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2차 핵실험 준비 등에도 불구하고 환율 안정세내성 생겼고 수급도 정상적… 금융교과서 공식 무색케

지난 16일 원.엔환율이 100엔당798.70원에 마감되며 지난 97년 이후 8년만에 800원대 아래로 밀려난 뒤 이튿날 800원대를 회복했으나 원-엔 환율은 금융시장에 계속 불안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7일 서울 명동의 한 은행입구
대학에서 배우는 국제금융론 중에 환율의 변동 요인을 다루는 부분이 있다. 교과서의 설명에 의한다면 일반적으로 환율이 변동하는 요인에는 장기적인 요인인 기초적 요인과, 다소 단기적인 요인인 기술적 요인이 있다. 그리고 환율을 움직이는 기초적인 요인에는 인플레, 금리, 국제수지, 통화량 등이 있으며, 기술적인 요인으로는 시장의 분위기, 중앙은행의 개입, 뉴스 등이 있다. 물론 이런 요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환시장에는 그외에도 수많은 요인들, 예컨대 정치적, 심리적인 요인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요인들이 비교적 대표적인 환율변동 이유로 작용한다. 환율은 이 같은 요인의 작용에 의하여 상승하기도 하고, 혹은 하락하기도 한다. 예컨대 인플레가 심해지면 장기적으로 환율은 약세가 되기 마련이며, 국제수지 흑자폭이 늘어나면 환율은 강세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원 환율의 움직임은 이 같은 국제금융론 교과서의 설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북한이 핵을 실험하였다는 등의 악재가 발생하였을 경우, 정치적인 불안을 우려한 달러 매입 - 원화 매도 거래의 증가로 인하여 달러/원 환율은 상승(즉 원화 약세)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달러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라는 뉴스가 터졌을 때, 그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피난항구라는 뜻의 세이프 헤븐 커런시(safe haven currency), 즉 안전통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핵실험이 알려졌던 지난 10월9일 오전, 달러/원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안전통화로서의 가치를 기대한 달러 매수세가 일시적으로 몰렸기 때문.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일부 외환 딜러들은 북핵 사태로 인하여 원화 강세 시대는 끝났고, 연말까지 달러/원 환율이 1,000원 이상으로 오르는 등 원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율은 그 이후 더 오르지도 않았고, 그러니 1,000원은커녕 그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북핵 실험이 알려진 당일의 상승세가 과다하였다는 판단으로 인한 달러 매물로 인해 다시금 하락 압력에 놓여있는 형편이다. 결국 북핵 사태로 인한 영향력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는 거의 작용하지 않은 셈. 달러/원 환율은 955원 언저리에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였다고 발표한 후, 시간이 좀 흘렀다는 것을 이유로 외환시장이 안정되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며, 또 갑자기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요, 북핵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잊혀진 것도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4일,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며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고 거기에 북한은 이를 전쟁 선포로 간주하고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는 등 북핵 문제는 여전히 이슈의 한가운데 있고, 긴장감은 더하고 있다. 거기에다 17일에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준비한다는 징후가 있다고 알려지는 등 북핵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외환시장은 이를 본체만체 조용하기만 하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첫 번째, 국내 외환시장이 이제 북핵이라는 재료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바깥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북핵 실험 이후에도 국내 주식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에서 북핵이라는 재료는 더 이상 환율을 크게 치솟게 만드는 재료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북한 핵과 관련된 사안이 불거졌을 때에도 국내 외환시장은 그리 크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북핵과 관련된 사건들이라면, 예컨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1994년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 2002년2월의 원자로 봉인제거 및 NPT 탈퇴 선언, 그리고 2005년3월의 핵무기 보유 선언 등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정작 북한의 ‘선언’이 알려졌던 직후에는 환율이 일시적으로 치솟기도 하였으나 이내 정상을 되찾았던 터. 거기에다 종내는 북한의 선언이 있었던 이전의 환율 수준보다 오히려 더 하락(원화 강세)하기도 하였다. 결국 예전의 북핵 관련 내성이 이번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북핵에 내성이 생겼다는 사실은 거꾸로 국내 외환시장에서의 수급으로도 확인된다. 북핵 등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달러화가 안전통화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달러 매수세가 꾸준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최근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는 북핵 이후에도 오히려 달러 매도세가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달러 매도세력은 조선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체 수출물량으로, 은행의 외환딜러들은 국내 기업들이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6일 동안 60억 달러 이상의 물량을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도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거기에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의 움직임이 안정적인 것도 환율이 안정되도록 한 요인으로 설명된다. 외국인들이 북핵 사태에 불안함을 느꼈다면 보유하고 있던 현물 주식을 팔고, 그 대금을 달러로 환전하여 국외로 반출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외국인들의 현물주식 매도 규모만큼 국내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수 수요가 늘어나므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북핵 사태가 불거진 이후,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현물주식을 매수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외환시장에 전혀 달러 매수압력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이다.

"對엔화 강세 곧 진정"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화는 비교적 안정적인 데 비하여 달러는 엔화에 대하여 초강세를 나타내고 있고, 그 결과 엔/원 환율이 급기야 심리적 지지선으로 간주되던 100엔=800원 선을 무너뜨리고 일시적으로 790원대로 접어드는 모습을 드러냈다. 북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엔화에 대하여 오히려 강세를 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아베 일본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성장을 위하여 엔화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엔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이어온 데 비하여 우리나라 원화는 앞서 설명한 이유로 오히려 안정적인데다, 특히 중국 위안화가 지속적인 강세를 시현하면서 거기에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그렇게 언급하였듯, 엔/원 환율이 700원대 이하로 급락하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외환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환 딜러들도 엔/원 환율이 800원 이하로 내려가는 현상은 일시적일 것이고, 조만간 엔/원 환율은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BNP파리바은행을 비롯한 웬만한 은행들은 일본의 경제 상황으로 판단할 때, 최근 외환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1달러=119엔 수준은 엔화가 너무 저평가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교과서적인 해석에 따른다면 북핵을 둘러싼 정치적인 불안, 긴장감을 이유로 달러/원 환율은 상승하여야 마땅하고, 이로 인하여 재정환율인 엔/원 환율은 지금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기사 수학 공식처럼 교과서적인 해석이 외환시장에 항시 들어맞기만 한다면 그처럼 싱거운 외환시장이 또 어디있겠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섞여서 도무지 예측이 어려울수록 효율적이고 선진화된 외환시장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경제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라. 환율의 방향이 뻔히 보인다면 이를 이용하려는 투기꾼들이 득실거리기 마련이고, 투기꾼들과 싸우느라 정부의 외환정책 운용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북핵 같은 메가톤급 악재에도 끄떡없는 원화야말로 국제 외환시장의 진정한 강자요 안전통화가 아닐까?


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