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적 성과 없이 시너지만 막연한 기대… 고개드는 부정론

“괜히 연예계에 헛돈 쓴 거 아니야? 돈을 날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그렇다면 수백억원이 투자된 지금 거둔 성과를 보여줘봐”

“통신으로 돈 좀 번다고 돈을 쉽게 쓰나 본 데 도대체 통신이 엔터테인먼트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최근 수년간 러시를 이룬 KT, SK텔레콤, KTF 등 통신서비스업체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투자 성적표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통신서비스 회사가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에 적잖은 금액의 투자를 시작한 지 1~2년씩을 넘긴 만큼 이제는 가시적인 투자 성과가 무엇이냐는 궁금증이 일고 있다.

얼마 전까지 시중에서는 SK텔레콤이 극장 사업에도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 영화와 영상 사업에 수백억원의 투자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아예 영화관까지 설립하거나 인수에 뛰어든다는 얘기. 한때나마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이미 다수의 극장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3개 재벌사들을 긴장시켰다.

이 후 소문은 잠잠해졌지만 이 해프닝은 SK텔레콤의 엔터테인먼트 투자에 얽힌 묘한 입장과 상황을 대변해준다. 일견 지금까지의 엔터테인먼트 투자로는 부족하니까 추가로 신규사업에까지 투자를 늘려 수익을 거둔다는 포부 같이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는 지금까지의 투자로는 별 실효를 거두고 못하고 있으니 추가 실탄 투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한마디로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 통신서비스 기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투자에 의문 부호가 찍힌 것은 업계나 기업 외부에서만은 아니다. 이들 기업 내부에서 조차 의문이 던져지고 있고 논란은 계속 중이다.

SK텔레콤의 경우 거액 투자에 대해 SK그룹 내부에서조차 실효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어쨌든 그룹 차원의 조정과 통제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 KT나 KTF 역시 내부에서 일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통신사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투자는 일본의 소니 사례와도 비교돼 주목을 끌고 있다. 전자산업으로 막대한 돈을 긁어 모은 소니가 섣불리 엔터테인먼트에 뛰어들었다가 고전을 면치 못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이전에 삼성과 대우가 영화 비즈니스에 도전했다가 퇴각한 전례도 있다.

소니에서처럼 지금 이들 통신서비스업체는 해마다 막대한 순익을 올리며 투자 자본 확보는 물론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이 때문에 지금 국내 시장에서는 ‘과연 통신서비스 업체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분야 진입은 성공할까?’라는 질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통신회사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 스타트를 끊은 것은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2005년부터 영화 드라마 부문에서 Ihq를 418억원에 지분을 인수한 것을 비롯, 서울음반에도 277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또 3개 음악펀드에도 총 400억원 중 297억원을 투자했고 4개 영화펀드에 또한 총 575억원 중 TU, iHQ, 쇼박스, OCN 각각 40억원, 롯데 30억원, 기타 168억원 등 200억원을 출자했다.

국내 제1의 기간통신 사업자인 KT 역시 국내 최대 방송 콘텐츠 회사인 올리브 나인에 164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으며 지난해 4월에는 싸이더스FNH 투자조합에 40억원을 참여하는 등 지금까지 총 70억원을 콘텐츠 분야에 직접 투자했다. KTF 또한 영화제작사인 (주)싸이더스FNH에 84억원을 제3자배정 유상증자 참여로 지분을 15.3% 확보하고 보스톤영상투자조합에도 80억원을 출자하고 있다.

특히 FNH 영상투자조합에는 싸이더스 및 싸이더스FNH가 80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비롯해 KT 40억원, 스카이라이프 35억원, KTF·KTH 각각 10억원 등 KT그룹이 175억원을 쏟아부었다. KT그룹 전체는 총 51% 지분율을 확보한 셈이다.

이들 통신업체가 엔터테인먼트 분야 기업 지분 확보전에 나서며 내건 명분은 양질의 콘텐츠 확보. 음악과 영화 펀드 투자를 통해 음악과 영상 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컨텐츠를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기존의 핵심사업인 통신서비스와 신규 디지털 플랫폼 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포석이다.

이들 통신사들은 업종, 회사별로 투자 형식에서 조금씩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먼저 음반과 음악 분야에서 지분 투자와 펀드 참여를 서두른 반면 후발 주자격인 KT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부터 눈독을 들였다. SK텔레콤 또한 이후 KT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발을 담근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KT와 한솥밥 친구격인 KTF는 KT와 보조를 맞춰나간 것이 특징.

하지만 통신업계 전체적으로는 1,000억원이 넘는 거금이 지출됐음에도 투자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지 못하다는 부정론부터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최선의 조치라는 긍정론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투자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부정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부정론은 지분 인수나 투자에서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던 콘텐츠 확보 면에서는 직접적인 수익이 크지 않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음악 한 분야만을 얘기하자면 인수나 투자로 인한 당장의 수익률은 0%라고 전했다. 아무 도움이 안 됐다는 얘기다. 실제 SK텔레콤은 한때 일부 유명 인기 가수의 음원을 자체 음악서비스인 멜론을 통해 독점 공급했으나 이내 독점을 푼 사례가 있다. 독점으로 인해 얻은 소득보다는 부정적인 여론과 부작용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영화는 더하다. 펀드에 투자한 것이 액면 금액만으로 따지자면 지금까지는 약간의 손실이라는 것이 SK텔레콤의 자체 평가다. 물론 앞으로 작품 성공 여부에 따라 수익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또 지분에 투자한 경우 이들 통신사는 상장되는 주식의 차익을 노린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순수하게 업무 협조와 콘텐츠 확보 시장을 겨냥한 것이지 주가가 오르내리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 통신사 모두 자체적으로도 “지금까지 투자 대비 수익을 내세울 만한 실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투자 성과를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입장에는 일치한다.

무엇보다 이들 통신사가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에서 공통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시너지 효과다.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방송이 통신과 만나게 되면서 통신 사업이 활성화되고 기업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KT는 앞으로 IPTV나 와이브로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영상 분야에서 서비스 수요가 폭발, 관련 사업도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음악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이나 KTF는 지금 지분 인수나 펀드 투자로 자체 수익은 나지 않더라도 통신사의 서비스나 사업에 도움을 준다면 결국 투자 효과를 얻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KT 콘텐츠사업팀 이치형 상무는 “투자 1년여가 지난 이제 실적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며 “처음 소니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가 주축사업이 돼 있을 만큼 향후 투자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도 “굳이 투자 실적을 따지자면 그리 나쁜 것만도, 또 좋은 것만도 아니다”며 “지금까지의 투자는 향후 미래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래를 겨냥한 이들 전망은 아직까지는 구체화되거나 실현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즉 통신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간에 뭔가 협력하고 나올만 한 것이 있긴 한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답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시너지 효과를 거둘 사업 모델이 아직까지 뚜렷하지는 않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들 통신사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잡히지는 않지만 뭔가 시장은 있어 보인다” “둘 다 이질적인 분야인데 맞는 투자냐?”라는 등 이견은 여전히 분분하다고 말한다. KT 역시 그동안 변방만 돈 것 아니냐는 내부 지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 통신사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거나 축소하고 있지는 않다. KT는 오히려 투자 예산을 지난해 770억원 보다 늘린 1,500억원으로 잡아놓고 있다. SK텔레콤 또한 적당한 투자처가 나타날 경우 기꺼이 투자 금액을 확대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KTF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투자를 늘린다는 데 입장이 같다.

하지만 콘텐츠 확보를 명분으로 몇몇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지분만 인수하고 펀드에 투자한다고 얼마나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또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속성이 사람과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맨파워적인 성격이 강한 사업인 만큼 특정 회사에 투자한다고 얼마나 성공적인 수확이 보장될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자에 대한 평가는 어쨌든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며 “수익만이 문제가 아니고 통신과 엔터테인먼트 두 사업영역 간의 조화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는 지켜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동통신사들의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터무니 없이 비싼 통화료를 내리라는 여론이 거셀 때 그들은 새로운 통신 분야를 개발하는 연구비와 설비투자비를 확보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그 돈을 효과가 불투명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펑펑 쓰고 있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모아 그런 곳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평가할 때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