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뒤 문화통합 주력 조화와 협력에 최우선신한은행의 '선 통합 후 합병' 방식은 대표적 모범 사례크라운·해태제과는 모닝아카데미 등산 통해 단합

“회사 인수가 완료되자 우리 쪽 임원들이 점령군으로 넘어가 요직을 장악했지요. 이어 회사 경영 시스템이나 내부 용어 등도 우리 쪽으로 다 맞췄고. 하여튼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꿨다고 봐야죠. 처음엔 그쪽 임직원들이 열등의식이나 질시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무래도 어떤 결정을 내놓아도 우리 쪽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실제로 그런 측면이 많았죠.”

현대자동차에 13년 정도 근무한 A과장의 1998년 무렵에 대한 회고다. 그해는 현대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놓고 서로 경쟁하던 두 회사가 한 식구가 된 해다. 말하자면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는 한 식구가 됐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쉽사리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 ‘우리 쪽’과 ‘그 쪽’이라는 C과장의 말에서 인수 초기 두 회사 사람들의 잠재적 갈등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두 회사 사이에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별도 법인 체제로 판매 부문에서는 서로 경쟁하고 있지만 연구개발, 품질, 디자인, AS 등 여타 부문에서는 최적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공조체제를 갖추고 있다. AS총괄본부의 한 직원은 “현대차와 기아차 직원들이 섞여 양사의 일을 같이 수행하고 있다”며 “예전과 달리 이제는 소속에 상관없이 동료라는 생각이 크다”고 전했다.

2000년대 들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M&A가 일상화하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대우건설, 한국까르푸, 삼성 분당백화점 등 굵직굵직한 매물이 쏟아져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새 주인을 찾아 갔다.

윤영달 크라운 해태제과 회장 / 신한은행 출범식에서 신한·조흥 노조위원장이 신상훈 행장과 함께 손을 맞잡고 단합을 다지고 있다. / 신한은행 행표를 달아주기 행사 모습.
이러한 M&A 전개과정에서는 통상 과연 누가 얼마에 해당 기업을 가져가느냐가 가장 관심을 끌기 십상이다. 이는 인수하는 기업이든 인수당하는 기업이든 마찬가지이며 시장의 관중들도 예외는 아니다. 치열한 머리 싸움과 자금 전쟁이 승부의 키를 쥐고 있는 게 M&A 시장의 속성인 만큼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인수전의 승리가 곧 M&A의 성공이 될 수는 없다. M&A의 궁극적 목표가 단지 덩치를 키우는 게 아니라 기업 경쟁력 제고와 성장 전략 차원에서 추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M&A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 A.T.커니의 조사에 따르면 계약이 성사된 M&A의 약 58%가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합병 후 통합’(PMIㆍPost Merger Integration) 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PMI는 완전한 합병이란 두 조직이 물리적 합병에 이어 화학적 통합을 이뤄내야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 M&A포럼 김종태 대표는 “M&A는 역사와 문화가 다른 두 기업이 하나로 합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기에 문화적 충돌은 불가피하다”며 “중요한 것은 이런 충격을 흡수하고 핵심 역량을 찾아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특히 경쟁 관계에 있던 동종 기업이 합쳐지는 경우에는 PMI 과정에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두 기업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의 통합작업이 이뤄져야 경쟁사 간 M&A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경쟁사 간의 합병은 두 조직의 구성원 간에 조화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게 선결조건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궜던 대우건설 인수전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승리로 귀결됐다. 금호그룹은 지난 12월 인수작업을 마무리짓고 대우건설을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얼마 전에는 대우건설 본사가 자리잡은 대우빌딩에서 대우 브랜드를 떼내고 그 자리에 그룹 심벌 마크인 빨간색 날개를 바꿔 달았다.

금호그룹은 금호건설을 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건설업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키운다는 계획 아래 업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우건설을 공들여 품에 안았다. 금호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과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입장이 좀 다를 수 있다. 경쟁업체인 금호건설과 한 배를 타게 되면서 미묘한 갈등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우건설 노조는 동종업체끼리 합쳐지면 고용문제 등이 불리해진다는 판단에 따라 금호그룹을 인수 부적격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인지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한 식구로 끌어안기 위해 신중하면서도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룹 오너인 박삼구 회장부터 직접 대우건설 대표이사를 맡아 출근하는 등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박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같은 직종, 같은 업무를 맡은 사람끼리 자주 만나 얼굴도 익히고 토론도 가져라”며 교류를 강조한다고 한다. 자주 만나야 정도 붙고 업무 협의도 잘 이뤄진다는 것이다.

새 식구가 된 대우건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월 12일 대우건설 연구소에서는 금호건설과 대우건설 임원들의 통합 워크숍이 있었다. 임원들은 이날 양사 간 협력 체제 구축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나눈 뒤 다음날 곧바로 용인의 그룹 인재개발원으로 옮겨 이틀간 그룹 전략경영 세미나에도 동참했다. 우선 위에서부터 협력과 교류의 분위기를 다져 점차 아래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건설과 대우건설의 기업문화는 분명 달랐다고 보지만 서로 선의의 경쟁과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여지도 크다”며 “처음부터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한마음이 되는 게 순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경쟁사 간에 성공적으로 통합을 이룬 사례로는 크라운ㆍ해태제과도 빼놓을 수 없다. 크라운제과는 2004년 말 동종업계의 상위권 업체인 해태제과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초기에는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크라운에 인수되는 데 반발한 해태제과 영업직 노조가 2005년 170일 동안 장기 파업을 벌인 것.

하지만 크라운ㆍ해태제과는 두 회사 간의 문화통합을 이루는 데 주력하면서 난관을 어렵사리 극복해냈다. 여기에는 윤영달 회장이 앞장서 주도한 두 가지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먼저 2004년 12월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빠짐없이 열고 있는 ‘모닝아카데미’. “동문수학하는 게 친구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평소 지론을 가진 윤 회장은 두 회사 임직원들이 함께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감성통합을 이루도록 모닝아카데미를 구상했다고 한다. 모닝아카데미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특강과 토론회, 음악 감상 등으로 이뤄지는데 2월 7일자로 뜻깊은 100회를 맞이한다.

윤 회장은 ‘등산경영’으로도 유명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북한산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임직원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다. 윤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은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공유하자는 차원이다. 이를 통해 더욱 끈끈한 스킨십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다.

크라운제과 기종표 기획부장은 “등산은 우리 회사에서 정규 직원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며 “연중 수시로 함께 하는 산행은 두 회사 임직원들 간에 단합을 이루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전산통합을 마지막으로 완전한 하나의 은행으로 거듭난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사례는 동종업체 간의 모범적인 합병 사례로 남을 만하다. 두 은행은 별도 법인의 공존이 아니라 하나의 법인으로 성공적인 통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금호그룹, 크라운제과의 경우와는 다르다.

신한은행의 사례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통상적인 M&A와 달리 ‘선 통합, 후 합병’의 순서를 밟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수 작업을 끝내고 서둘러 두 은행을 합친 게 아니라 먼저 두 은행 간의 조직 통합을 달성한 뒤 합병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선 합병, 후 통합’의 노선을 취했던 다른 은행들이 대부분 노조 반발, 내부 시스템 혼선, 고객 이탈 등 예기치 못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인수 후 약 2년6개월 동안 합병 준비기간을 설정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동안 양사 간 공동경영이 이뤄졌고 변화추진본부가 설립돼 통합작업을 전담했다. 시스템 통합은 물론 인적인 화합도 이 기간에 거의 달성됐다.

이처럼 돌다리도 두들겨 합병 작업을 추진해온 신한은행이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시하는 게 직원들 간의 화학적 융합이다. 올해 신한은행이 핵심가치로 강조하는 것도 다름아닌 ‘팀워크’와 ‘오너십’이다. 이는 올해부터 두 은행 출신 직원들이 완전하게 섞여 근무하는 체제가 가동됨에 따라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통합 작업의 성과가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 안팎에서는 낙관적인 전망이 많다. 통합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감성통합이 거의 완성 단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분리된 채 남아 있는 부문으로 꼽히는 노동조합도 현재 통합을 위해 서로 노력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쨌든 신한은행의 사례는 조직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업종 여하를 떠나 M&A의 바람직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