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 국세청장, 사전에 치밀 준비… 예상 밖 높은 신고율 기록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종부세 납부실적을 발표하는 전군표 국세청장 <연합뉴스>
‘한국 국세청장, 마오리 전사를 제압하다 (Korean Commissioner defeats Maori Warrior)’

지난해 연말 최대의 화젯거리였던 종합부동산세 신고 납부가 당초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98%대의 높은 신고율을 기록하자 국세청 내부에선 전군표 청장이 최근 뉴질랜드에서 보여줬던‘씨름 한판승’에 빗대어 이를 평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아시아국세청장회의(SGATAR) 문화행사에 참석했던 전 청장은 한국의 씨름을 현지인들에게 소개하며, 130㎏이 넘는 럭비선수 출신 거구의 마오리족 남성을 한번에 넘어뜨렸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전 청장과 상대방을 비교할 때 거의 다윗과 골리앗 수준이었지만 승부는 순식간에 갈렸다. 이를 지켜본 현지인들은 깜짝 놀라며 신문 톱기사 감이라며 ‘한국 국세청장, 마오리 전사를 제압하다’는 제목을 붙였다. 전 청장은 거구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능숙한 기술과 특유의 뚝심으로 한판승을 거뒀고 이 같은 뚝심은 종부세 신고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던 것.

지난해 연말 일부 납세자와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일었던 종부세 거부 움직임, 위헌 논란 등이 거셌지만 자진신고ㆍ납부 비율은 98%를 넘는 세정 사상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사실 국세청은 내부적으로 종부세 신고를 앞두고 집행기관으로 어느 때보다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납세자 수가 전년도에 비해 5배나 늘었고 주택보유자의 평균 세부담이 6.2배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국세청의 인력은 보충이 되지 않은 채 신고기간은 15일간으로 다른 세금에 비해 짧아 세정 여건으로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전 청장은 지난해 7월 취임 당시부터 종부세 문제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부족한 인력보강을 위해 국세청의 조사 인력 중 15%를 과감하게 줄여 종부세 업무에 전환 배치했다. 또 논란이 예상되는 세금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종부세는 아름다운 되돌림’ 등 15개 세금 이슈가 수록된 ‘세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이란 책자를 발간해 홍보에 주력했고 신고 절차도 간소화하는 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해왔다. 신고 납부 거부 움직임에 대해선 이를 선동하는 행위는 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할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신고기간이 시작되자 ▦1가구 1주택 고령자도 담세 능력이 있다는 방증자료를 공개할 것을 예고해 비판 여론을 잠재웠고 ▦과거 토초세와 달리 자진신고·납부한 사람에겐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적극 홍보해 불안심리를 잠재웠다. 특히 전 청장은 신고기간 중 휴일에도 직접 세무서를 방문, 직원들을 독려했고 일선 세무서장들에게는“신고율이 90%를 넘지 않으면 종부세 부담이 없는 편안한 시골세무서로 보내겠다”고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했다.

실제로 이번 종부세 집행은 재계와 관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대기업에서 정책 집행 성공사례에 대한 문의가 이어질 정도다. 한 대기업 구조본 관계자는 “신고율이 당초 전망했던 것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나 기업에서도 놀라고 있다”며 “이렇게 높은 신고율을 달성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전략 차원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열린 노무현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전 청장은 이례적으로 장관들 앞에서 직접 종부세 납부신고의 성공과 관련해 10분간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기회까지 가졌다. 국무회의에서 우수 모범사례로 뽑힌 것이다. 전 청장은 ‘국민과 국세청이 함께한 종부세의 성공적 집행’이라는 제목의 보고를 통해 각 부처 장관들에게 정책집행 과정을 상세히 보고했다. 이날 보고에서 전 청장은 종부세 최종 신고율 집계 결과가 98.1%로 당초 잠정치(97.7%)보다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를 지켜본 후 “종부세의 성공적 집행은 해내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책임자의 지휘에 따라 완벽한 프로세스를 갖추고 전 직원이 단결하여 집행한 결과”라며 높이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종부세의 성공 사례를 모든 부처로 확산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전 청장은 이같이 특유의 뚝심과 함께 솔직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협상과 외교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개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세청장 회의에서 전 청장의 이 같은 능력이 발휘됐다. OECD 국세청장 회의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소위 잘 나간다는 세계 선진 30개 회원국과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과 인도 등 옵저버 국가, 그리고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망라해 참가하는‘조세 행정의 올림픽’으로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3차회의를 개최했다. 전 청장은 호스트로서 완벽한 회의준비를 통해 참가국 대표들에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줬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가들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서울 선언’을 채택했다.

서울 선언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국제적 조세회피에 대해 국제공조를 강화해 적극 대처하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미국 등 대표적 자본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국부를 보호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국경을 초월한 조세정의 확립이라는 전 청장의 확고한 논리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전 청장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미국과 캐나다, 중국, 일본 등 우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각국 청장들과의 마라톤 양자회담을 통해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하는 데 주요한 성과를 올렸다.

첫 국제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전 청장의 조세외교 능력은 오는 1월 8일 캐나다에서 처음 개최되는 리즈캐슬그룹(LCG)회의에서 다시 한번 발휘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OECD 국세청장 회의가 국제연합(UN) 회원국 전체모임에 비유된다면 LCG 회의는 유엔 상임이사국 회의에 비유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10개 국가 국세청장들이 참석하는 이 회의는 실질적인 국제조세 행정원칙(OECD Guideline)의 방향을 정하는 조세 행정 주요 국가들의 회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의 잘 사는 국가들과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도 가입하지 못한 LCG 회의에 우리나라가 정식 회원국으로서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외교적으로 큰 수확이라는 평가지만, 앞으로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이 얼마만큼 반영될지는 전 청장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지난해 9월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OECD 국세청장 회의 개막식에서 국세청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제부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