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엔 125엔까지 상승예상, 엔 캐리 트레이드 지속될 듯

일본중앙은행의 기준금리 동결로 엔화가 연일 약세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은 도쿄 외환시장 딜링룸
최근 엔화의 가치가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달러/엔화의 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엔화는 지난주 1달러당 122엔을 돌파하면서 4년 만에 달러 대비 최저치로 주저앉는 등 약세 일변도이다. 이런 상황은 작년 하반기 대부분의 주요 은행이나 연구기관에서 전망한 것과는 전혀 딴판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엔화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하반기, 주요 연구기관이나 혹은 외환시장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엔화의 가치가 점차 상승할 것으로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 스스로 ‘이제는 10년 불황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할 정도로 일본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던 일본의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금리가 상승할 전망이라면 그 나라 통화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이므로 덩달아 통화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엔화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쪽으로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지난 1월 18일에 열렸던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위원회가 단적인 예이다. 금융정책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반이 넘는 일본의 외환시장이나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0.25%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일본의 기준금리가 0.25% 포인트 정도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와 정책위원들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표결 끝에 6대3으로 기준금리인 은행 간 무담보 콜금리를 현 0.25%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행은 작년 7월, 거품경제 붕괴 이후 6년 가까이 유지해온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기준금리를 0%에서 0.25%로 인상한 바 있는데, 이번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음으로 6개월째 기준금리를 0.25%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금리가 오랜 기간 0.25%에 묶여 있는 상황이므로 인플레이션 압력도 거세어지고 이에 따라 금리를 인상하려는 움직임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리를 결국 동결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나 혹은 정치권에서는 지난 18일 일본은행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총리까지 나서 반대 입장을 거듭 표명하는 등 맹렬하게 반대하였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정부나 혹은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을 달가워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으로서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감안할 때, 만일 금리를 올려야 되겠다고 맘을 먹었다면 금리를 올리지 못하였던 것도 아니었을 터. 그런데도 일본은행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정부나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특히 작년 6월, 무라카미 펀드 투자 스캔들이 불거지며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퇴진 여론이 높았을 때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현 총리가 적극적으로 후쿠이 총재를 옹호하였던 것을 떠올리며 후쿠이 총재가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베 총리에게 금리를 동결함으로써 '마음의 빚'을 갚았다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후쿠이 일본은행 총재의 리더십과 결단력에 대해 시장에서는 이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일본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손상이 가해졌다는 것.

물론 당사자가 아니므로 밖에서야 그들의 깊은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정치적인 부담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만일 지난달 금리를 올렸다면 해석이 달라졌을 터이나, 오히려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정치적인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덩달아 이달에 있을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위원회에서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 역시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예컨대 시장에서는 미야자키(宮崎)현 지사의 보궐 선거에서 탤런트 출신 후보가 자민당 후보를 누른 사실 등을 지적하며 아베 내각이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기에, 4월에 있을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판국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데 선뜻 동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행으로서는 금리를 인상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위원회 이후, 유수의 은행들이 전망을 바꾸어 엔화의 약세 목표를 더 낮추었고, 아울러 달러 강세, 엔화 약세 기조가 상당기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JP모건은행은 2007년 달러/엔 환율의 전망치를 125엔으로 수정했고 유로/엔은 170엔으로 올려 잡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전망을 상향조정하여 달러/엔 환율이 3월 말에 기존의 전망인 114엔에서 120엔을 기록할 것이라며 수정하였다. 또한 바클레이즈 은행 역시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춤으로서 신뢰에 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달러/엔이 수개월 안에 125엔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엔화의 금리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엔화의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엔화의 금리가 대단히 낮은 수준인 것을 이용하여, 엔화를 차입하고 이를 다른 통화로 바꾸어 수익률이 높은 다른 곳에 투자하는 거래를 말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 중의 상당 부분이 이와 같은 엔 캐리 자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은 있으나, 금리가 낮은 만큼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많아서 근래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형편이다. 지난달 말 바클레이즈 캐피털은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340억 달러(260억 유로)로 추산하여 지난 1998년 러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2,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앞으로 일본의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면 최소한 금리로 인하여 손해 볼 가능성은 사라진 셈. 이에 따라 저금리를 이용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최악의 경우, 일본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고 그 결과 엔 캐리 트레이드가 한꺼번에 청산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해외 각국에 투자되어 있는 엔화 자금이 한꺼번에 회수되면서 주식시장이며 금융시장, 혹은 자산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비롯하여 세계 금융시장은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중소기업 가격경쟁력 악화 우려

또한 만일 엔화의 금리가 당분간 유지되어 엔화가 약세를 이어간다면 그 영향은 우리나라 엔/원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달러/원 환율은 920원대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940원대에 올라선 상황이다. 하지만 원화가 달러에 대하여 다소 약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엔/원 재정환율은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초 100엔당 790원대에도 오르기까지 하였던 엔화의 환율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근 770원대까지 주저앉은 상황이다. 이는 엔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기 때문.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엔화의 가치가 좀처럼 상승할 전망이 보이고 있지 않기에, 엔/원 환율은 자칫 750원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일본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더욱 고전할 것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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