란은행과의 파운드 가치를 둘러싼 공방을 통해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단 하루(1992년 9월 16일) 만에 무려 10억 달러에 달하는 큰 돈을 벌어들였다. 반면 영란은행은 33억 파운드라는 손실을 감내하여야만 하였으며 국제 투기세력과의 공방에서 패퇴하였다는 사실로 인하여 영란은행은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였던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투기적 자본들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소로스는 우리나라가 IMF 금융위기로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도 진출하여 역시 큰돈을 벌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이들 투기적 세력들은 수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돈벌이에 주력한다.

금융시장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제로 섬 게임’이다. 그러므로 소로스가 대규모 수익을 얻었을 때, 영란은행이 큰 손해을 감내하여야 하였던 것처럼 수익을 본 측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본 측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여 국제적 투기세력이 돈을 벌어가는 곳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물론 과거 소로스 펀드가 영국의 환율 시스템을 아예 바꾸어 버렸을 정도로 최근 외국인들의 태도가 투기적이거나 공격적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요즘 주식시장에서 현물거래와 선물거래, 특히 선물거래와 관련된 프로그램 거래까지 동원한 외국인들의 단기성 투기매매가 극성을 보이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외국인들의 선물을 앞세운 투기거래는 요즘 갑자기 나타난 일도 아니어서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투기로 말미암아 주식시장의 향방이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어서 자칫 순진한 일반인 투자자들이 그 흐름에 휩싸일 우려도 커지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물과 선물을 동원하여 수익을 낸다면 그 반대편의 손실은 결국 고스란히 국내 일반인 투자자들이나 혹은 국내 기관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터.

원래 선물거래 혹은 옵션거래는 현물 주식시장의 위험을 관리(헤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점차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투기적인 수단으로 더욱 더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위험을 관리하라고 만들어진 제도가 되레 위험을 늘리는 제도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익이 있는 곳에 자금이 있다’는 금융시장의 속설처럼 역시 무언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석이 있기에 투기적인 거래가 몰리는 것일 터. 더구나 투기적인 거래의 중심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더욱 더 주의가 필요하다. 이들이 비록 소로스처럼 막강하지는 않겠지만, 과거 헤지펀드가 영국 파운드를 뒤흔들었듯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뒤흔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수선물 시장에서 대량의 매도 물량을 내놓으며 주가를 아래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바로 그 다음날 대량의 매수 물량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하는 등 주식시장을 제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예컨대 선물, 옵션 등이 동시에 만기되는 트리플위칭데이였던 지난 9월 14일, 오후 2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잠잠하던 주식시장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선물로 투기적인 매수세가 몰리고, 그로 인하여 선물 가격이 급등하자 덩달아 현물 주식가격도 치솟기 시작하였던 것. 급기야 마감을 앞두고 마감을 위한 단일가 동시매매가 진행되면서 예상 마감지수가 무려 100포인트나 급등하는 것으로 예상되기도 하는 등 만기일에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던 것이다. 선물매매를 둘러싼 투기세력이 주식시장마저 크게 흔들어버린 결과였다.

"단기 조정 임박 징후" 해석도

또한 선물 옵션의 동시 만기일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선물매매 행태도 상당히 공격적이다. 이들은 9월 21일 이후 거의 매일 매수, 매도 포지션을 오고가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의 거래 규모도 상당히 커져서, 이들은 쉽사리 순매수 기준으로 선물계약 1만 계약을 넘어서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 결과 외국인들의 선물거래 규모도 사상 최고 기록을 나날이 경신하는 양상이다.

예컨대 이제까지 외국인들이 최대로 거래한 것은 2003년 10월 9일의 하루 1만4,521계약. 그러나 이 기록은 지난 9월 27일의 1만6,726계약의 순매수 기록에 1위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금액으로 따져 1조4,800억원에 이르는 수준으로 역시 사상 최대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 7월 20일의 9,890억원.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선물을 사들이면 현물에서 프로그램 매수거래를 유도하여 현물시세도 덩달아 강세를 보이게 되고, 반대로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선물을 매도하면 현물에서는 프로그램 매도거래가 유발되어 현물주가가 덩달아 하락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외국인들의 엄청난 선물매매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뚜렷한 재료 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외국인들의 투기적인 선물매매는 곧장 시장을 움직이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들의 선물 투기매매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도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 두어야지 그렇지 않는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기 공세에 무작정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별 재료가 없는 가운데 주식시장을 투기거래를 이용하여 흔들려 하는 것은 주식시장이 단기적으로 조정이 임박하였다는 조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일 주식시장이 상승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 같다면 천하 없는 외국인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들의 투기 공세가 시장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최근 외국인들의 선물 공세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여 주식시장을 지속적인 상승세로 이끌어갈 만한 재료가 부족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같은 투기적인 장세가 추석 연휴 이후에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투기세력은 더욱 기승부릴 수도 있겠다. 여하간 외국인들의 ‘장세 흔들기’는 두고두고 시장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